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와티니 전 국왕 비서실장 음피와 들라미니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불릴 만큼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나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 아프리카의 마지막 왕정 국가, 이런 수식어들의 주인공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모잠비크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내륙 국가 ‘에스와티니’이다.

어진 군주가 다스리는 태평한 시대를 태평성대太平聖代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태평한 시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왕이 얼마나 훌륭한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왕을 보필하는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음피와 들라미니 왕자는 선왕先王인 소부자 2세Sobhuza Ⅱ의 손자이다. 에스와티니에서는 선왕의 손자들도 왕자라고 부른다. 그는 지난 10년 간 현재 국왕인 음스와티 3세Mswati III의 비서실장으로 일하며 국왕과 동행했다. 한 나라의 왕자이자 국왕의 비서실장으로서 그는 어떤 행보를 이어왔을까?

7시간의 시차를 극복하고 온라인 비대면 화상으로 음피와 들라미니 왕자를 만났다. 그에게 “싼보나니(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웃으며 “Hello” 하고 친근하게 응대해 주었다. 그와 <투머로우>는 인연이 있다. 3년 전, 국왕을 인터뷰하기 위해 에스와티니에 방문했을 때 최선을 다해 면담 일정을 잡아준 고마운 분이 음피와 들라미니 왕자였다.

Q. 몇 해 전에 본지 취재를 위해 왕자님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다시 만나 뵙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투머로우>를 통해 한국 분들에게 인사를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에스와티니는 무척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같은 시기에도 지역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 다른 날씨가 펼쳐지며, 생태계가 다양하고 풍요롭습니다.

오늘 인터뷰에 어떤 답을 하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무엇보다 독자 분들이 제 이야기를 읽고 ‘이 나라가 궁금하다, 한번 가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Q. 10년간 국왕 비서실장으로 일하시고, 경제부를 거쳐 현재 정치부 국장으로 일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시절에 에스와티니로 돌아가 나라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현재 맡은 일을 하는 데에 국왕 비서실장으로 일한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됩니다. 비서실장은 국왕의 모든 일정과 행사들을 관리합니다. 10년 동안 국왕께서 어떤 사람을 만나시고 무엇을 고민하시는지 보았고, 에스와티니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면밀히 알 수 있었습니다.

에스와티니 정부는 경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관세 동맹을 다시 재검토하고 있으며,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척결해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또한 국내 중소기업을 돕고 청년 창업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며, 비즈니스 커뮤니티를 결성하는 등 국내 산업분야를 장려하는 정책을 다각도로 실행 중입니다.

저는 이러한 정책들의 실효성을 세세하게 검토하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법을 제정하는 일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물론 이를 진행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장애물들도 많고요. 하지만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언젠가는 저도 현직에서 은퇴할 때가 오겠지요. 그때까지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Q. 왕자님의 삶에서 에스와티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한 나라의 왕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소부자 2세의 아들로, 에스와티니의 한 지역을 다스리던 추장이셨습니다. 자신을 위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우선으로 여기셨던 아버지의 삶을 보고 자랐기에 저 또한 어린 시절에 나라를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자리에서 일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왕자라고 불리지만 저는 어릴 적에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제겐 12명의 형제들이 있는데요, 당시 제가 천식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의사인 고모 집에 맡겨졌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국립학교를 다녔고, 대학에 진학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배워야 하는지,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국가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배움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공부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덕분에 인디아나 주립대학에서 학사 취득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국회의원으로 5년간 활동했고, 아프리카 55개국 연합 입법기관인 범아프리카의회(PAP) 의원으로도 4년간 일했습니다. 그러다 국왕의 부름을 받아 비서실장 직을 맡았습니다.

제 삶을 돌이켜보면 누구보다 평범했던 제가 아픔을 딛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저로 인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은혜가 제 인생을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난 10년 간 비서실장으로 일하며 국왕 곁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배웠고, 그것이 제 삶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수많은 일화들이 있지만 한 가지를 꼭 집어 말하자면, 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에스와티니에는 모든 사람이 국왕을 볼 수 있는 날이 있습니다. 바로 수요일입니다. 굉장히 많은 분들이 찾아옵니다. 이들 중 제가 일부를 선별해 국왕님과 면담을 연결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국왕께 “사탕수수를 심고 싶은데 돈이 부족합니다.” “일에 필요한 경비를 빌려 주십시오.” “투자해 주십시오.” 등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합니다. 물론 국왕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시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국왕님의 입장이었다면, 매주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이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두고 감정적으로 무척 지쳤을 것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수요일마다 왕궁으로 찾아오는 여성분이 있었습니다. 제게는 아무런 요청도 따로 하지 않고, 늘 국왕님이 지나가시는 길목에 앉아 국왕님을 바라보고만 있었지요.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무척 허름한 옷차림의 그분을 보고 ‘저분도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하려는 것일 거야’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국왕님과 면담 일정에 그 여성분을 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국왕께서 면담 리스트를 살펴보시더니 “매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그 여성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국왕께서는 그 여성 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셨고, 저는 바로 밖으로 뛰어가 그분을 데리고 왔습니다. 국왕께서는 국정을 돌아보는 큰일도 하시지만, 사람의 지위나 배경과 상관없이 진심으로 모든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셨습니다.

음피와 들라미니 왕자는 현지에서도 한국과의 인연이 계속 이어가고 있다. 종종 에스와티니에서 봉사활동 중인 한국학생들과도 만남을 갖는다.
음피와 들라미니 왕자는 현지에서도 한국과의 인연이 계속 이어가고 있다. 종종 에스와티니에서 봉사활동 중인 한국학생들과도 만남을 갖는다.

