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벅의 <대지>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펄 벅의 <대지>는 중국으로 이주한 작가의 견문을 토대로 중국인인 ‘왕룽’과 그 일가의 역사를 그린 작품이다.

소설은 왕룽의 결혼식 날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이 많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며 홀로 농사를 짓던 왕룽은 황부잣집 하녀인 오란을 아내로 맞는다. 그녀는 몸이 튼튼하고 네모난 얼굴에 알 수 없는 슬픔이 깃든 성실하고 우직한 여자였다. 왕룽은 오란과 결혼한 후 자신의 삶이 호강스럽다고 느낀다. 매 끼니마다 식사가 준비되어 있고, 집안에 땔감이 넘치며, 시키지 않아도 소에게 여물을 주고 농사일까지 돕는 오란 덕분에 집안이 깨끗하고 풍성해졌기 때문이다. 얼마 후 오란이 아들을 낳는데, 산파도 없이 혼자 아이를 낳고 다음 날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오란은 밭일을 하러 나간다. 왕룽은 그런 오란을 보며 만족스러워한다.

부지런한 오란 덕분에 살림이 점점 풍성해져 가던 중에 심각한 기근이 찾아오고, 왕룽의 가족은 굶주림에 시달리다 살길을 찾아 남방으로 떠난다. 남방은 돈만 있으면 풍족한 곳이었으나, 도시의 한편에는 거지들이 들끓고 있었다. 갈 곳이 없는 왕룽의 가족도 그들과 함께 움막에서 지낸다. 오란과 아이들은 구걸하고 왕룽은 인력거꾼이 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남방 땅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왕룽의 움막 근처에 있던 부잣집도 사람들에게 약탈을 당한다. 왕룽과 오란도 사람들과 함께 부잣집으로 밀려들어간다. 그곳에서 왕룽은 미처 도망치지 못한 주인에게서 은전 한 줌을 얻고, 오란은 부자들이 벽 뒤에 숨겨둔 보석 주머니를 찾아낸다. 그 덕에 왕룽의 가족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대지>는 1937년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지>는 1937년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큰 반향을 일으켰다.

왕룽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땅’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오란이 남방에서 가져온 보석을 팔아 황부잣집의 땅을 조금씩 사들인다. 그 땅에서 왕룽과 오란은 열심히 일하고, 풍년이 계속된다. 남은 곡식을 판 돈으로 다시 땅을 사들여 토지가 날로 늘어나서 왕룽은 마침내 대지주가 된다.

여유가 생기자, 왕룽은 아내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예쁘지도 않고 명랑하지도 않다. 무명버선을 신은 큰 발도 밉게 보인다. 결국 왕룽은 시내 찻집을 드나들며 ‘롄화’라는 기생에게 푹 빠진다. 롄화를 위해 변발을 하고, 황부자가 신던 검은 벨벳 신을 사서 신는다. 오란이 가장 아끼던 진주 귀걸이마저 빼앗아 롄화에게 준다. 나중엔 큰돈을 들여 롄화를 첩으로 들인다. 그런 왕룽에게 오란은 서운한 마음을 비추지만 왕룽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지주가 되었음에도 늘 아끼고, 끊임없이 일만 하는 오란에게 싫증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자 롄화에 대한 왕룽의 애정도 식고, 그즈음 오란에게 병이 찾아온다. 왕룽은 미안한 마음에 뒤늦게서야 병든 오란을 극진히 간호하지만 오란은 결국 죽고 만다. 며칠 후, 그 충격으로 왕룽의 아버지마저 죽는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왕룽이 소유한 토지는 계속 늘어났고, 마침내 왕룽은 과거에 황부자가 살던 저택을 사들인다. 자신이 원하던 것들을 대부분 소유한 왕룽은 그의 눈을 아들들에게로 돌린다. 그는 맏아들을 학자로, 둘째를 상인으로, 셋째는 농부로 키우려고 하지만 아들들은 서로 다투고 가출하는 등 왕룽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왕룽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세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직감하고, 자신들이 물려받을 땅을 서로 나누고 그 땅을 팔 계획을 세운다. 왕룽은 죽는 순간까지도 아들들에게 땅을 팔아선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르지만, 아들들은 왕룽의 머리 너머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펄 벅의 <대지>는 장편 소설이지만 스토리가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다고 말하는 독자들이 많다. 나 또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가난한 농부인 왕룽이 땅을 넓혀가면서 대지주가 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왕룽과 오란이 가난하게 살 때 성실히 일하며 땅을 생명처럼 여기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고, 이후에 땅에 대한 가치를 잃고 방황하는 왕룽의 모습은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왕룽과 오란의 삶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왕룽과 오란의 유언이 말하는 것

“나는 못생겼어. 그래도 나는 아들을 낳았어. 나...는 남의 집 종이었어. 그러나 지금 내 집에는 훌륭한 자식들이 있어. 그 인간(롄화)이 어떻게 나처럼 그이를 먹여주고 보살펴줄 수 있겠어. 예쁘다는 것으로는 아이를 낳지 못해.”

