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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진면목 ‘산책하는 문화’

기사승인 2020.11.28  21: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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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

대학생이 된 후 나는 우크라이나로 해외봉사활동을 왔다. 이 나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너무 멋있는 건물들에 마음을 온통 빼앗겼다. 수도 키예프에 있는 ‘졸로티보로타’ 지하철역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곳으로 지나가기만 해도 황홀했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좋은 것을 꼽으라면 ‘산책하는 문화’다. 이곳 사람들은 하루에 최소 1시간에서 최대 4시간까지 걸으며 산책한다. 그래서 곳곳에 산책하기에 좋은 다양한 공원이 많고, 산책하며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를 구석구석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내가 산책 시간을 기다리는 이유가 따로 있다. 함께 산책할 친구들 때문이다.

빈니차에서 알게 된 두 친구

키예프에서 지내던 나는 코리안 캠프 준비를 위해 260킬로미터 떨어진 빈니차 Vinnytsya라는 도시로 왔다. 이곳에서는 우크라이나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캠프준비를 이미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발레리야와 따냐를 처음 만났다. 러시아어가 유창하지 못한 내게 먼저 다가와 코리안 캠프 준비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어딜 가든 나를 잘 챙겨주었다. 특히 내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땐 몸짓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보디랭귀지로 대화하다 보니 점점 같이 웃을 일이 많아졌다.

캠프를 함께 준비하면서 우리는 틈틈이 산책을 갔다. 그때마다 따냐와 발레리야와 동행했다. 하루는 함께 산책을 간 발레리야가 먼저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함께 사는 아이들과 즐거운 산책 시간. 표지 촬영 중, 와플로 허기를 달래며.

 

부모님이 이혼해 아버지는 우크라이나의 다른 도시로, 어머니는 아예 다른 나라로 떠나셔서 자신은 쌍둥이 오빠와 살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선뜻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를 해주는 발레리야가 고마웠다. 그리고 따냐는 새로운 문화, 언어, 그리고 사람들에 적응하는 내가 자신이 3년 전 인도로 해외봉사를 갔을 때의 모습과 비슷해서 더 챙겨주고 싶었다고 했다. 속내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오랫동안 빗장을 열지 못했던 내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우리 셋은 매일 산책하며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을 공유했고,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 같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맞춰가기

같이 지내면서 우린 서로 언어를 가르쳐주고 또 배우고 있다. 한국어를 좋아하는 따냐와 발레리야에게 나는 한글 수업을 해주기도 하고, 그들은 내게 러시아어를 가르쳐준다. 덕분에 지금은 의사소통을 하는 데 문제가 없다.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종일 같이 지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부딪히는 상황이 생긴다. 자라온 환경이 달라 서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우린 그때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오해를 풀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한 실수를 알게 되어 고칠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표현해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감정표현하는 것이 서툴지만 자꾸 속에 있는 마음을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의 친구들, 한국에 가도 이 우정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비란다.

내가 맡은 붓글씨 수업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글을 적었다. ‘코리안 캠프’의 김밥 만들기 수업. 이날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친구들의 편지

안녕, 승연!

우리는 나이도 같고 닮은 점이 많아서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 지금은 너와 헤어진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운데, 네가 떠날 생각을 하면 너무 슬퍼. 그래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 나의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승연아,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지만 그때까지 서로에게 더 많이 표현하고 배우며 행복하게 지내자.

- 너의 동갑 친구, 발레리야가.

내 소중한 친구, 승연아!

우리가 함께 만날 수 있었던 게 나는 너무 감사해.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었지. 너는 내가 해외봉사를 갔던 때를 많이 기억나게 했어. 덕분에 인도에서 얻은 많은 것들을 너와 함께하는 동안 다시 기억하고 사용할 수 있었어. 그리고 너도 여기 우크라이나에서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사용할 거라 믿어. 이 시간을 기억해줘. 그리고 항상 연락해줘! 꼭 다시 우크라이나로 와야 돼! 기다릴게.

- 너를 계속 기다릴 따냐로부터.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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