이 일화는 저에 불찰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 전까지는 제가 국왕님의 마음을 알고 잘 보필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기준으로 사람들을 선별해 국왕님을 뵙게 했는데, 국왕님의 마음과 정반대로 일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 기준이 아닌, 국왕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살피고 배웠습니다.

국왕께서 겸손하게 행동하시면, 저도 “나는 어떤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국왕께서 인내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시면, 저도 인내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국왕님의 얼굴이었으며, 국왕께서는 저를 통해서 사람들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는 동안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나라를 먼저 생각하며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국왕께서는 제 삶에 큰 영향을 주셨습니다. 

에스와티니 국왕 음스와티 3세는 새벽 5시에도 사람들을 만난다. 어떤 때에는 밤새 업무를 보고 다음날 아침에 이어서 일정을 소화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음피와 들라미니 왕자는 국왕의 건강이 걱정되어 밤을 새우는 것을 말려보기도 했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국왕의 마음과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모두 잠든 시간, 음피와 들라미니 왕자도 국왕과 함께 깨어 나라를 위한 일들을 고민했다. 그렇게 그는 왕의 곁에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헤아리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탁월한 리더가 조직과 국가를 탁월하게 만든다. 그리고 훌륭한 리더 주변에는 훌륭한 팔로워가 존재한다. 마치 국왕 음스와티 3세 곁에 음피와 왕자가 있듯이.

Q. 최근 정치부에서 법을 제정하거나 정책을 마련하는 일들을 진행하실 때에는 국왕의 어떤 뜻을 떠올리시는지요?

선왕께서는 나라 독립에 가장 많은 시간과 열정을 쓰셨습니다. 그 결과로 1986년에 마침내 그 일을 이루셨지요. 이어서 즉위하신 현왕께서는 초일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국가 발전에 마음을 쏟고 계십니다. 국왕께서는 국가 발전의 핵심을 경제 성장과 청소년 교육, 이 두 가지로 보고 계십니다. 저 또한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필요한 정책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우리 정부는 ‘비전 2022’라는 경제 로드맵을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정부 각 부처가 실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로드맵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정보통신기술 기반(ICT)을 구축하는 데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국왕께서는 ‘국가 발전의 기초는 교육에 있고, 국가의 미래는 청소년 교육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청소년은 에스와티니 인구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왕께서는 지식 교육뿐만 아니라 마음의 세계를 가르쳐 주는 마인드교육도 함께 가르치기를 원하십니다.

5년 전에 국왕께서 한국의 마인드교육을 알고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인드교육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2017년에 제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마인드교육을 창시한 박옥수 목사님을 만났고, 이 교육이 실제 시행되고 있는 두 학교를 답사했습니다. 실생활 곳곳에 교육 이념이 녹아 있는 학교 분위기와 밝은 학생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가 보았던 여러 선진국의 어느 왕실 학교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곳이었습니다. ‘에스와티니 청소년들도 이 교육을 받아 어려운 형편 때문에 절망하기보다 소망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귀국해서 국왕께 다녀온 상황을 보고 드렸습니다. 현재 에스와티니에서는 마인드교육을 시행하기 위해 센터 건물을 짓고 있으며, 중고등학교와 몇몇 대학교에서도 교육을 시행하려고 합니다. 국왕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만큼 저도 시간이 날 때면 종종 건축 현장에 들러 필요한 것은 없는지, 도울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제가 한국에서 만났던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가족처럼 대해 주셨는데요, 그분들이 무척 그립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7년도 방한 기간 증 마인드교육이 실행되고 있는 경북 김천의 링컨중고등학교를 방문했다.
2017년도 방한 기간 증 마인드교육이 실행되고 있는 경북 김천의 링컨중고등학교를 방문했다.

Q. 한국 방문이 무척 인상 깊으셨나 봅니다.

한국은 단기간에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입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성장 동력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국은 무척 아름다운 나라였고, 사람들도 무척 친절했습니다. 무엇보다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무척 타이트했던 일정입니다.

제가 한국에 머문 며칠 동안 박옥수 목사님을 비롯한 교육  관계자들이 행사나 견학 일정을 아주 세세하게 준비해주고, 늘 현장에 먼저 도착해서 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열정과 체력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저는 한 국가나 단체를 볼 때 리더와 정책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박옥수 목사님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나라 국왕께서 자신보다 나라를 더 생각하시듯, 박옥수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해 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인성 발달을 위하여 마인드교육으로 세상을 밝게 변화시키려는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국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리더가 있었고, 여러 사람들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개인이나 한 단체가 이런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을 보면서, 국가 차원에서는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Q.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삶에 필요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에스와티니는 기독교 국가로,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살다가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옆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 일상이자 문화입니다. 저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 저 역시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이 저와 함께하시며 제 삶을 이끄신다고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청소년 여러분도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지혜와 기쁨으로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앞으로, 또 멀리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한국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대신, 남을 생각하는 마음의 여유 또한 빠르게 줄어들었다.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으로 인해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에스와티니에는 ‘불라와트’라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자신보다 타인을, 그리고 왕과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뜻한다. 음파와 들라미니 왕자는 국왕과 자신의 아버지가 ‘불라와트’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분이었으며, 그런 두 사람을 롤 모델로 삼고 살아왔다고 했다. 음피와 왕자의 삶을 지켜본 그의 자녀들 또한 그의 삶을 닮아가지 않을까.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에스와티니가 ‘평화의 나라’라고 불리는 이유에 수긍이 되었다. 좋은 국왕과 국왕의 마음을 받아 일하는 음피와 들라미니 왕자를 보며 에스와티니의 밝은 미래를 그려보았다.

취재 고은비 기자   진행 강태욱 해외통신원   사진 박진영, 이주성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