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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을 오해한 젊은 부인

기사승인 2021.06.09  09: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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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오해와 불신

어떤 젊은 부인과 상담을 하면서 그분의 과거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부인은 무남독녀 외동딸로 공무원이신 아버지와 미용실을 운영하시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때 한 선배가 교실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너 고아원 출신인 거 알아? 내가 네 사진을 고아원에서 봤거든.”

그 얘기에 너무 놀란 부인은 학교를 나와 울면서 집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엄마, 아빠, 나 주워 온 아이라면서? 정말이야?”라고 물었는데, 부모님은 거짓말이라고 일축하셨다. 친구들이 비웃는 것 같아서 부인은 매일 학교 가기 싫다며 울었다. 일 년이 지난 3학년 2학기 때 부모님이 전학시켜 주셨는데, 그렇게 하니까 ‘아, 그 말이 진짜인가?’ 하면서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가 5학년 때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가 “네 엄마가 다른 분과 말하는 걸 들었어. 너는 양녀래”라고 말해줘서 다시 큰 혼란에 빠졌다. ‘부모님은 나를 속이고 있어. 친부모도 아니면서 부모인 척하는 거야’ 라는 의심을 항상 품고 살았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혈액형 검사를 했고, 부인의 혈액형은 O형으로 나왔다.

‘아빠는 AB형이고, 엄마는 A형인데 나는 어떻게 O형이지?’ 이해가 안 되어 밥을 먹으면서 엄마 아빠에게 자기 혈액형이 왜 이렇게 나오느냐고 여쭤봤다. 그 말에 아버지는 갑자기 젓가락을 내동댕이치면서 쓸데없는 소리한다고 고함을 치셨다. 그럴 일도 아닌데, 아버지가 너무 역정을 내셔서 그 이후로는 친자 여부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마음 속 불신은 점점 커져갔다.

디자인=김현정

그리고 얼마 뒤 엄마 미용실에서 일하던 도우미 언니가 손님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너는 데려다 키운 아이래. 업둥이래”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에 다시 풀이 죽어 지내다가 답답하고 힘겨워서 엄마에게 조심스레 속마음을 꺼내놓았다. 그런데 그 날로 그 언니가 엄마 미용실에서 쫓겨났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하나뿐인 딸이라고 사랑을 듬뿍 받고, 돈 걱정 한 번도 해본 적 없이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면서 살았지만, 부인은 늘 우울하고 불행했다. 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공부를 마친 부인은 다시 한국에 돌아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우연히 필자와 상담을 하면서 자기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선생님, 저는 늘 ‘나는 재수없이 태어난 사람이야. 친부모에게는 버림받고, 양부모에게는 속임 당하고. 친부모님은 왜 나를 낳아서 갖다 버렸을까? 아마 철없는 나이에 불장난한 결과로 내가 태어난 것이겠지? 그리고 양부모님은 친부모도 아니면서 친부모인 척하며 나를 속여 왔어.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생이었어’라는 생각을 품고 살았어요.”

내가 이야기를 해주었다.

“부인, 비록 어렸을 때는 양부모님이 왜 화를 냈는지 이해도 안 가고, 무섭기도 해서 그랬다고 칩시다. 의혹을 풀자니 부모님이 두렵기도 하고, 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로 자신의 출생이 드러날 경우 자존감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컸겠죠? 그러나 이제 부인도 성인이 되었는데 평생 의혹과 불안감을 안고 부모님과 마음의 거리를 두고 사는 건 지혜로운 처사가 아닙니다. 풀 건 풀어서 마음을 정돈하며 살아야지요.

부인도 자식을 키우면서 느끼겠지만,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세상에 없어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것이기에, 부모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마음이에요. 부인은 왜 친부모가 자신을 버렸다고만 생각하세요? 만일 부인을 누군가에게 양딸로 주었다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겁니다. 부모는 웬만큼 힘들고 어려워도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자기가 키우고 싶어 합니다. 남에게 키우라고 주는 게 더 고통스러운 것 아닙니까? 

그리고 양부모님은 부인을 기만한 게 아니에요. 그건 부인을 향한 배려예요. 예쁜 양딸을 얻었는데 기왕이면 친부모로 믿고 살면 딸이 더 행복할 텐데, 무엇 때문에 일부러 ‘얘, 너 잘 기억해라. 너는 내 친딸이 아니고 데려온 아이란다. 난 네 친부모가 아니란 걸 명심해’라고 할 필요가 있어요? 살다 보면 사실대로 말해주는 것만이 늘 좋은 건 아니에요. 양부모님이 부인을 속인 게 아니라 어린 양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신뢰와 사랑 속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깊은 배려였어요. 양부모님은 부인을 정말 사랑하셨어요. 좋은 양부모님 덕분에 부인이 친자식처럼 사랑받고, 해외 유학까지 다녀와서 훌륭한 신랑과 결혼을 하게 해주셨으니 얼마나 고마운 분들이에요?”

그날 부인은 필자의 이야기를 듣고 “아,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정말 그렇네요. 제가 잘못된 생각에 한참 빠져 있었네요. 이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친정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빠, 저에요.”

“그래 잘 지내냐? 이서방도 잘 있고?”  

