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급 시니어 유튜버 박막례의 삶이 말하는 인생 뒤집기의 비밀

‘13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AP통신, BBC방송국이 주목한 인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표창 수상’, ‘유튜브 CEO가 직접 한국까지 와서 만난 인물’, ‘자서전과 요리책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저자’, 이 모든 타이틀의 주인공은 73세 박막례 할머니이다. 늘 새로운 것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도전하는 삶’의 아이콘이 된 할머니. 73세에 세계 여행이라는 색다른 꿈을 꾸며 손녀와 열심히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고단한 세월을 걸어오다 어느새 70대가 된 박막례 할머니, 삶의 변화의 시작은 병원에서 받은 치매 위험 판정이었다. 삶의 끝자락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고 했을 때 할머니는 손녀의 제안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 여행은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2021년을 맞으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변화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최승광(STUDIOESKEY)
ⓒ최승광(STUDIOESKEY)

70세가 되던 해, 인생을 포기했다

“귀신이고 나발이고 무서운 게 없어. 내 인생이 젤로 무섭지.”

할머니의 삶은 험난했다. 집안의 막내딸이라서 ‘막례’라는 이름을 받았다. 동네에서는 그래도 있는 집 자식이었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공부할 기회도 없이 집안일만 했다. 그러다 스무 살에 결혼하면서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남편이 빚만 지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혼자서 세 남매를 키워야 했다. 막노동부터 떡과 꽃 리어카 장사에 파출부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 한 친구의 도움으로 식당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새벽 4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만 하며 살았다. 사기도 두번이나 당했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일했다. 그렇게 40년이 흐르고 나니 70살이 되었다. 할머니는 인생을 포기했다. 그냥 죽을 때까지 일하다 갈 팔자려니 했다. 그리고 그해에 치매 위험 판정을 받았다.

그때, 박막례 할머니의 손녀 김유라 씨가 할머니에게 호주 케언즈로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2017년 겨울, 호주 케언즈로 첫 여행을 떠난 손녀와 할머니. 두 사람은 산타 모자를 쓰고 자유롭게 여행을 즐겼다.
2017년 겨울, 호주 케언즈로 첫 여행을 떠난 손녀와 할머니. 두 사람은 산타 모자를 쓰고 자유롭게 여행을 즐겼다.

“나는 방송연예과에 입학했지만 연예인이 될 깜냥이 안 된다고 생각해 빠르게 욕심을 접었다. 졸업 후 한 회사의 직원이 되었고, 서른 언저리에 서니 어떤 예감이 몰려왔다. 내 인생에 반전 같은 건 더 이상 없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 대개 ‘기회’란 20대에게나 주어지는 카드 같아서.

할머니가 병원에서 치매 위험 판정을 받은 날,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고 인생은 진짜 불공평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날 나는 밤새 치매 관련 논문을 뒤졌다. 그러다 발견한 문장이 내 머리를 쳤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들 때 우울과 시련이 나를 잠식하면서 뇌세포가 하나둘 손상되는 마음의 병.’ 나는 생각했다. ‘할머니의 삶에 의미를 찾게 하자. 그게 뭐든.’ 나는 할머니랑 호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회사에서 휴가를 주지 않았고, 결국 퇴사했다. 할머니는 미쳤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어떤 생각에 단단히 미쳐 있었다. ‘우리 불쌍한 할머니,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수 없어.’”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p.57

할머니가 인생을 포기했을 때 손녀는 여행을 가자고 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호주로 여행을 떠났다. 가기 전까지는 몰랐다. 그 이후 어떤 삶이 펼쳐질지.

71세,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다

생전 처음 탱고린지 캥고린지 동물을 봤다. 근디 가서 보니까 앞다리는 짧고 뒷다리는 길어가꼬 다친 것 같아서 마음이 엄청 아프더라. “너 다리가 끊어져서 그러냐? 오메 오메….”

옆에 한국인 남자가 있기에 말을 걸었다.

