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지난 4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청각장애인 수술 기금 마련 음악회’가 열렸다. 그날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씨가 협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성남아트센터를 찾았다. 한수진 씨도 태어날 때부터 왼쪽 귀가 안 들리기에, 그 음악회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음악회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곡으로 꼽는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G단조’를 연주했다. 연주회 중간에, 자선 음악회 수익금으로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받은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청각만 회복된 것이 아니라 태어나서 처음 듣는 음악으로 마음까지 치유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연주회가 지닌 사회적 가치뿐 아니라 음악의 가치도 생각하게 했다.

열흘이 지난 뒤, 양재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한수진 씨를 만났다. 바이올린을 들지 않은 한수진 씨가 낯설었지만, 질문 하나하나에 진솔하고 진지하게 대답하는 그가 편안하고 친근했다. 음악을 대할 때나 사람을 대할 때나 그의 진실함은 변함이 없었다.

Q. ‘청각장애인 수술 기금 마련 음악회’에서 연주를 듣는데 소리의 ‘무게감’이 엄청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실 때마다 사용하는 에너지가 굉장할 것 같아요.

제 연주를 보신 많은 분들이 그렇게 평가하시더라고요. 평소에 제가 체력이 약한 편이라 가까운 지인 분들은 제 건강을 염려하세요. 그런데 무대에만 올라가면 다른 사람이 된대요(하하). 다른 무엇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 에너지가 나오는 것 같아요. 연주할 때만큼은 곡에 담긴 작곡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제 이야기를 전하는 데에 집중해요. 관객들이 소리에 담긴 메시지를 정확하게 느끼도록, 연주하는 동안에는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모든 걸 쏟아냅니다. 하나도 남김없이요. 제가 가진 에너지만으로는 부족할 때도 있는데, 음악을 향한 관객 분들의 사랑을 느끼면서 더 큰 힘을 얻는 것 같아요.

Q. 이번 연주회는 한수진 씨에게도 특별했을 것 같아요. 선천적으로 왼쪽 귀가 안 들린다고 들었는데, 혹시 이 점이 콤플렉스로 다가온 적은 없으셨나요?

콤플렉스로 느끼기보단 ‘감춰진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요.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한쪽 귀로만 듣잖아요. 그래서 못 듣는 것도 있고 다르게 듣는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못 듣는 걸 들을 수도 있고 그냥 지나치는 소리도 캐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종종 어떤 소리를 들을 때 ‘이 소리를 두 귀로 들으면 어떻게 들릴까?’라는 상상을 해보는데요. 이런 부족한 부분이 오히려 음악을 다른 각도로 들여다보는 창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바이올린 음색이 독특하다’는 평을 듣는데, 이 부분도 제가 다르게 듣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앙상블 연주나 오케스트라 협연 때에는 그때마다 방법을 찾아요. 예를 들어 플루트가 메인 멜로디이고 제가 반주를 해야 하는 경우, 리허설 때에는 마주보며 합을 맞추는 연습을 하고 실제 공연에서는 지휘자를 의지해요. 그래서 큰 불편 없이 연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내가 이 부분이 모자라서 힘든 거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에 잡혀 이미 가진 행복한 조건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한수진 씨는 부족함을 채우려 하지 않고, 오른쪽 귀로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았다. 연주할 때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말이다. 식당이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한수진 씨의 자리는 가장 왼편이다. 그래야 오른쪽 귀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긍정의 사고방식으로 사는 그녀에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이 있었다. 6년 동안 연주할 수 없었던 때를 조심스레 들춰내며 물었다.

Q. ‘턱관절 수술’로 인해 거의 6년 동안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못했다고요. 연주자에게 있어서 악기를 연주할 수 없는 시간은 정말 가혹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내셨나요?

어렸을 때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다친 턱관절이, 어느 순간부터 강력한 진통제로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을 만큼 고통이 심해져서, 연주는 물론이고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마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죠. 그래서 회복 기간까지 일 년 반 정도 걸린다는 턱관절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처음엔 ‘재충전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어려서부터 연주 생활을 해오다 보니 연주가 당연한 일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짐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특히 비에냐프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한 후로는, 공개 수업에서 새로운 곡을 배우거나 처음 연주하는 곡을 연습할 때에도 많은 분들이 그 장소로 보러 오셔서 연습이 ‘연주’가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관심이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수술을 하고 부모님 일을 도우며 마음에 여유를 찾길 기대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치료 기간이 늘어났어요. 1년 반에서 3년, 다시 5년, 6년으로요. 그렇게 시간은 가고, 좋은 연주 기회들을 계속 취소하다 보니 점점 초조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주변에서는 ‘한수진은 이대로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들도 들리고요. 저도 ‘이 시간이 언제 끝날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많이 울기도 했어요.

Q. 그 시간이 현재 한수진 씨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당시에는 굉장히 고통스럽게 느껴졌지만, 지금 돌아보면 꼭 필요한 때에 알맞게 내린 단비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친 마음도 다시 활기를 찾았고, 일상을 무사히 보내는 것부터 현재 누리는 것들까지 모든 부분에 감사를 느껴요. 더불어, 예전의 저는 사소한 것들부터 연주하는 것까지,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해야 했던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왔다는 깨달음도 얻었어요.