“네 아빠,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 아빠한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부인이 이어서 말하길, 최근에 좋은 멘토를 만나 상담하면서 그동안 마음에 쌓아둔 의문과 불신, 오해와 원망이 말끔히 가시게 되었다고. 마음을 닫고 살아온 부분에 대해 죄송하다고, 친부모든 양부모든 그게 전혀 문제가 안 될뿐더러 그동안 사랑으로 키워주신 부모님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친정어머니는 숨을 길게 쉬시고는 “네가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주마” 하면서 “네가 데려다 키운 양딸인 건 맞다. 그런데 너를 어떻게 우리 딸로 맞아들이게 되었느냐 하면 네 친외할머니께서 우리 미용실 손님이었단다. 어느 날 그분이 미용실에 와서 ‘내 딸이 이번에 애를 또 낳는데, 이미 딸들이 여럿이고 하나 있는 아들은 장애아라서 도저히 아이를 더 낳아 키우기 힘들 것 같다’라고 하시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엄마가 ‘그럼 할머니, 제가 애기가 없는데, 저한테 주라고 해주세요. 제가 친자식처럼 잘 키울게요’ 해서 엄마가 너를 받아 키운 거란다. 네 친아버지는 고등학교 선생님이셨어. 그리고 네 외할머니는 너를 보러 가끔 미용실에 오셨고, 너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듣고 소문이 조금씩 났던 거지. 그런데 네가 이제 오해와 불신에서 벗어났다니 다행스럽고 고맙구나”라고 하셨다. 그리고 원한다면 친부모 연락처를 알려주겠다고 하면서 엄마가 펑펑 우셨다.

그 부인은 지금의 엄마가 자기를 길러준 엄마인데 당장 친엄마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고, 언젠가 때가 되면 친엄마도 만나게 되리라는 소망을 가졌다. 

세월이 흘러 부인의 얼굴이 점점 밝아졌다. 그리고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사람의 잘못된 생각에서 빚어지는 오해란 게 정말 무섭네요. 저는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생각의 세계 속에서 살았어요. ‘나를 낳은 친부모는 보나마나 철없는 10대였을 거야. 불장난을 했겠지. 그러다가 원치 않는 내가 생긴 거였겠지.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재수없는 인생이었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친정엄마 말씀을 듣고 보니 ‘아, 이 모든 게 내 생각 안에서 만들어진 오해였구나. 오해는 불신을 낳고, 불신은 마음을 닫게 하고, 마음이 닫히니까 어떤 것도 내 마음에 흘러들어올 수가 없었구나. 오해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작에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면 제가 그런 오해와 불신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이제는 마음이 가볍습니다. 고맙습니다.”

막혔던 마음의 물꼬 하나가 트여 부인이 행복해 하고 밝게 사는 걸 보니 나도 행복하고 감사했다. 마음을 닫으면 어둠이 들어오고 마음을 열면 빛이 들어온다. 마음 하나 열고 닫는 게 인생을 얼마나 불행하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하는지 모른다.

마음에 적용되는 통즉불통 불통즉통

허준의 <동의보감> 잡병편雜病篇 제 1권 용약用藥에 보면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라는 말이 있다. 몸의 기혈이 통하면 아프지 않고, 몸의 기혈이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뜻이다.

마음이 흐르는 대화는 마음의 상처와 관계의 단절을 회복할 수 있는 치유 능력을 갖고 있다. 열린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는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마음의 고통을 치료하는 묘약妙藥이다. 그런데 자기 옳음을 따라, 자기 기준을 따라, 자기 마음을 따라 살게 되면 자기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과 상처를 주면서도 자신은 정작 자기의 모습을 모른다.

그 부인은 유학까지 다녀올 정도로 공부는 많이 했지만 마음은 아이처럼 자라지 못한 상태였다. 마음이 자라려면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자기’라는 세계를 깨뜨리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흐르기 시작한다. 마음은 흐르면 건강해지고 밝아진다. 살면서 마음에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을 때 원인을 찾아 풀어야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많은 문제들을 마음에 막연하게 방치해 두지 말고, 매듭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하나하나 정리하고 세밀하게 더듬으면 엉킨 마음의 시작이 보일 것이다.

부모의 잘못으로 원치 않는 자신이 태어났을 것이라는 헛된 생각 속에 부인은 괴로워했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어떤 부모라도 만나서 솔직하게 대화해 보면, 자식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고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자기를 낳은 부모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단정 지은 부인의 생각이 스스로를 옥죄며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아버지가 술에 빠져 살며 가족들을 괴롭혀서 아버지를 속으로 경멸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죄를 지어 재판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아버지가 검사 사무실로 찾아와 직원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검사 선생님, 우리 아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우리 아들은 죄가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이 애비한테 있습니다. 우리 아들을 살려주십시오!”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저 분이 진짜 우리 아버지였구나…’ 하며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의 진심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동안 자기 눈에 보인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본 것이다. 그 순간 아버지를 향해 품었던 악감惡感이 사라지고 너무 죄송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좋아하지만 어른이 되면 단 것, 쓴 것, 매운 것을 다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쓴 것도 잘 소화하면 몸을 이롭게 한다. 우리 마음도 그와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쓴맛을 남기는 것들도 받아들여서 잘만 소화하면 우리 마음을 튼튼하게 해서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보약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세상에는 마음이 흐르지 않아서 불행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다. 부부간에, 고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간에도 마음이 막혀 내상內傷을 입고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마음이 통하지 않아서 생긴 상처를 그대로 두면 병이 된다. 치유를 해서 마음이 흐를 때 사람은 정말 행복해진다.

글쓴이 이한규

고향이 경북 성주인 그는 보수적인 유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사범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한 뒤, 교단에서 여러 해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경험들을 토대로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 철학과 부모의 역할에 대하여 여러 신문과 잡지에 꾸준히 글을 써 오고 있다. 전국 대안학교 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으로 있으며, 최근에는 청소년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 특강 및 개인 상담을 온라인으로 하고 있다.

이한규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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