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위를 맴돌고 있던 죽음

필자가 어릴 때 살던 집은 30호 정도 모여 사는 두메산골 동네의 맨 위쪽에 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들에 가셨다가 지게에 무엇인가를 지고 들어오셨는데, 목이 마르다며 우물에 가서 시원한 물 한 주전자만 떠오라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수도가 없었다. 나는 동네 공동우물에 가서 왼손으로 우물 턱을 꽉 잡고 오른손으로 물을 주전자에 떠 담으려고 했다. 하지만 팔이 짧아서 손이 물에 닿지 않았다.

주전자가 우물물에 닿도록 조금씩 조금씩 우물 안으로 몸을 깊이 집어넣다가 그만 상반신이 우물 턱을 넘어서는 바람에 풍덩 빠져버렸다. 나는 거기서 그렇게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마침 우물 근처를 지나시던 친구 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급히 달려와 나를 건져내 주셨다. 7살 때 일로 기억한다. 그것이 내 뇌리에 남아 있는, 하마터면 죽을 뻔한 첫 경험이었다.

(일러스트=김현정)
(일러스트=김현정)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홍역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아무리 봐도 살 것 같지 않아서 출생신고도 하지 않고 있다가 고비를 넘긴 뒤에야 한 살 늦게 내 이름을 호적에 올리셨다. 옛날 경상도에서는 홍역 치르는 것을 ‘과거본다’고 하거나 ‘과거한다’는 표현을 썼다. 홍역을 치르고 살아남기가 과거 시험에 급제하는 것만큼 어려웠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약골인 나는 어렸을 적부터 죽음이라는 불청객과 여러 번 마주쳤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늘 “얘야, 이제 올해는 액땜했다”며 위로해 주시곤 했다. 어쨌든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액땜을 했다니까 ‘정말 그런가?’ 하면서도 그렇다고 하시니까 그런대로 위로가 되었다.

고등학생 때 한번은 새 방을 얻어서 이사를 들어간 첫날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었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나는 병원에 실려갔고, 그 일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각하게 죽음 앞에 서서 인생과 영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어릴 때는 죽을 뻔한 일을 만나도 ‘아, 운이 좋았구나. 다행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나갔다. 가끔 상여를 멘 동네 사람들의 장례 행렬을 보면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어머니를 잃은 사람은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을 한 번씩은 했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지만, ‘만일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하는 생각에 이르자,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두렵고 불길하게 여겨져서 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에서 바로 쫓아내버렸다. 나는 어머니를 너무 좋아해서 어머니 없이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분이었고, 내 존재의 기반이요 내 마음의 천국과도 같았다. 몸이 허약한 나는 병치레를 자주 해서 어머니 마음고생을 많이 시켰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온갖 희생을 하셨다. 나 때문에 흘렸던 어머니의 눈물은 내 가슴에도 떨어져 마르지 않았고, 나 때문에 숯검정이 되었을 어머니의 가슴을 나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자식을 위해서라면 살을 깎아 먹인들 아깝겠나?”라고 말하신 적이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죽음이라는 단어와 연결시킨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불경스럽고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영원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면?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깨어난 후, 나는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죽음은 예상보다 더 가까이 내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다. 죽을 만한 일들을 겪으면서 언젠가 알지 못할 순간에 찾아올 죽음을 나 홀로 맞이해야 한다는 상황은 무척 두려웠다. 무엇보다 죽음 이후에 내 영혼靈魂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어서 더 번민했다. 그 해답은 종교에 있을 것 같아 나는 여러 종교 서적들을 읽어보았고, 종교인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보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내 마음에 해답이 되지는 않았다.

그동안 삶에 열중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죽음이 찾아온다면?’ ‘갑자기 인생의 막을 내리고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내가 10대나 20대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같이 한미한 존재야 세상에서 사라져도 누가 알기나 하겠나? 세상은 내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다들 자기 삶에 바쁠 것이고, 또 그렇게 흘러가겠지.’

그때 나는 미션 스쿨에 다니고 있어서 학교에서 일주일에 두 시간씩 성경을 배우고 읽었는데, 성경에 따르면 죄 때문에 사망이 오게 되었다고 했다. ‘천국에 못 가면 지옥에 간다는데, 나는 성경을 모르고 예수를 믿지도 않지만 내 마음에 부끄러운 죄들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예수님은 분명히 나보다는 훨씬 뛰어나고 위대한 분이신데, 만일 그분의 말씀이 진리라면? 나는 사후 세계를 안 믿었는데 어느 날 죽음이 찾아와서 죽고 보니 내가 믿지 않았던 지옥에 떨어진다면?’ 이런 고민이 시작되었다.

인생의 가장 큰 문제 ‘죽음’

나는 내 미래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기특하게도 사람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미리 안다. 인생의 4고苦라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죽음’이었다.

