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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에서 나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기사승인 2021.09.01  15: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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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신주애
르완다에서 새로운 환경, 언어, 음식을 경험하며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삶이 즐겁다는 신주애 단원. 그는 언젠가 르완다로 다시 돌아와 자신에게 마음의 세계를 알려준 지부장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시절, 방과 후 나의 일과는 엄마와 가정통신문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간혹 설문지가 나올 때면, 나는 글 쓰기에 서툰 엄마를 위해 사전을 펼쳤다. 엄마가 말하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주면, 엄마는 그걸 보고 따라 쓰셨다. 그 일을 마치면 나는 엄마와 함께 밖으로 나가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팔았다. 엄마는 막내딸인 나를 무척 사랑했고, 나 또한 엄마랑 손을 잡고 걸으며 장난치고 웃는 그 시간이 좋았다.

어느 날, 엄마와 폐지를 줍고 돌아오는 길에 반 친구를 만나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나는 평소처럼 등교를 했다. 그런데 친구들이 나를 피했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애는 가난해서 폐지 줍는대.” 전날 만났던 친구가 소문을 냈던 것이다. 그날 기억은 내게 큰 상처로 남았다. 내게 가난은 나쁜 것이고 부끄러운 것이 되었다. 친구들의 놀림이 두려웠던 나는 하루 이틀 결석하기 시작했고, 결국 전학을 갔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에게 우리 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를 좋게 포장하고 살았다. 겉으로는 친구들과 웃으며 잘 지냈지만, 마음 한편엔 친구들이 내 비밀을 알게 될까 두려웠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웃 어른이나 친척들로부터 “주애야, 네가 너희 집을 일으켜야 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엄마 아빠도 그러기를 기대하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공부는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고, 성적에 맞춰 대학에 입학했다. 나의 약점을 들키면 안 된다는 강박, 잘해야 한다는 부담, 잘 해내지 못하는 나를 향한 자책….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둡고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그 삶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즈음 친구를 통해 해외 봉사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1학년을 마친 후 곧바로 아프리카 르완다로 떠났다. 

마음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뭘까?

처음 르완다에 도착해서 좋았던 건,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전화를 하던 엄마에게서 벗어난 것 그리고 나에 대해서나 우리 집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현지인을 만나든 한국인을 만나든 나는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 행동했다. 나의 약점은 가리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함께 간 봉사단원들이 가족 이야기를 할 때면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렇게 4개월이 흘렀다. 나의 약점을 잘 숨기면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는 점점 지쳐갔다.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활동하다가 크고 작은 문제나 오해들이 생길 때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특히, 유일한 여자 동료 단원이었던 서영이와 가까워지고 싶은데 가까워질 방법을 몰라 답답했다. 지부장님은 우리에게 늘 “이곳에서 살면서 사람들과 좋게만 지내려고 하지 말고, 서로 마음을 나눠야 해”라고 이야기하셨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몇 개월 더 버티자’라는 심정으로 지냈다. 르완다에선 내 삶이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어두운 내 모습을 보니 힘이 빠졌다.

하루는 어두운 내 표정을 지켜보셨던 지부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잘 지내냐고 물어보셨는데, 나는 대뜸 질문부터 했다.

“지부장님, 마음을 나눈다는 게 뭐에요? 도대체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지부장님은 이렇게 이야기해주셨다.

“네가 마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야. 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 겉모습에 초점을 두기가 쉬워. 그래서 누군가와 다투면 ‘너 왜 그런 식으로 말해? 행동해?’라고 묻지, ‘네 마음이 어땠어?’ 하고 그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을 때가 많아. 앞으로는 무슨 일이 생길 때 상대방의 마음을 묻고 들어봐, 주애야.” 마음을 물어보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작든 크든 마음을 나누는 것, 그걸 한번 해보고 싶었다. 다음날 봉사활동을 마치고 센터로 복귀하 는 길에 조심스레 서영이에게 말을 건넸다.

처음으로 마음의 이야기를 나눴던 소중한 친구, 서영이와 함께.

“서영아, 지난번에 내 컴퓨터가 고장나는 바람에 네가 영상 작업을 다 했잖아.

네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미안했어. 그때 네 마음은 어땠어?”

그날 이후 서영이가 나에게 화가 난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서영이의 대답은 내 예상과 달랐다.

