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을 시작하다 ③

작년 2월, 코로나는 평화롭던 일상을 침범했다.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학교에 갈 생각에 들떠 있었으나, 비대면 수업으로 자연스레 그 기대감은 사라졌다.

이 시기에 엄마는 치킨집을 여셨다. 이미 예약금을 걸어둔 터라 시국이 좋지 않아도 장사를 시작해야 했다. 사실 당장 치킨 가게를 운영하는 것 말고는 금전적 벌이를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사를 시작했다. 다행히 온라인으로 전환된 수업 덕분에, 나는 가게 일을 도울 수 있었다.

몸 쓰는 일을 처음 해보는 엄마의 팔엔 기름 튄 자국이 무성했고, 아르바이트가 처음인 나는 모든 게 서툴렀다. 첫 개업 날엔 치킨을 잘못 튀겨서 항의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보고 본사 직원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어떻게든 장사를 이어갔다. 주방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해 구인광고를 내고 아주머니 한 분도 고용했다. 아르바이트라서 그런지 확실히 친절하지 않았다. 결국 아주머니는 3주 만에 그만두었다.

장사를 해보니 생각보다 인건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엄마를 도았다. 학생인지라 하루 종일 가게 일을 돌볼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주 5일 하루 12시간을 근무했다. 정말 힘들었다. 내가 가장 바쁘게 살았던 때를 꼽으라면 바로 이때일 것이다. 대학 동기들과 몇 명씩 모이는 자리에도 참석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홀 서빙부터 포장, 주방보조, 배달을 했다. 치킨을 튀기는 일 말고는 모든 일을 도맡아 했다. 처음 해보는 가게 일이었지만 빠른 습득력을 보이며 금방 적응했다. 일을 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돈 벌기 참 힘들구나.’ 지금까지 용돈을 타 생활해 왔지, 돈을 벌어본 적은 없었던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배움의 즐거움과 육체적 고됨을 함께 느꼈다.

가게에 오신 손님들은 종종 나를 ‘아가씨’라 불렀다. 차라리 ‘저기요’라고 해주면 좋겠건만…. 그 말이 참 듣기 싫었다. 하루는 엄마가 배달을 나가고 늦은 저녁 혼자 가게를 보고 있었다. 술에 만취한 아저씨 세 명이 들어오자마자 “아가씨, 가까이 와서 주문받아!!” 하며 나를 불렀다. 너무 무서웠다. 웃으면서 주문을 받았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빛이 게슴츠레했다.

때마침 배달을 마치고 엄마가 가게로 들아왔고, 아저씨들은 엄마를 보자 ‘사장님’이라 불렀다.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내가 배달을 가면 다들 놀란 기색으로 나를 훑어본 후 치킨을 받았다. 여성 배달원은 드물다 보니, 치킨을 받고 당황해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한번씩 엘리베이터에서 배달 대행 아저씨를 만나면 “어디 소속이냐?” 물으시고, 지름길을 알려주곤 하셨다. 그러면서 ‘여자가 대단하다’며 한마디 던지고 가셨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여자인 내가 해도 딱히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했는데….

종종 주문 전화를 받으면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께서 “가게에서 제일 잘 나가는 게 뭐냐?”며 여러 가지를 물으신다. 인기 많은 메뉴와 신메뉴를 알려드리면 다 들으시곤 결국 모두 ‘프라이드’를 달라고 하신다.

개업한 지 한 달이 지나, 남자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 고용했다. 매장 마감과 기름 정제가 주 업무였다. 하루는 그 아르바이트생이 기름을 정제하던 중, 호스를 놓치는 바람에 옆에 계시던 엄마께서 기름을 다 뒤집어쓰셨다. 모자를 쓰고 있어 두피는 보호할 수 있었지만, 목과 팔에 화상을 입었다. 바로 화상병원을 가자고 했지만 엄마는 끝끝내 괜찮다며 가지 않으셨다. 그리고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던 아르바이트생은 다음날 그만 두었다. “저, 오늘부터 관둘게요.” 일방적인 문자와 함께. 주말이었던 그날, 우린 참 막막하게 가게 문을 열었고, 외할머니의 도움으로 무사히 하루를 넘길 수 있었다.

하루종일 치킨을 튀기며 몸에 밴 기름냄새를 가지고 집에 오면 중학생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엄마가 아침 아홉 시에 나가 새벽 한 시에 돌아오는 동안, 동생은 혼자 있었다. 동생이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는 동생은 우리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 때도 있었고 깨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오면 동생은 “수고했어” 하며 우리를 꼬옥 껴안아주었다.

참 애교 많은 동생이다. 하루는 동생이 엄마의 화상 자국을 보며 걱정을 했다. 그리고 그만두면 좋겠다는 말을 에둘러 했다. “나 외로워, 혼자 있기 싫어” 하며. 동생도 온라인 수업과 대면 수업을 병행해서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을 텐데…, 챙겨주지 못해 미안했다.

엄마와 나는 두 달을 채우고 치킨집 문을 닫았다. 금전적인 여유가 생긴 건 아니었지만, 어린 동생을 신경 써주지 못한 것이 큰 이유였다. 나 또한 학업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이유도 컸다. 3월과 4월은 죽은 듯이 일만 했다. 정신없는 두 달을 보내며 학교 강의 출석 체크를 못하고 지나간 일주일도 있었다. 1학기는 3점 중반대의 성적에서 끝을 맺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쉽다.

좋은 성적으로 끝맺진 못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했다면 했다. 큰 보상은 없었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배울 수 있었다. 엄마는 두 달간 수고했다며 용돈을 주셨다. 어쩌다 시작한 장사는 코로나와 겹쳐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좋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모든 일에 실패를 실패로만 생각하지 않고, 성공에 필요한 경험이라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기로 했다.

많은 것을 알게 된 2020년이었다. 모두가 처음 마주한 세상에 자연스레 적응하고 있고 나 또한 그렇다. 겨울방학 동안 새로운 시도도 해보았다. 일주일 중 3일은 물류센터에서, 2일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나머지 2일은 온전한 나의 시간을 가졌다. 평소 좋아하던 기행문을 하루 종일 읽기도 하고, 학교에 가서 악기 연습을 하기도 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하루에 100층을 오르는 것도 실행했다. 건강해야 코로나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2020년을 거름삼아 2021년을 준비했고, 2021년의 처음을 시작하고 있다. 2021년은 또 어떤 일들이 한 해를 채울까? 그것이 실패든 성공이든 상관없다. 부딪치고 경험한 것들이 날 발전시킬 것을 알고 있으니까. 2021년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될 뿐이다.

글=심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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