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의 명장, 이종열

올해 83세인 이종열 조율사는 피아노 조율 부문 대한민국 명장 1호다. 그는 지난 65년간 ‘피아노 조율’이라는 외길을 걸어왔다. 사람들은 그 정도 오래 했으면 눈감고도 조율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그에게 묻는다. 대답은 단호하다. “쉬웠던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지금 제 나이가 여든이 넘었는데 작년보다 올해, 어제보다 오늘이 더 발전하고 있어요.” 그가 같은 일을 오래 하고 있으면서도 날마다 새롭게 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현재 전속 조율사로 근무하는 예술의전당에서 그를 만났다.

(사진=박종도)
(사진=박종도)

인터뷰 일정 잡기가 쉽지 않았는데, 무척 바쁘신 것 같습니다.

예술의전당이 월요일은 휴관이라서 그날 저는 볼일도 보고 쉬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가정집에서 조율해달라는 연락을 많이 받아요. 코로나 때문에 줄리아드 음악원 등에 유학 중인 학생들이 대부분 한국에 들어와 있어서 그렇지요. 그 요청을 외면할 수 없어 이번 주에도 두 집에 출장을 갔습니다. 피아노 한 대 조율하는 데 4시간이 걸려서 여덟 시간을 꼬박 일했어요. 그날 과로했는지, 화요일 출근해서 피곤하더라구요. 그래도 일을 해야 건강이 지켜져요. 이 나이에도 아침밥 먹고 나갈 곳이 있고, 여기서 젊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일을 하면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피아노 조율이 확실히 특별한가 봅니다.

요즘은 전자 조율기의 바늘 끝을 보고 조율하는 세상이에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청각 조율을 고집합니다. 단, 기준음은 전자 기계로 잡고 있지요. 조율이란 피아노의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누군가는 조율사를 피아노 고치는 기술자로 보기도 하지만, 저는 조율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소리에 힘이 겸비되면 조율사가 감동하고, 다음으로 연주자가 감동하고, 끝으로 청중이 감동하거든요.

제가 청각 조율을 선택하는 이유는 가장 아름다운 음을 내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전자 조율기는 피아노의 음 하나하나와 일대일로 맞추어 나가는 방식인데, 저는 조율은 타협이라고 생각해요. 음 하나를 결정할 때 상하 옥타브에게도 물어보고 상하 4도, 5도 등에게도 물어봐야 해요. “내가 여기에 서도 되는가?” 그래서 모두가 “오케이!” 해주면 그 음이 거기에 서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 조금만 어긋나면 화음이 안 맞습니다.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셨지요? 선생님의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이제 겨우 쓸 만한데 여든이네’로 제목을 정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19살 때부터 조율을 시작했어요. 친구 따라 우연히 교회에 갔다가 작은 풍금을 보고 마음을 빼앗겨버렸죠. 학교 마치고 예배당으로 가서 새벽 한 시가 넘도록 풍금을 연습했어요. 그러다 화음이 불안정한 풍금 소리를 듣고 소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나중엔 일본에서 건너온 조율 책을 번역해 읽으면서 독학을 했어요. 조율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요.

결국, 군대를 다녀와서 수도피아노사 공장에 조율사로 처음 취직을 했습니다. 그때 다른 동료들보다 제가 조율을 제일 빨리하더라고요. 제가 대단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공장에서 나와 조율에 대해 연구를 하면 할수록 제가 잘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빨리만 할 줄 알았지, 섬세하고 정밀하게 조율할 줄은 몰랐던 겁니다. 결국 조율을 다 잘못해 놓은 거였어요.

그래서 또 책을 사다가 연구하고, 연습하고, 공부했습니다. 실력이 좋아졌고, 어느 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연락이 왔어요. 같이 일하자고. 그때 ‘이야, 내가 한국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는구나’ 하고 마음이 부풀었죠. 그런데 가보니까 대극장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이 오는 거예요. 그분들 나라의 피아노 조율 수준은 꽤 높을 텐데, 제가 엉성하게 하면 말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니 아찔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또 이 방법 저 방법 연구했습니다. 일을 잘못해서 망치기도 하고, 실수도 하면서 조금씩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들리는 소리도 달라지고, 점점 더 섬세하게 조율하게 되었어요. 요즘은 제가 조율한 피아노 소리를 들어보면 솜씨가 이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어느덧 여든이네요.

ⓒ민음사 제공
ⓒ민음사 제공

인터뷰를 하던 날,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공연 때 사용할 피아노를 홀 안에서 고르고 있었다. 그 과정을 조율사 대기실 모니터로 지켜보고 있는데, 잠시 후 백건우 씨가 그를 찾았다. 그러자 “어휴” 하고 그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피아니스트의 주문은 ‘중간 건반을 더 풍성하고 부드럽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몇 십 년간 조율을 해왔지만, 일 앞에서 긴장하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려나?’ 하고 깊이 고민했다. 공연장의 최전방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가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조율을 하며 지낸 오랜 세월을 돌아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요.

