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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기업 사원의 이중생활

기사승인 2021.08.19  08:3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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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바이오로직스 엔지니어, 최신

엔지니어 최신 씨는 평소 두 가지 호칭으로 불린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일할 때는 동료들에게 책임감 강한 ‘최 프로’이지만, 그가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 단체에서는 ‘멘토’ 혹은 ‘선생님’이다. 대기업 직원과 멘토 사이를 오가느라 바쁠 때도 많지만 이런 삶이 더 즐겁다는 그를 만나본다.

최신
기계공학과 졸업 후 디스플레이 장비 회사에 입사했지만 한 달이 채 가기 전에 바이오 벤처 기업으로 이직을 택했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바이오 엔지니어는 이제 그의 천직이 되었다.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7년째 일하고 있다. (사진제공 삼성바이오로직스)

Q. 반갑습니다. ‘바이오 엔지니어’라는 직업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려요.

‘바이오’ 하면 아마 많은 분들이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을 떠올릴 것입니다. 바이오 엔지니어는 ‘좋은 의약품을 만들 수 있도록 장비를 면밀히 검증하고, 최상의 상태로 장비를 유지하기 위해 관리하고 개선하는 일을 하는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모더나 측과 코로나19 백신 위탁 생산 계약을 맺어서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요. 최근 바이오 의약품 수요 증가에 따라 4공장 건설이 진행 중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요즘 신규 공장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장비와 관련된 요소들을 차질없게 체크하고, 장비 도입을 위해 검증 및 검토하는 업무를 합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한 2009년도만 해도 바이오산업이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요. 지금은 바이오산업을 팬데믹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Q. 바이오 엔지니어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나요?

아니요. 기계공학을 전공한 저는 제대한 뒤 다른 동기들처럼 디스플레이 장비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바이오 벤처 기업에서 함께 일해 보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원하지 않을 경우 거절하면 그만인데, 고민 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주변의 많은 분들이 왜 그런 모험을 선택하냐고 묻더군요. 그건 제가 ROTC(학군단) 장교로 복무하며 만난 한 선배의 영향이 컸습니다.

대학 시절 저는 자격증 취득은 물론 교직 이수, 영어 공부, 거기에 ROTC 훈련까지 받느라 몸과 마음이 늘 분주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많은 준비와 계획을 하는 사람이었죠. 그런 제가 대학 졸업 후 장교로 임관하던 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며칠 지나니 모든 것이 그냥 일상이 되었거든요. 저는 제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늘 바쁘게 살았지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것 때문에 괴로워했고, 목표를 달성해도 그 기쁨이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면 ‘행복이 뭐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라고 자문하며, 그 답을 찾기 위해 고민을 했습니다.

그 시절 부대에서 제가 ‘윤 중위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선배가 있었습니다. 제 삶의 가치관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 고마운 분이지요. 선배와 함께 야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요. 종종 제게 “신아, 나만 위해 살 때보다 주변을 둘러보며 살 때가 더 행복하더라.”라고 말했어요. 그 이야기가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을 때 불현듯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약을 만드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더군요. 결국 ‘그래, 바이오산업은 앞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분야라는데 한번 해보자’하며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궤도에서 벗어난 다른 선택을 했어요. 그게 결국 바이오 분야로 향한 첫걸음이었죠.

동남아 해외봉사 기간 중, 베트남의 중학교에서 한국어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Q. 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라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좋았지만 막막할 때가 많았어요. 모르는 것이 많은데, 장비에 문제가 생길 때 물어볼 사람이 없었거든요. 어느 날엔 ‘이 일을 더는 못하겠다. 다른 분야에서 다시 시작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선배가 소개해 준 선생님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곤 했지요. 그러면 선생님께선 “다른 일을 해도 괜찮아.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어렵다고 해서 길이 아예 없는 건 아니더라.”라고 하셨어요. 신기한 것은, 그 말을 마음에 두고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을 때 다른 회사 직원들과 연결되어 배울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서, 6년 후에는 일에 재미를 느낄 만큼 실력을 제법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그때부터 회사가 경영난을 겪기 시작했어요. 결국 퇴사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막막했습니다. 나이는 들었고, 그동안 영어 공부도 손을 놓았고, 바이오산업과 관련된 자격증을 따놓은 것도 없었어요. 저를 불러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지난 6년간 힘들 때마다 선생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나더라고요. ‘내가 보기에는 막다른 길 같지만 이게 터널일 수도 있겠구나.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다른 길이 나올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복잡했던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Q. 이후에 어떻게 됐나요?

퇴직 후 4개월 동안 구직 준비를 했습니다. 그때 우연한 기회에 대학생들과 함께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으로 봉사활동을 몇 주간 다녀왔습니다. 혼자 여행을 떠났다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먹고 싶은 것을 실컷 먹고 왔겠지요. 그런데 해외 봉사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바쁘게 지내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대학생들과의 인연도 시작되었지요.

동남아시아에 다녀온 후에도 몇 개월 동안 직장을 구하다가 어느 바이오기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입사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계속 왔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구직 준비를 할 때 취업 포털 사이트에 올려놓았던 이력서를 본 헤드헌터*의 연락이었습니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사업 확장을 위해 경력직 엔지니어를 구하고 있었는데, 제가 거기에 부합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얼마 후 면접시험을 거쳐 최종 합격했습니다. 경력자라도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 있는데,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최신 씨는 새로운 직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마음껏 배웠다고 한다. 모르는 것을 언제든 묻고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 그는 후배들을 가르치고 때론 이끌어주는 위치에 섰다.