“오메, 이 친구는 다리가 아팠는가 봐요…. 뼈가 쭉 빠져부렀어요.”

“할머니, 원래 캥거루는 이렇게 걸어댕겨요.”

나는 창피해가꼬 말이 안 나와부러따. 그 이후로 그 아저씨를 피해 댕겼다. ‘캥고리는 뒷다리가 더 길구나.’ 70년만에 처음 알았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p.72

호주라는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던 할머니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 나라는 토마토가 이렇게 생겼다.”

“무가 이래 길어야. 길어서 사람 찌르겠어야.”

할머니의 감각은 초롱초롱 빛났다. 만나는 모든 것에 반응했고,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했다. 대학 시절 영상 공모전에 응모한 적이 있었던 손녀는 할머니와의 여행을 영상으로 담아와 가족들과 공유했다. 특별히 할머니가 보기 쉽도록 유튜브에 업로드 했다.

김유라 씨는 백수 시절을 할머니와 더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할머니와 재미있는 추억을 하나 둘 만들고, 그것들을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하루는 할머니가 치과에 간다고 해서 메이크업 하는 모습을 찍어 올렸는데… 대박이 터졌다. 채널의 원래 구독자 수는 18명이었다. 그의 가족들. 그런데 영상 조회 수가 하루 만에 100만을 찍었고, 구독자 수는 이틀만에 18만 명이 되었다. 기자들은 물론 많은 MCN(멀티 채널 네트워크)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두 사람은 고민 끝에 유튜브 크리에이터, 유튜버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할머니가 치과 갈 때 하는 화장법을 담은 영상. 손녀가 재미로 찍었던 이 영상이 박막례 할머니를 유튜버로 만들었다. 출처: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채널
할머니가 치과 갈 때 하는 화장법을 담은 영상. 손녀가 재미로 찍었던 이 영상이 박막례 할머니를 유튜버로 만들었다. 출처: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채널

“할머니가 유튜버 데뷔를 단번에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나에게 직업을 줄 수 있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그랬다. 할머니 나이 일흔한 살, 곧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인데 새로운 직업인 유튜버란 이름으로 새 삶을 살 수 있다면 할머니에게 주고 싶었던, ‘박막례’라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나도 영상으로 뭔가 재미있는 걸 만들어서 사람들과 공유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막상 회사와 계약이라는 걸 하고 나니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할머니는 본인은 살 만큼 살아서 상관없지만 혹시 손녀에게 폐를 끼칠까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할머니 덕분에 나 유튜버로 재취업된 거야! 땡큐!’”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p.105

막례 인생은 이제부터야!

유튜버가 된 뒤 손녀는 할머니에게 늘 새로운 도전을 권했다. 처음 호주로 떠났던 이유처럼 성취감을 느끼고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광고를 기회로 못 해봤던 여행도 제대로 해보고, 할머니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책을 출판하며 작가도 되어보고, 유명인부터 외국인 사장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유튜브 CEO와 토크쇼도 했다. 신기한 건 할머니는 도전에 주저하지 않았다. 영어를 못해도 외국인들과 단숨에 친구가 되고, 일생 해본 적 없는 일을 시도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다. 할머니는 특히 여행을 좋아했다.

“여행을 떠나면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고, 새로운 경험이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

할머니는 세상을 여행하면서 마음으로도 여행을 떠났다. 과거에 간절히 하고 싶었지만 가난해서, 혹은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떠올렸고, 하나씩 해나갔다.

“촬영하다 깜짝 놀랬다? 아니, 촬영하는 곳에 뭔 애버랜드 장난감 같은 것이 있어가지고.”

(할머니는 유튜브에서 유명한 ‘지니’라는 친구와 영상을 찍고, 장난감 구경을 했다.)

“지니 씨, 장난감 하나 파는 거여?”

“여기서요? 아뇨, 아뇨. 여긴 팔지 않아요.”

“나, 누구 하나 선물 할라 그랬더니 여기서 못 산다고 하네이.”

“선물 받을 친구 나이가 어떻게 돼요?”

