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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가 기쁘게 노래 부르는 이유

기사승인 2021.07.02  17: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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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토요일 오전 7시, 브라질 상파울루 주의 어느 골목길에서 표지 촬영을 시작했다. 상점도 열지 않은 이른 시간이지만 7월호 표지의 주인공인 ‘하다싸’와 ‘알레’의 표정은 한껏 빛났다. 두 사람은 ‘글로리아 밴드’의 멤버이다. 이들은 음악이나 영상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매달 뮤직비디오 클립을 하나씩 만들고 있다. 두려움과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게나마 행복과 미소, 위로를 전하기 위해서라고. 사진 촬영을 마친 두 사람을 온라인 화상 채팅 줌에서 만났다.

Q. 12시간의 시차에도 반갑게 인터뷰에 응해주어 감사해요.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알레: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고, 글로리아 밴드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습니다. 사진을 이렇게 많이 찍어본 건 제 인생에서 처음인 것 같아요(하하).

하다싸: 저는 브라질 청소년 NGO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이자, 밴드의 서브 보컬 및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뮤직비디오 클립을 봤는데, 두 분 모두 노래를 잘해서 놀랐습니다. 언제부터 음악에 관심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알레: 어릴 적부터 엄마랑 삼촌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걸 즐기셨어요. 저도 그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레 기타를 배웠죠. 취미로 기타를 치고, 노래도 자주 불렀어요. 사실 제 목소리가 메인 보컬을 하기에 썩 좋은 음색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 그것에 개의치 말고 노래를 부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세요.

하다싸: 브라질 사람이라면 대부분 흥이 많아서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해요. 저도 흥은 많지만 악기를 배워본 적도 없고, 다른 팀원들보다 노래 실력이 부족한 편이에요. 그래서 팀장으로 일하며 밴드의 대외적인 일정을 관리하는 일도 하지만, 팀원들에게 늘 많이 배워요. 어떤 팀원은 노래를 잘 부르고 어떤 팀원은 사람들과 소통을 잘하고, 어떤 팀원은 정리를 잘해요. 그런 팀원들의 장점을 배우고, 때때로 도움이 필요한 팀원들에게 손을 내밀어 제가 배운 것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어요.

Q. 두 분은 밴드 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이인가요.

알레: 대학생 때 봉사 단체에서 만났어요. 밴드는 나중에 만들어진 겁니다. 저희 모두 해외봉사를 다녀왔어요. 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하다싸는 한국으로요. 해외봉사를 다녀온 시기는 달랐지만, 브라질 대학생 해외봉사단 지부장님이 어느 날 밴드를 만들자고 제안하셨어요. 청년들에 의한, 청년들을 위한, 청년의 밴드가 되길 강조하면서 저와 하다싸에게도 함께해 보자고 하셨어요.

하다싸: 둘 다 직장인이지만 지부장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어요. 우리 둘 다 해외봉사를 하면서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고, 그 시절을 무척 그리워했거든요.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끼리 같이 모이면 즐거울 것 같았어요.

지난달 진행했던 온라인 공연 중 한 장면. 영상 촬영에 함께 도전하며, 밴드 팀의 팀워크도 더욱 돈독해졌다.

Q. 해외봉사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좀 더 이야기해 주실래요.

하다싸: 어릴 적부터 가정에 어려움이 많았어요. 제 기억에 다툼이 끊이질 않았죠. 그래서인지 저는 어려움이 있어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법이 없었어요. 오히려 더 밝게 웃고 다녔죠. 한국에 갔을 때도 그랬어요.

한국의 음식이나 문화에는 금세 적응했는데, 한글을 배우는 것이 너무 어려웠어요. ‘이게 맞나? 내가 말하면 틀릴지도 몰라. 사람들이 웃을지도 몰라’ 이런 걱정 때문에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했죠. 그러다 브라질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한국 학생들과 모여 행사를 진행하는 일이 생겼어요. 저를 제외한 팀원이 모두 한국 학생들이었기에, 저는 언제나 그러했듯 입을 다물고 조용히 지내려 했어요.

그런데 저를 지켜보던 한 언니가 다가와 제게 어려움은 없는지 포르투갈어로 물었어요. 저는 그날 처음으로 제 속마음을 털어놨어요. 한국어를 못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던 일, 잘 따라가지 못해서 힘들었던 마음의 고통 등. 그러자 언니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컵 안에 무엇인가를 담으려면 먼저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을 비워야 하잖아. 마음도 그래. 네가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기준을 비우면, 1년간 더 많은 걸 배우고 얻을 수 있을 거야. 사실 언어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야. 날 봐봐. 내가 지금 포르투갈어를 잘하고 있어? 아니지. 이게 외국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거야. 외국인들이 어떻게 언어를 다 알겠어? 서툴게 말하는 게 외국인의 매력이야.”

그 이야기를 들으니 언어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턴 팀원들과 한국말,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섞어가면서 자유롭게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어려운 일도, 고마운 일도 서로 이야기하며 한 사람 두 사람 친구가 생겼고요. 그 행사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 일정이었지만, 제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그 시간들을 통해 제가 얼마나 마음을 닫고 살아왔는지, 그리고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며 살 때 얼마나 자유로워지는지 느꼈어요. 덕분에 브라질에 돌아온 후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제 마음을 말하고 들을 수 있었어요.

