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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한 현지 적응기 뒤엔 어마어마한 사랑이!

기사승인 2021.06.04  08: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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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의 꽃은 현지 체험이야!”

“아프리카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

“사람들의 마음이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워!”

아프리카로 해외 봉사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때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또한 아프리카에 매료되었고, 주저 없이 아프리카로 해외 봉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 중에서 ‘베냉’을 선택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베냉에 도착해서 간 곳은 ‘코토누’라는 도시였다. 수도와 멀지 않아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코토누에는 한국인 지부장님이 있어서 아프리카임에도 적응하기 어렵지 않았다. 가끔 한국 음식도 먹을 수 있고, 화장실도 위생적이어서 사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한국에서 함께 간 단원들이 있어서 힘들면 얼마든지 한국말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무시무시한 현지 생활 적응기

“네?! 아이바베지에 저 혼자 간다고요?!”

베냉에서 지낸 지 6개월이 지난 즈음이었다. 지부장님이 나를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골 아이바베지로 보내셨다. 혼자서 그곳에 가는 게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호기심과 할 수 있다는 마음도 있었다. ‘이번에도 잘 적응하겠지. 그래 봉사의 꽃은 현지 체험이라고 했잖아.’

그러나 도착해서 본 아이바베지의 풍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베냉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졌다. 비포장도로에, 흙으로 만든 집, 옷도 입지 않고 모래 바닥을 구르는 아이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를 괴롭히는 벌레들…. 무엇보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닭들이 집 앞마당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어떻게든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 태도가 180도 돌변했다.

‘진짜 망했다…. 이곳에서 어떻게 살지? 아, 다시 코토누로 돌아가고 싶다. 다른 애들은 편하게 지내고 있겠지?’ 한국인이라곤 전혀 없는 시골에서 낯선 현지인들과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시작도 하기 전에 외롭고 지쳤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가고 싶어 주변을 둘러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저기, 화장실은 어디에 있나요?”

“아, 저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공중화장실이 있어. 아니면 집 앞마당에서 볼일을 봐도 된단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돼.”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어떻게 집 앞마당이 화장실이지? 누가 보면 어쩌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멀리 떨어진 공중화장실로 걸음을 돌렸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전깃불도, 변기도 찾을 수 없었다. 화장실 주변에는 수많은 벌레가 가득했다. 화장실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너무 무서웠다. 결국 다시 돌아 나와야 했다.

그 후로 나는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밥도 적게 먹고, 물도 잘 마시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을 버텼을까? 결국 다시 화장실에 가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공중화장실에는 도저히 갈 용기가 없어서 집 앞마당을 선택했다. 울창한 나무 사이에 자리를 잡고 볼일을 보려는 찰나, 주변으로 파리들이 몰려들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맑은 하늘을 보니, 서러움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고생을 하려고 베냉에 왔나.’ 베냉을 선택한 게 너무 후회되고, 한국에서의 편한 삶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베냉 물 정말 달고 시원하다!”

아이바베지 지부를 담당하고 계신 현지인 사모님은 화장실에 못 가는 나를 보며 물을 주셨다. 그 물 역시, 우물에서 길러온 물이라 모래가 둥둥 떠 있었다. 물뿐만이 아니었다. 손으로 먹어야 제맛이라는 베냉 음식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 현지 사람들도 나에게 모두 힘든 환경일 뿐이었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지내고 있을 무렵 ‘메리’라는 친구가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왜 자꾸 날 따라다니지? 부담스럽게!’ 하며 메리를 피해다녔다. 며칠이 지난 뒤에야 메리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나를 따라다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부터 나는 마을에 있는 학생들을 하나 둘 모아 한글을 가르쳤다.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가르쳐줄 때마다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하는 학생들은,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서 나에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수업을 이어가던 어느 날, 나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수업을 듣는 메리에게 물었다.

“메리, 왜 이렇게 열심히 수업을 듣는 거야?”

“너랑 한국어로 대화하고 싶어서지!”

메리의 대답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어서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순 없었지만 나의 심정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한 메리가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매일 그날 배운 한국어 문장들을 외워서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다른 학생들을 보니, 내 주변에는 내가 입만 열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이미 많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부터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적응하지 못했던 내 삶에 변화가 시작됐다. 베냉은 집에 손님이 오면 물을 대접하는 문화가 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했던 나는, 베냉 사람들이 건네주는 우물물을 남김없이 마셨다. 그러고는 “아, 베냉 물 정말 달고 시원하다~!”라고 외쳤다.

잊을 수 없는 내 고향, 베냉

베냉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처음 아이바베지에 갔을 때 후회도 하고 실망도 했다. 한국에서 편하게 살던 때가 그리워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그 작고 작은 마을에 있는 동안, 나는 베냉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안녕?”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과 자신들이 먹을 물도 부족한데 나에게 시원한 물을 건네는 사람들…. 그들은 끊임없이 내게 다가왔고, 불평불만을 달고 살던 나를 바꾸어 놓았다.

지난 2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베냉이 그립다.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보며 함께 웃고 떠들던 날들과 서툰 한국말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대화를 하던 날들. 나는 그 시간을 기억하며, 나의 고향 베냉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글쓴이 이채원

원광대학교 사회복지과에 재학중인 이채원 씨는 베냉을 다녀오고 난 뒤 난생처음 꿈이 생겼다.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입학한 사회복지과였지만, 지금은 청소년 복지사가 되어 베냉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다시 베냉으로 돌아가 청소년들을 위해 일할 이채원 씨를 그려본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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