“오십 둘.”

“하하하하하하.”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채널 ‘가난했던 그 시절엔 못줬어, 아들 딸 놀래킨 할머니의 선물’편 중에서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채널 ‘가난했던 그 시절엔 못줬어, 아들 딸 놀래킨 할머니의 선물’편 중에서

“내가 자식들이 클 때 못 사줘가꼬 마음이 아퍼. 사주라고 막 징징대고, 학교 갈 때도 그놈 안 사준다고 발 동동거리고 막 울고 그랬어. 그거 사줄 돈 있으면 국수 사다 먹고 연탄을 사겄는디 그거 사달라고 한다고 욕을 욕을 다 퍼붓어놨어.”

할머니의 선물을 받은 딸과 아들은 그 장난감을 한참 쳐다보았다.

“엄만 그때 사주지 못한 걸 얼마나 가슴에 담아두고 있었을까.”

사십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서야 할머니는 마음의 한을 풀 수 있었다. 장난감 선물도 했지만,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한 두 아들과 함께 여행도 다녀왔다.

“우리 애들 어려서 못 해줬던 것들을 나이 들어서 해주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거보니까 진짜 나도 행복하더라.”

유튜버가 된 후 할머니의 삶은 달라졌다. 평생 가지 못했던 곳으로 여행도 떠나고, 유명한 사람들도 만나고, 토크쇼도 해보고. 먹고사는 것이 바빠 자식들에게 주지 못했던 마음도 전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말했다. “내 인생은 이제부터야!”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할머니는 ‘할아버지’라는 단어만 나와도 화를 내며 욕을 했다. “느그할아부지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놨어. 지금이라도 뉘우쳐가꼬 죽어서라도 나를 좀 도와주지 않고는….”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죽은 게 내 마음이 편하다가도 당신이 너무너무 불쌍해. 이 좋은 세상 두고 앞에 간 게 불쌍해! 인간아, 그니까 나한테 잘했으면 지금 같이 비행기 타고 하늘 날아다녔을 텐디….”

인생에 찾아온 변화의 기쁨을 누리며 할머니는 어두운 미래밖에 보이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며 살았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최승광(STUDIOESKEY)
ⓒ최승광(STUDIOESKEY)

“인생이라는 게 참…. 세상에서 내 인생이 제일 불쌍하다 싶을 정도로 힘들었는데 말이여. 그때도 그 시련이 나에게 올 줄 알았는감?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구먼. 일흔한 살에 이런 행복이 나한테 올 줄 알았는감?”

그래서 새로운 경험에 푹 빠져 신나게 즐기기도 하지만 할머니는 그 순간에도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고, 그들과 좋은 것을 나누고 싶어 했다. 자식들뿐 아니라 자신처럼 고생하며 살았던 친구들과도, 그리고 늘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았던 할아버지와도. 그리고 늘 고마운 편(팬)들에게도 자신의 지난 삶처럼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지 말라고, 늘 내일을 걱정만 하고 살았다면 기대도 해보라고 위로를 건넸다.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기자가 할머니에게 이 유튜브 영상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자, 할머니는 “고향 친구가 많이 아픈데 내 영상을 틀어주면 웃는다고 하더라. 내가 자기 보약이라고 한다. 아프다고 하는데 내 영상 보고 웃었다고 하니까 좋제.”라고 답했다고 한다.

호주 여행을 처음 떠나던 순간 할머니는 삶이 이렇게 변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할머니가 ‘삶은 결국 이런 거구만’ 하며 포기하려던 순간, 손녀는 ‘할머니가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며 할머니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삶의 끝자락에서 있던 할머니는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범했던 할머니는 이제 누군가에게 웃음과 위로를 주는 존재가 되었다.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지금 어려운 게 다가 아니야.”라고 말한다. 자신처럼 삶이, 혹은 마음이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곳으로 오라며, 자신의 손녀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새로운 세계로 잡아당기고 있다.