장비 3D 모델링을 꼼꼼히 살피면서 신규프로젝트 설계를 검토하고 있다.(사진제공 삼성바이오로직스)

Q.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근무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다면요?

바이오장치산업박람회의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아케마 박람회’에 다녀왔던 일이 생각나네요. 사실 그때 제가 그곳에 갈 수 있는 조건은 전혀 없었어요. 다만 몇 년 동안 그 박람회에 가고 싶은 꿈이 있어서 늘 달력에 표시해 두었죠. 스케줄을 보니 박람회 첫날이 휴일이었는데, 제가 근무하는 날이었어요.

하루는 후배가 스케줄을 보더니 “최 프로님, 이날 휴일인데 출근하시는 겁니까?” 하고 묻더라고요. 제가 웃으며 “저는 그날 독일 아케마 갑니다!” 하고 장난을 쳤어요. 그때 그룹장님이 우연히 지나가다가 제 이야기를 들으신 거예요. “아케마가 뭔가?” 하고 물으시기에 박람회를 소개하면서 제가 늘 가고 싶었던 곳이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가 마침 회사에서 독일 아케마에 갈 인원을 편성하는 시기였던 거예요. 그룹장님이 저를 그 팀에 추천하셨고, 한 달 뒤 꿈에 그리던 박람회에 갈 수 있었어요. 수많은 업체와 장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다른 회사는 같은 문제를 어떻게 개선했는지 살펴보고, 장비의 최신 트렌드를 파악했습니다. 그때 보고 느낀 것들이 이후 업무를 진행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무척 즐거운 기억입니다.

박람회에 가서 안목을 넓힌 것도 좋았지만, 오래전 선생님이 제게 가르쳐주셨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제 삶에 적용된 것도 기뻤습니다.

2018 독일 아케마 박람회에서.

Q.청소년 단체의 ‘멘토’로 활동하신 건 언제부터인가요?

3년 정도 되었습니다. 2017년에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키리바시로 봉사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인연으로 한 청소년 단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는 대학생들의 활동을 돕고, 때론 고민 상담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키리바시에 다녀온 이유는, 군대에서 큰 도움을 주었던 선배가 키리바시에 봉사단의 지부장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한번 그곳에 가봐야겠다’라고 생각했죠.

그러던 어느 날 청소년 봉사단체에서 키리바시로 함께 갈 사람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기간은 2주였고, 나이는 제한이 없었습니다. 키리바시가 너무 멀어 혼자서는 갈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번이 기회겠다’ 싶어 얼른 신청했습니다. 직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피지를 경유해 나흘 만에 키리바시에 도착했습니다.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가 저를 반겼습니다. ‘땅끝’으로 불리는 곳에서 그리던 선배를 만났고, 잠시 교육 봉사를 도왔습니다. 며칠간 지내다 보니 ‘자연환경은 너무 아름답지만, 물가가 비싸고 날씨도 너무 더운 이 섬나라에서 어떻게 몇 년을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선배는 학생들을 위해 음악학교, 대안학교를 운영하며 행복하다고 하더라고요.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군 시절 선배가 제게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청소년 봉사단체에서 저를 ‘명예 해외봉사단원’으로 임명해 주신 거예요

키리바시의 땅은 작지만, 바다는 넓디 넓다.

(웃음). 그렇다고 제게 특별한 임무를 준 건 아닙니다. 그곳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의 밝은 모습이 보기 좋아서 행사를 한두 번 돕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제가 선배처럼 전적으로 타인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저만을 위하며 살 때보다 타인을 위해 살 때 행복하다는 말에는 십분 공감합니다.

Q.학생들에게 주로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나요.

대학생들은 취업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더군요. 특히 취업난이 심각한 요즘, 자신의 전공이나 관심사와 무관한 분야로 취업해야 하는 현실에 좌절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아는 분야라면 최선을 다해 알려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제 경험을 들려주면서 지금 우리가 보는 게 다가 아닐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에서 ‘끝났다’고 받아들일 때, 더 이상 새로운 길을 갈 수 없으니까요.

취업 후에도 삶은 펼쳐지잖아요. 제가 회사에서 동료나 후배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좋은 회사에 다니지만 인간관계로 힘들어하거나 동료들보다 부족한 자신의 실력 때문에 괴로워하는 등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삶은 스스로 노력도 하고 가꾸어가야 하지만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듣고 살아가는가’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느낍니다.

제 삶을 돌아보면, 어려운 시기에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때론 고민을 함께 나누던 좋은 사람들은 만난 게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제가 만난 선배나 선생님 같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선택을 한다. 어떤 이는 삶 자체가 크고 작은 선택의 여정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최신 씨는 살면서 ‘조금 다른 선택’을 한 적이 있고, 그것들이 하나둘 모여 지금의 그를 만든 것 같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가 바이오 벤처 기업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입사한 뒤 누구도 그의 고민을 들어주지 않아 몇 개월 만에 퇴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누군가에게 막막한 상황에서도 길은 있다고 말하며,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고민해주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지 않았을까. 그의 바람처럼, ‘대기업 사원’과 ‘멘토’로서 그의 이중생활이 오래 지속되기를 응원한다.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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