두 가지가 생각납니다. 아직도 제자들에게 종종 하는 일화가 있어요. 한번은 서울의 어떤 음악 홀에 갔는데 울림이 없어서 피아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책에 그럴 땐 해머에 경화액을 사용해서 피아노 소리를 키워야 한다고 적혀 있었어요. 그래서 피아노 한 대에 경화액을 투여했는데 울림이 더 짧아진 거예요. 앞이 캄캄했습니다. ‘다시 소리를 돌려놓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그날 밤 한숨도 못 자고 고민했어요. 그리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다시 반대 작업을 했죠. 그 이후로는 절대로 해머에 용액을 바르지 않습니다. 그때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모르는 것도 많고, 제가 하는 일들이 얼마나 엉성했는지 몰라요.

두 번째 순간은 언제인가요?

2003년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한국에 왔을 때 일입니다. 지메르만은 세계 정상 피아니스트 가운데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예술가인데, 전속 조율사가 한국에 오지 못해서 제가 피아노 조율을 맡게 되었어요. 얼마나 긴장되고 부담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조율을 마치고 공연이 시작됐을 때, 휴게실에서 모니터는 꺼두고 제발 아무 탈 없이 공연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누가 뛰어와서 “선생님 빨리 오세요. 연주자가 찾아요.” 그러는 거예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막 달려갔는데 피아니스트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앞에 서니까 손을 내밀어서 내게 악수를 청하더라고요. “Thank you very much.” 그리고 무대 안으로 들어가더니 청중들의 박수를 멈추게 한 뒤 “완벽한 조율로 최상의 피아노를 만든 미스터 리에게 감사를 표합니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와, 나한테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구나!’ 놀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이왕이면 제 손을 붙잡고 무대에 나갔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하하하).

사실, 피아니스트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피아니스트들이 제게 고맙다고 인사해주실 때면 기분이 참 좋아요. 무엇보다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이 피아노가 좋아서 연주도 잘 마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한국을 좋게 바라볼 때 저는 가장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바쁜 일정에도 제자들 수업은 잊지 않으신다고 들었습니다.

명장 타이틀만 자랑할 게 아니라 명장으로서 할 일을 해야지요. 제가 조율 일도 열심히 하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제자들에게 기술을 전수해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고생했지만, 제자들은 길을 바로 걸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그래서 피아노 조율에 대한 책도 내고, 튜닝아트라는 조율사 모임을 만들어 오랫동안 제자들과 만남을 이어가고 있어요. 최근에는 코로나로 잘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요. 제자들 가운데 삼십 년간 가르쳤던 한 친구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조율사로 일하고 있는데, 정말 대견합니다.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시나요.

세게적인 유명 피아니스트의 CD를 사서 많이 들어보라고 합니다. 피아노가 최상급 상태일 때 녹음을 하잖아요. 설탕만 먹고 산 사람에게 꿀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안 먹어봐서 몰라요”라고 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 좋은 피아노 소리를 미리 맛보라는 거죠. 조율할 때 좋은 소리를 연상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소리가 날까?’ 스스로 연구하면서 배울 때 성장할 수 있어요. 물론 그 기술을 손에 익히고 배우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실수도 하면서 티끌처럼 조금씩 배워가다 보면, 그게 오랜 시간 쌓여 어느새 태산 같은 실력이 돼요. 그건 누구도 가져가지 못하죠. 

현역으로 언제까지 조율사 활동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하는 일엔 정년이 없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이 나이에도 벌이가 있으니까 손자들한테 용돈도 펑펑 주고(하하). 그리고 제자들에게 기술 전수도 계속해야지요. 뒷사람이 저보다 더 나아야지, 못하면 되겠습니까? 조율 일은 하늘에서 ‘너는 이제 그만하고 올라와라’ 할 때까지 계속 하고 싶습니다.

그의 집 서재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건너온 조율 관련 서적들과 피아노 레코드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펴서 공부하고 레코드에 녹음된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가 ‘좋은’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그와 같은 소리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그렇게 늘 새로운 소리를 듣고, 더 높은 수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그는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익숙함과 나태함, 자만심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초심을 잃지 않고 처음처럼 살려 노력한다. 그런데 이종열 명장은 ‘처음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늘 ‘처음’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했다. ‘조율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 역시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주변에 귀를 기울여보자. 거기서 아름다운 소리를 발견하고, 그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내디뎌보자. 그렇게 걸어가는 동안 우리의 하루하루는 늘 새로워질 것이다.

그가 조율의 길로 들어서서 예술의전당에서 일하기까지의 기록과 국내외 피아노 연주자들과의 잊지 못할 일화들 그리고 쉽게 풀어 쓴 조율의 실제까지. 한 분야의 전문가로 살아온 이야기를 민음사에서 <조율의 시간>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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