또 그 시간은 더 좋은 연주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치료를 마친 뒤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의 챔버뮤직 페스티벌에 초청받았어요. 입학 당시 가장 활발하게 연주활동을 하던 솔리스트들과 졸업 후 7년 만에 다시 연주를 하는데, 그 친구들이 제 연주를 듣더니 “몇 년간 악기를 못 잡은 걸로 아는데 어떻게 연주가 더 좋아질 수가 있나? 너무 신기하다.”라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학장님께서도 “전에 없던 새로운 깊이가 생겼다.”라고 평가해 주셨어요.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제 마음에도 아픔과 고통을 담을 수 있는 깊이가 생겼고, 그 깊이가 음악으로도 표출되는 것 같아서, 그 시간을 보낸 것에 참 감사해요.

Q. 그 시기에 한수진 씨에게 위로를 건넸던 음악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중 하나를 소개해 주신다면요?

음악 자체가 위로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꼽기 어려운데요. 그래도 하나를 선택하자면, 브루크너Bruckner의 ‘로쿠스 이스테Locus Iste’라는 곡이에요. 이 곡은 제가 퍼셀음악원을 다닐 때 배운 노래예요. 몇 살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3살, 14살 즈음이었어요. 영국 아이들은 이 나이에 사춘기가 찾아오는데, 그래서 지도하시는 선생님이 참 힘들어하셨어요(하하). 합창 수업이 친구들과 웃고 떠드느라 분위기가 어수선했는데, 이 노래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반전됐어요. 첫 음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한 사람 한 사람 화음을 만들어내는데,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음악 같았어요. 어린 나이에 음악의 힘을 처음 경험했죠. 그 나이에 위로받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도 큰 위로를 받았어요. 음악은 우리를 하나로 만들고, 감동을 주었어요.

특히 이 노래에 “이곳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곳이고, 거룩하고 결점이 없는 곳”이란 가사가 있어요. 제가 치료받던 시기를 돌이켜보면 분명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 가사처럼 그 시간도 거룩하고 결점이 없는 공간이 감싸고 있는 듯, 노래가 저를 그렇게 위로해 주었어요.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할 시기에 한수진 씨는 바이올린을 놓아야 했지만, 그 시간 덕에 더 견고해진 듯했다. 거센 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결코 넘어지지 않는, 깊게 뿌리 내린 나무처럼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수진 씨의 연주를 들으며 처절하게 슬펐다가도 다시 위로를 얻고, 일상에 쉼을 얻는 것이 아닐까.

Q. 유튜브에 올라온 수진 씨 영상의 댓글을 보면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를 얻었다’ 하는 분들이 많아요. 이는 단순히 연주를 잘해서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제 연주에 영향을 가장 크게 끼치신 분은 영국 왕립음대 교수님이신 ‘펠릭스 안드리예브스키’ 선생님으로, 선생님께선 ‘음악에는 이야기가 있다’, ‘소리는 도구일 뿐이다’ 이 두 가지를 항상 강조하셨어요. 음악은 작곡가의 인생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늘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고 하셨죠. 인생에 행복한 순간이 있지 만 힘들고 화나고 슬픈 순간도 있는데, 이런 모든 감정을 소리로 표현해야 한다고요.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연주하기 전에 항상 ‘그 음악에 담긴 자신의 이야기’를 말씀해 주셨어요.

작곡가가 전하고자 하는 스토리에 자신의 이야기가 담기니까 음악이 더 진솔해지고 생생해지더라고요.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저는 연습할 때 먼저 곡의 배경이 어떠했는지 공부하고, 작곡가가 느꼈을 마음을 상상해봐요. 그리고 작곡가의 감정에 저를 이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요. ‘작곡가는 이 음악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그 다음엔 가슴으로 곡을 익혀요. 가슴에 곡이 다 그려질 즈음에야 바이올린을 들고 작곡가가 강조하는 부분을 어떻게 소리로 전달할지 연습합니다.

이런 과정을 독자분들이 그대로느끼시는 것 같아요. 음악에 담긴 ‘진심’과 독자분들의 ‘진심’이 만나 서로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것 같아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Q. 앞으로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지요?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와요. 주인공이 교도소 소장실에서 LP레코드를 틀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에 ‘산들바람 부는 저녁에 Canzonetta sullaria’라는 곡을 듣다가, 노래가 너무 좋아서 스피커로 연결해 모든 재소자들이 들을 수 있게 하죠. 쇼생크 교도소에 이 노래가 울려 퍼지고,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노래가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바라봐요. 모차르트의 음악은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교도소에 신비한 희망과 감동을 줘요.

그게 음악의 힘인 것 같아요. 음악은 우리가 그 언어를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머리로 이해할 필요도 없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음악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아름다운 선물을 있는 그대로 나누는 데 힘쓰고 싶어요. 할 수 있는 한 정직하게요. 그래서 음악으로 위로받고 상처 치유한 분들이 계신다면, 그래서 그분들이 또 다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면 음악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다기보단 진정성 있는 전달자가 되고 싶어요. 저 자신을 비우고 작곡가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전하는 사람이요.

사진촬영 박종도 기자
사진촬영 박종도 기자

인터뷰를 마치고 영화 ‘쇼생크 탈출’을 다시 보았다. 특별히 한수진 씨가 말한 그 장면은, ‘아주 어두운 곳에서 울려퍼지는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음악은 거칠고 날카롭고 우울한 교도소를 일순간에 평온하고 따듯하게 만들었다. ‘한수진 씨가 그런 음악을 전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순간 음악으로 위로를 얻은 한수진 씨는 외로운 사람,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 상처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사람에게 음악을 들려줄 것이다. 음악에 담긴 눈물과 기쁨과 사랑과 희망…, 그리고 위로를 말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