하다싸는 매주 한국어 아카데미를 진행한 덕분에 한국어 공부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Q.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1년은 어땠나요.

알레: 저도 제 마음을 투명하게 털어놓는 즐거움을 맛본 시간이었어요. 남아공에 가니 한국에서 온 봉사자들도 있었어요. 1년간 그들과 함께 먹고, 웃고, 함께 말썽을 피우기도 했어요(하하).

하루는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선배가 제 가족에 대해 물어봤어요. 처음엔 덤덤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부모님께서 어린 나이에 저를 낳으셨고, 저는 엄마의 손에서 길러졌어요. 아버지는 종종 선물을 사가지고 저를 찾아오셨지만, 제 마음 한편에 늘 ‘내가 아빠에게 짐은 아닐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실까?’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죠. 원망도 하고요. 하지만 이런 마음을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본 적이 없었더라고요. 결국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죠.

그때 선배가 아버지 편에서 생각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어요.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되었을 때 어땠을까?’ 처음 생각해봤어요. 삶이 전혀 달라졌을 거고, 어린 나이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하기도 어려웠겠구나. 난생처음 아버지를 이해해보려고 했어요. 그리고 어쩌면,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틀릴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그날 선배의 조언을 따라 저는 아버지를 향해 펜을 들었고, 제 마음을 그대로 표현했어요. 그 후 아버지에게 답장을 받았어요.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니 너무 미안하구나. 브라질에 돌아오면 네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구나.”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브라질에 돌아온 뒤 아버지를 가장 먼저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엄마도 무척 기뻐하셨고요. 언제나 늘, 그 시간들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알레가 근무하고 있는 초등학교의 아이들은 글로리아 밴드 1호 팬이다. 수업 시간에도 종종 아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곤 한다.

Q.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상대방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은 간단할 것 같지만, 두 사람의 삶을 바꿀 만큼 큰 지혜라는 생각이 듭니다. 밴드 활동을 하면서도 자주 소통하는지요.

알레: 네, 모여서 어려움은 없는지,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종종 이야기해요. 제겐 밴드가 마음을 오픈하기 가장 자유로운 곳이에요. 가족 같거든요. 사실 각자의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밴드 연습을 하려고 모이면 몸이 지칠 때가 많아요. 마음이 슬픈 날도 있고요. 그런데 신기한 건 서로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마음이 달라진다는 거예요.

하다싸: 지난 해 팬데믹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어요. 저희 팀원들은 ‘이젠 활동하기 어렵겠다’ ‘안 된다’ 판단했어요. 영상을 찍을 줄 아는 사람도 편집할 줄 아는 사람도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밴드를 이끌어주시는 지부장님이 우리 이야기를 듣고 반대로 말씀하셨어요.

“아니야. 인터넷으로 조금씩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어.” “영상으로 노래하면서 코로나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 “할 수 있어.”

저희 팀원들이 그 말을 듣고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신기하게도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도 생기고, 영상 편집도 조금씩 배우니 할 수 있더라고요. 그렇게 노래를 한 곡씩 연습해 촬영했고, 그것을 편집해서 유튜브와 줌 같은 온라인으로 공연을 했습니다.

알레: 종종 저희 공연을 보고 ‘소망과 기쁨을 주는 밴드’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희가 다른 분들에게 소망을 주는 것보다 밴드를 하면서 먼저 소망을 느낄 때가 많아요. 하다싸가 말한 것처럼, 밴드를 하다보면 안될 것 같았던 일들이 가능한 것으로 바뀌는 걸 봅니다.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그 마음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면 말 그대로 소망과 기쁨을 주는 밴드인 거죠.

Q. 글로리아 밴드 그리고 두 사람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하다싸: 아주 대단한 계획은 아니지만 한 달에 한 곡씩 연습해서 촬영을 진행하려고 해요. 지금은 곡 선정작업 위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글로리아 밴드 외에도 주말마다 청소년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있는데요. 며칠 전, 학생들이 한국어를 조금씩 읽을 수 있는 단계가 되었어요. 학생들도 기뻐했고, 저도 무척 행복했어요.

그 중에 몇 명은 코로나가 끝나면 한국으로 해외봉사를 떠나고 싶다고 하네요(하하). 제가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과 관심을 받고 돌아왔는데, 그때 받은 따스함을 이곳 브라질에서 나누며 살고 싶어요. 그 형태가 노래든 수업이든요. 그게 행복하니까요.

알레: 저는 글로리아 밴드를 하면서 꿈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해외봉사를 다녀오면서 외교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꿈이 생겼고, 지금은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브라질을 다른 나라들과 연계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코로나가 얼른 끝났으면 좋겠어요. 그땐 투머로우 독자 분들도 브라질로 많이 놀러오세요!

그간 언론을 통해 보고 들었던 브라질은 코로나19로 인해 혼란과 슬픔이 가득한 나라였다. 이 때문에 걱정을 안고 인터뷰의 문을 두드린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하다싸와 알레를 통해 본 브라질은,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말하고 미래를 향한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나라였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그들의 에너지를 흘려 받았다고 말하듯, 그들과 이야기하며 내 마음에도 밝은 기운이 전해진 것 같았다. 긴 코로나가 어서 끝나 글로리아 밴드가 어디든 가서 즐겁게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취재 고은비 기자   사진 이민주 자유기고가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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