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100원 때문에 목숨을 끊은 여학생

꽤 오래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고양시의 어느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20층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뉴스에 전해진 사연은 이러했다. 그 여학생이 친구들과 함께 학교 앞 문구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나오는데, 주인아저씨가 여학생을 불러 세웠다. 이유인즉, ‘아이스크림을 2개 들고 가면서 왜 한 개 값만 냈느냐’는 것이었다. 여학생은 ‘한 개 값은 먼저 냈고, 나중에 하나 더 가져서 그 값을 지금 냈다’고 설명했다. 주인은 ‘그런 적이 없다’며 ‘아이스크림 값 100원을 더 내라’고 실랑이를 벌였다. 문구점 주인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여학생에게 돈을 내지 않았다고 폭언을 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멱살을 잡은 채 학교 교장실까지 150미터를 끌고 가서 교장 선생님께 항의를 했다.

그 일로 억울함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 여학생은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내렸다. 경찰은 여학생이 모욕감 때문에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도했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기에 그 뉴스를 보며 너무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여학생의 말이 사실이건 문구점 주인의 말이 사실이건 간에, 단돈 100원에 얽힌 오해 때문에 귀한 목숨을 버린 이 사건은 지금 우리 삶의 문제를 보여주는 단면과 같다. 미리 돈을 냈다는 여학생의 말이 맞고 문구점 주인의 말과 행동이 너무 지나쳤더라도, 그 일을 해결하는 제 1순위 방법이 자살이어야 했을까? 하지 않은 일을 했다는 누명을 썼어도 딱히 밝힐 방법이 없고, 게다가 친한 친구들과 교장 선생님 앞에서 멱살을 잡힌 채 폭언을 계속 들어야 했을 때 심한 수치와 억분抑憤을 느꼈을 것이다. 그 또래의 학생들에게 친구와 학교는 삶의 전부와 같기에 더 충격적이었을 것이라고 짐작이 간다.

그런데 이런 모욕적인 일이 그 여학생에게만 일어난 것일까?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는 억울한 일도 만나고 황당한 일도 만나고 오해나 무시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런 일을 당하면 억울하고 분하고 슬프고 괴로운 것은 상정常情이다. 그러나 그 일로 사람들이 모두 극단적 선택을 하진 않는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비참하고 싫어서 죽음을 떠올린 적은 있어도 그 생각을 그대로 따라가진 못한다.

그 여학생이 뛰어내리려고 옥상 위에 섰을 때, 조금만 다른 방향에서도 생각을 해보았더라면 다른 세계가 보였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떨어지면 우리 가족은 어떨까?’ 오열하고 있을 엄마의 통곡 소리, 비통함에 흔들릴 아빠의 어깨, 학교에 다녀오는 누나에게 꼭 쥐고 있던 사탕을 내밀던 동생의 눈빛이 떠올랐다면… 그렇게 쉽사리 세상을 등지진 않을 것이다. 이런 따스한 가족의 온기가 그 여학생 마음에 소중한 가치로 자리잡고 있었다면 분통 터질 사건 앞에서도 그것을 넘어설 용기를 얻었을 것 같다. 죽음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모멸감에서 벗어나리라고 생각한 여학생은 그로 인해 부모님과 가족, 친구들의 가슴에 더 큰 상처와 지울 수 없는 슬픔을 주었다. 그 사실을 기억했더라면, 그들에게 받은 사랑을 저버릴 수 없어서 목숨을 버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경멸을 이겨낸 위대한 흑인, 재키 로빈슨

재키 로빈슨(1919-1972)은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 차별이 극심하던 1950년대 미국에서 유색 인종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로 활약하며 스포츠계에서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이 된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한 전 구단 영구 결번 선수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선수 생활 당시엔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백인 선수들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수없이 들었고 멸시를 받았다.

“이봐, 깜둥이, 목화밭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

“정글에서 네 친구 원숭이들이 기다리고 있단다.”

세인트루이스 경기 원정길에선 화려한 호텔로 들어가는 팀 동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에어컨도 없고 편의시설도 없는 흑인 전용 호텔에서 자야 했다.  

브루클린 다저스(LA 다저스 전신)의 단장 브랜치 릭키는 팀의 유일한 흑인 선수가 당하는 고통을 옆에서 생생히 지켜보면서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로빈슨을 사무실로 불러 물었다. “백인 선수들로부터 무시와 모욕을 당해도 안 싸울 용기가 있느냐?” 로빈슨은 “흑인들이 맞서 싸우기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반문했고, 이때 릭키 단장은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말을 했다.

“나는 흑인의 기수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선수를 찾고 있다네. 그냥 야구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야. 남들이 모욕을 주고 비난을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여유와 배짱을 가진 선수를 원하네. 만약 어떤 녀석이 2루로 슬라이딩해 들어오면서 ‘이 빌어먹을 깜둥이 놈아’ 하고 욕을 한다고 치세. 자네 같으면 당연히 주먹을 휘두르겠지? 그런데 나는 여기에 맞서 싸울 용기가 있냐고 묻는 게 아니야. 맞서 싸우기를 참을 용기가 있냐고 묻는 거야.”