인생의 끝에 죽음이 놓여 있다면 결국 인생은 출생 후 이미 정해져 있는 죽음 안에서 잠시 살다 가는 것이 아닌가?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출발하는 것이며, 세상이라는 거대한 감옥 안에 수감되어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다고 생각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고 죽음 앞으로 점점 다가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살아가는 것은 다른 방향에서 보면 곧 죽어가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도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없지만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다. 죽는 것이 무섭지 않다고 큰소리를 떵떵 치는 사람도 죽음과 절멸絶滅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 깊은 곳엔 앙금으로 남아 있는 법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부정하고 한사코 죽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려고 애쓴다. 그러나 삶은 늘 죽음과 동거하고 있다.

대구의 어느 가톨릭 성직자들 묘지 입구에 ‘Hodie Mihi, Cras Tibi’(호디 미히 끄라스 띠비)라는 라틴어 문구가 새겨져 있다. 번역하면 ‘오늘은 나, 내일은 당신’이라는 뜻으로, 오늘은 내가 죽어 여기에 누워 있지만 내일은 당신 차례라는 말이다. 죽은 자들이 산 자들에게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생각지 말고, 산 자들도 살아 있을 때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다.

죽음이 과연 모든 것의 끝일까?

나는 죽음에 대해 여러 날 생각하면서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을 정학히 알았다.

1. 모든 사람은 한 번 반드시 죽는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2.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어도 죽는 데는 순서가 없다.

3.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4. 죽음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5. 죽음은 미리 경험할 수 없다.

그런데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인가, 죽음 너머에 다른 세계는 없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죽음과 함께 ‘나’라는 존재가 영원히 사라져버린다면 인생이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다. 만일 여러 종교의 가르침대로 사후의 세계가 있고 죽음 이후에 심판과 형벌이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내가 형벌을 면하고 좋은 세계로 갈 수 있을지, 아니면 형벌을 받고 고통을 받는 곳에 가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통계상으로 전 세계 인구의 약 85퍼센트에 가까운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종교에는 세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물질로 구성된 육체가 인간의 본질이 아니고 육체와 전혀 다른 영혼이 있으며, 육체보다 영혼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것, 둘째는 지금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내세가 있다는 것, 셋째는 사후에 영혼에 대한 심판과 형벌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혼이 육체를 떠나서 가는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정현채 전 서울대 의대 교수도 사후 세계를 믿는 사람이다. 그는 “쉰 살 무렵, 나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죽음과 관련이 있는 수백 권의 문헌과 의과학 논문을 읽고 동영상 자료를 찾았다. 실증주의 교육을 받아 체화한 과학자로선 인정할 수도 없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던 영적 체험들이 단순한 착각이나 환상이 아니라 분명한 실재實在임을 과학자의 입장에서 알게 됐다”고 하면서 “죽음은 꽉 막힌 돌담 벽이 아니고,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열린 문이다. 이게 단순히 믿음의 문제가 아니고, 이걸 뒷받침해 주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있다.

죽음 근처까지 갔다 온 근사체험이나 삶의 종말 체험을 보면 충분한 근거들이 있다”고 했다. 최근에 그는 ‘죽음학’에 대하여 강의를 하고 저술활동도 하고 있는데, “사후 세계는 실재할 뿐만 아니라 장엄하고도 장대한 세계이다. 너무나도 많은 증거들이 있기 때문에 없다고 말하기가 곤란하다”라고 했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몸을 떠난 영혼이 가는 영원한 세계가 있다면, 그리고 영혼에 대한 심판이 정말 기다리고 있다면, 이것은 인생에서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은 사람은 정말 ‘럭키’한 사람일 것이다. 인간은 영원불멸하지 않고 인생도 한 번뿐인 것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한번 지나간 뒤 다시 오지 않을 날들을 잠시라도 헛되이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 있는 날들이 더욱 소중해지면서 더 의미 있고 값지게 보내기 위해 중요하지 않게 여겼던 일상도 다시금 바라보게 될 것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가져간다. 죽음은 인간의 잘난 것이나 자존심이나 명성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그래서 죽음은 때로 스스로 놓을 수 없는 것들을 놓게 하고, 스스로 비울 수 없는 자신을 비우게도 해준다. 죽음은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도 해주고, 사람의 마음을 낮아지게도 해준다.

사형을 집행하기 직전에 사형 집행이 정지되어 살아난 도스토예프스키가 감형 직후 동생에게 쓴 편지는 우리 모두가 음미해볼 만하다.

“실수와 게으름으로 허송세월했던 날들을 생각하니 심장이 피를 흘리는 듯하다. 인생은 신의 선물 … 모든 순간은 영원의 행복일 수도 있었던 것을 조금 젊었을 때 알았다면 … 이제 내 인생은 바뀔 것이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글쓴이 이한규

고향이 경북 성주인 그는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성장했다. 사범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한 뒤, 교단에서 여러 해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경험들을 토대로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 철학과 부모의 역할에 대하여 꾸준히 글을 써 오고 있다. 전국 대안학교 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을 지냈고, 최근에는 청소년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 특강 및 개인 상담을 온라인으로 하고 있다. 본지 외에 신문에도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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