오란이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어린 나이에 부잣집에 하녀로 팔려 갔던 오란에게 있어서 삶의 목표는 ‘하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번듯한 가정을 일구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란은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도 꿋꿋하게 이겨냈으며, 좀 부정한 방법이긴 했지만 부자의 보석을 가져와 집안을 다시 일으켰다.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었고, 땅을 살 수 있었으며,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원하는 목표를 이룬 것 같았을 때 남편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면서 첩을 들였다. 오란은 부지런히 일해서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고 그것으로 남편의 관심을 받으려고 했지만, 결국 병이 들어 죽어야 했다.

“우리는 땅을 파먹고 살아왔어. 그리고 또다시 땅속으로 돌아가야 돼. 너희들도 땅만 가지면 살 수 있어. 누구라도 땅만은 빼앗을 수 없어….”

왕룽이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이다. 어려서부터 가난과 굶주림을 경험했던 왕룽은 누구도 쉽게 약탈해갈 수 없는 땅을 소유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도 원했던 땅을 얻고 배고픔이 채워졌을 때 그는 다른 갈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기 인생의 목표였던 땅을 소유하는 일에 함께했던 오란이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지 않고, 공허한 마음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방황한다. 그래서 첩을 들이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에 대한 애정도 식고 만다. 왕룽은 처음처럼 다시 땅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만, 그가 그토록 마음을 쏟았던 땅들은 그가 죽자 아들들에 의해 나뉘고, 팔리고 만다.

한 줌의 흙은 대지를 소유할 수 있을까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은 무엇인가를 소유해 왔다. 혹자는 인류의 역사를 ‘소유의 역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무엇이든지 소유해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 때문에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무엇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가’가 행복의 기준으로 마음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왕룽과 오란 또한 평생 무엇인가를 소유하고자 했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손에 쥘 때쯤 다른 결핍이 찾아왔고, 다시 그것을 소유하려 했으며,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을 깨닫고 자신이 처음으로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되찾고 지키려고 노력하다가 죽음을 맞는다. 이 땅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다시 땅으로 돌아간 것이다.

초판본 <대지>와 이를 집필한 펄 벅. 그는 인종 간의 이해를 위한 가교 형성에 평생 헌신했다.
초판본 <대지>와 이를 집필한 펄 벅. 그는 인종 간의 이해를 위한 가교 형성에 평생 헌신했다.

왕룽의 유언처럼 땅 위에 태어나서 땅을 파먹고 사는 모든 사람이 땅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과거에 이 땅 위에 살았던 사람들은 땅 자체를, 혹은 땅 위에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소유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졌을 때 자신이 무엇인가를 소유했다는 사실에 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땅의 일부로, 흙으로 돌아간 그들이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온전히 소유한 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광활한 대지 위에 살면서, 그 존재의 가치를 느끼거나 대지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내 손에 쥐어지는 것’만 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지’를 마음껏 누리는 행복에 대하여

나 또한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가지고 있지?’ 하고 내가 가진 것에 주목하며 살았다. 학창 시절엔 ‘성적이 몇 점이지?’에 주목했고, 좀 더 커서는 ‘내가 일을 얼마나 잘하고 있지?’에 온 관심이 쏠렸다. 결혼 초에는 ‘더 좋은 집’이, 이후에는 ‘아이들의 훌륭한 성장’이 내 행복의 지표 같았다. 내 삶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손에 쥐어 기쁘고 행복한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졌고 새로운 목표를 정해야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연속된 그런 삶 속에서 나는 지쳐갔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나?’ 싶어 검소하게 살아보려 노력도 해봤지만 그렇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은, 내가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동안 ‘나’라는 틀 안에 갇혀 지냈다는 것이다. 

나는 주위에 마음이 밝은 사람들이 있어도 내가 슬프면 모든 것이 슬프다고 여겼다. 내 곁에 지혜로운 사람들이 있고 그 지혜로 내 삶을 얼마든지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만, 나는 그들처럼 지혜롭지 못한 나를 미워하면서 더 많은 지식을 쌓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내 삶의 행복은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었기에 나는 언제나 만나는, 햇빛이 주는 밝음과 그 볕의 따사로움을 느끼지 못하면서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좋은 위치를 갖지 못한 것을 속상해하고 슬퍼했다. 내가 소유한 것만이 내 것이라는 생각 안에서, 자연이 주는 선물들과 주변 사람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행복들에 대해 눈을 감고 살았던 것이다.

왕룽과 오란은, 어쩌면 누군가는 평생 바라기만 하다 죽었을지도 모르는, 대지주가 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 또한 자신들의 손에 쥔 것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아름다운 대지를, 곁에 있었던 서로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느끼고 누리며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대지>의 또 다른 결말을 생각해본다. 왕룽과 오란이 비록 대지주가 되지는 못했지만 인생에서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누리며 사는 결말을. 땅을 일구다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감사하고, 그 모든 것을 그냥 준 창조주를 기억하며 감사하고, 왕룽의 기쁨이 오란의 기쁨이 되고 오란의 기쁨이 왕룽의 기쁨이 되는 두 사람을 그려본다.

글쓴이 심문자

도서관에서 북클럽 멘토링과 한국 마사회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특강을 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라디오 ‘북적북적 북클럽’ 진행자이다. 독서지도사, 청소년상담사, 독서논술교사 등 책과 관련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지>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미국 작가 펄 벅이 1931년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아들들>, <분열한 집>과 함께 총 3부작으로 구성되어있다. 인간의 삶과 숙명적 굴레를 리얼리즘 서사로 표현하였으며, 노벨상과 동시에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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