로빈슨은 그럴 용기가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릭키 단장과 로빈슨은 손을 잡았다. 로빈슨은 경기장에서 관중의 야유는 물론, ‘우리는 재키 로빈슨과 함께 야구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는 동료 선수들의 추방 탄원서, 상대 투수와 수비수들의 위협성 플레이, 심판의 명백한 오심 등의 불이익을 한 몸에 받아야 했지만 맞서지 않았다. 타석에 들어서는 자신을 향해 검은 고양이를 던지며 “재키, 네 사촌이야!”라고 조롱하는 관중이 있는가 하면, 낮 경기였는데도 조명탑이 고장났다며 상대팀이 먼저 경기를 취소한 경우도 있었다. 흑인을 경기에 출전시킨다는 이유로 경찰이 감독을 체포하겠다고 출동해 로빈슨은 결국 그 경기에서 빠지는 일도 있었다.

언론에서도 ‘검은 파괴자’, ‘검은 타이 콥’이라는 식의 비호의적인 기사를 내보내, 불면증에 시달리고 식사를 못할 만큼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하지만 릭키 단장과 약속한 ‘반격하지 않을 배짱 있는 선수가 될 것’을 가슴에 새기며 이를 악물고 뛰었다. 로빈슨은 야구장에서 실력과 정신력을 발휘해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최소한 홈 관중에게는 환호받는 선수가 되었다.

그는 1947년에 내셔널리그 신인왕, 2년 뒤엔 내셔널리그 MVP와 타격왕으로 선정됐고, 흑인 선수로는 메이저리그 무대에 최초로 서게 된다. 당시 메이저리그 백인 숫자 대 흑인 숫자는 399 대 1이었다. 로빈슨이 다저스의 ‘42번’ 유니폼을 입고 뛰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보기 위해 관중석에는 흑인 관중들이 1만 4,000명이나 들어서 그의 데뷔 무대를 환영했다. 재키 로빈슨은 1962년 흑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예를 안았고, 데뷔 50주년이 되던 1997년에 그의 등번호 42번은 모든 구단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그의 사후에도 스포츠 선수 최초로 2003년에 의회 명예 황금 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2004년부터는 그가 데뷔한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지정하여 인종 장벽을 무너뜨린 날로 기념하고 있다.

만약 재키 로빈슨이 릭키 단장을 만나지 못했고, 만났더라도 단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그가 지금처럼 역사에 빛나는 인물이 되었을까? 야유와 멸시가 난무하는 현실 앞에서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했을 그가 걸어갔을 길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고여 있는 물이 썩는다. 인간의 마음도 서로 흐르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흐르지 않는 물인가? 마음을 닫고 사는 사람이다. 자기 관념 속에 고립되어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는 사람이 마음을 닫은 경우다. 이런 사람은 무슨 일이든 자기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어려운 문제에 빠지면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주저앉고 포기한다. 붙잡을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점점 어두운 삶에 던져버린다. ‘난 이제 기대할 것이 없어. 길이 없어’ 하는 생각에 휩싸여 밝고 올바르게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릭키 단장과 마음이 연결된 재키 로빈슨은 맞서 싸우려던 자신의 방법을 버리고 단장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겼다. 인내라는 위대한 힘을 단장에게서 얻어 온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생각하지 못 했던 새로운 희망과 지혜로 문제에서 차차 벗어날 수 있었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방향에서도 생각해 보고, 남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자신이 생각지 못한 지혜가 오고, 생각지 못한 길이 보인다.

자기 입장만 중요하게 여기며 좁은 테두리에 갇혀 살던 그 여학생은 어리기도 했고 생각도 짧았지만, 릭키 단장처럼 그 여학생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사람이 주변에 있었더라면 극단적 불행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누가 뭐래도 너는 사랑하는 내 딸, 내 제자, 내 친구다. 나는 네가 무슨 일을 했어도 항상 네 편이다”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서, 그 여학생 마음에 그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결과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과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아무리 고통스런 상황에서도 그 신뢰감이 위기를 넘는 힘을 준다. 자신을 아껴주고 믿어주는 사람을 기억하면 옥상 위에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마음이 연결되어 흐를 때 행복하다. 또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이 알아줄 때 감사를 느낀다. 서로서로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고 훨씬 따뜻해지지 않겠는가?

가정의 달이다. 멋진 옷, 비싼 신발을 사주는 것보다 자녀의 가슴에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을 남겨주자. 좋은 컴퓨터나 휴대폰을 사주지 못한 안타까움보다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지 못한 것에 더 안타까움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산다. 그리고 그 사랑이 사람을 바꾼다.

글쓴이 이한규

고향이 경북 성주인 그는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집안에서 성장했다. 사범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한 뒤, 교단에서 여러 해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경험들을 토대로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 철학과 부모의 역할에 대하여 꾸준히 글을 써 오고 있다. 전국 대안학교 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을 지냈고, 최근에는 청소년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 특강 및 개인 상담을 온라인으로 하고 있다. 본지 외에 신문에도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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