누구나 크든 작든 삶의 변화를 꿈꾼다. 하지만 변화를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삶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기자는 박막례 할머니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변화는 의지가 굳은 사람에게가 아니라 마음이 삶의 끝자락에 서본 사람, ‘이대로 살 수는 없다’며 새로운 길을 더듬거리며라도 가보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게 아닐까.’

혹시 스스로 ‘이렇게 살아서는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새해에는 새로운 여행을 떠나보자.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날아가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에 귀를 기울이고,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걸어보자. 그 길을 실제로 가보기 전에는 우리에게 어떤 삶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발췌도서 <박막례,이대로 죽을 순 없다>박막례, 김유라 지음(위즈덤하우스)
발췌도서 <박막례,이대로 죽을 순 없다>박막례, 김유라 지음(위즈덤하우스)

<박막례 할머니& 김유라 PD를 만나다>

Untact Interview

Q. 안녕하세요! 벌써 유튜버 3년 차가 되어가네요. 무엇이 달라졌나요?

박막례 옛날에는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것도 웃겼어요. ‘이것을 누가 본다고 여기서 떠드는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 떠드는 거여. 핸드폰 속에 내가 나오는 것도 웃기고. 근데 지금은 ‘내 편(팬)들이 이걸로 나를 보는구나’ 다 이해하고 신나게 떠들어요. 인스타그램도 내 편들이 댓글 달아주는 거 다 보고 아주 재밌어요. 이게 다 우리 편들 덕분이라 행복하고 감사해요.

Q. 유튜버가 된 후 수많은 여행을 다녔는데요, 그 중 가장 그립고 기억에 남는 여행은 언제인가요?

김유라 저희는 매년 그 이야기를 해요.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호주에서 산타 모자를 쓰고 자유롭게 첫 여행을 가던 그날을 떠올려요. 그 여행으로 우리 인생이 뒤집어진 것이기도 하니까, 늘 호주와 캥거루에게 감사하고 있답니다.

박막례 젤로 기억에 남는 여행 뽑으라고 하면 그 호주여. 처음 간 여행. 날이 추워지면 ‘아, 이맘때 호주 갔었는데’ 하고 머리에 탁 생각이 나는 거여. 그때 호주랑 한국이랑 날씨가 정반대인지도 모르고, 호주는 쪄죽겄는디 나는 멋부린다고야, 가죽잠바 가져간 기억이 나.

Q. 올해는 코로나로 해외를 많이 다니시지 못해 속상하셨을 것 같아요.

박막례 코로나 때문에 공항을 안 간지 1년이 넘어부렀어요, 시방. 코로나가 언제 사라질랑가 모르겄네. 그래도 올해는 편(팬)들 덕분에 요리책을 냈어요. 요즘에는 밥을 사먹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데, 이 책을 보면서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Q. 손녀와 할머니에게, 서로 고마운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박막례 사람들이 다들 손녀딸 잘 키웠다고 그러는데 나는 “얘는 지가 알아서 컸어요.” 그래요. 먹고사느라 바빠서 “내 새끼, 내 강아지” 하고 많은 사랑을 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커서 나를 생각해주니까 너무 고맙제. 그리고 유라가 항시 뭐 촬영할 때 “할머니, 이건 어때? 이건 어때?” 하고 물어봐주고, 내가 조금 머뭇거리거나 하면 유라는 바로 안 해요. 그러니까 항시 나를 신경써주고 챙겨주고, 할머니 우선으로 하니까 내가 같이 다녀도 너무 편해요. “할머니는 이것도 몰라!” 이렇게 안하고 할머니가 모르면 1부터 100까지 하나하나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는 거여. 그게 유라한테 항시 고마워요.

김유라 저는 할머니를 통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에 대한 영감을 많이 받아요. 나이가 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고요.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정말 많아요. 또 새로운 분야에 겁먹지 않고 도전하려는 의지를 보여줘서 고마워요. 제 할머니라서가 아니라, 크리에이터 박막례로서 정말 매력 있는 사람이다 생각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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