“아니야, 나는 오히려 내가 편집을 잘 못 해서 너희들한테 미안했는데…. 다 같이 고생하며 기획하고 촬영했는데 나 때문에 망친 건 아닐까 고민이 많았어.”정말 별것 아닌 대화였지만, 나는 그날 처음으로 마음이 흐르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때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은 채 살아왔는데 겉만 보고 판단하고 오해만 하면서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엄마 생각이 났다. 나는 늘 엄마 때문에, 가족 때문에 힘들다고 원망만 했지 엄마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거나, 엄마의 마음을 들어보려 한 적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엄마는 마음이 어땠을까? 내가 엄마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을 때는 언제였을까?’라는 생각에 한참을 뒤척였다.

며칠 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아픈 곳은 없는지, 밥은 잘 먹는지, 엄마는 걱정이 많으셨다. 그러다 엄마가 영상 편지를 하나 보내셨는데, 열어보니 엄마 아빠 오빠가 케이크를 들고 내 생일을 축하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모 습을 보니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열어주고 기뻐하시던 아빠 생각이 났다. ‘나는 왜 우리 가족을 불행하다고만 생각했을까?’ 통화 말미에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 키우면서 언제 가장 힘들었어요?”

“네가 학교 가기 싫다면서 엄마 힘들게 했을 때랑 사춘기 때부터 엄마가 말 걸면 귀찮다고 할 때 엄마는 가장 섭섭하고 힘들었지. 주애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었는데, 엄마가 부족하고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잖아. ‘그래서 네가 비뚤어진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면 속상했지.”

“엄마, 사실 나 친구들 집이랑 우리 집을 비교하면서 엄마 원망 많이 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까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 속에서 살며 제대로 보고 느끼지 못한 것들이 많더라고요. 엄마도 나만큼 힘들었다는 거, 이제 알 것 같아요.”

“엄마는 괜찮아(웃음). 고맙다, 주애야.”

“그런데 내가 엄마를 행복하게 한 적이 있었어요?”

“네 옆에 있으면 엄마는 항상 행복해. 너랑 대화할 때도 행복하고. 지금도 네가 엄마 마음 물어봐 주니까 너무 행복해.”

르완다 지부는 손 씻기의 중요성을 알리는 핸드워시 캠페인을 6년째 진행해 왔다. 르완다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손 씻기와 관련된 노래를 부르고, 율동하는 모습이다.
지방 도시인 ‘카욘자’에서 집짓기 봉사활동을 했다. 이날, 점심시간에 집주인인 죠세핀 아주머니를 도와 식사를 준비했는데, 우리에게 콩 까는 법을 알려주셨다.

신기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엄마의 이야기가 식상하게만 느껴졌을 텐데, 엄마의 한 마디 한 마디 말 속에서 엄마의 아픔이, 사랑이, 마음이 느껴졌다. 내 것으로만 차 있던 내 마음에, 엄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내가 보고 내가 느끼는 것이 다라고 여기며 불평, 불만, 불안 속에서 살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르완다가, 이곳에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이 고마웠다.

그날부터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 엄마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저장하고 있다. 시간이 없어 다 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 르완다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쁨 등 엄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벗어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날 이후 내게 작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나는 편식이 심했다. 그런데 하루는 지부장님 사모님께서 ‘사람이든 음식이든 한번 두번 겪다보면 느낄 수 있는 고유의 맛이 있다’며 안 먹던 것도 먹어보라고 권하셨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어 눈을 질끈 감고 채소를 먹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언제 편식을 했냐는 듯 가리는 것 없이 먹었다. 이젠 살이 쪄서 고민이다.

나는 청소하는 것도 귀찮아했는데, ‘작은 일 속에서도 배울 게 있다’며 누구보다 열심히 청소하던 현지인 언니를 보고 따라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구석구석 청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또 몸치라서 댄스를 싫어하던 내가 언제나 신나게 춤을 추는 르완다 사람들을 보며, 잘 추진 못해도 춤을 좋아하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낯선 일을 만날 때면 부담스럽다. 하지만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즐겁다.

사진 왼쪽부터 양서영, 신주애, 심우섭 르완다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

르완다에 온 지 벌써 5개월이 되어간다. 댄스 아카데미를 진행하며 배고픔도 잊고 꼬마 아이들과 신나게 춤추던 날, 손 씻기 캠페인을 하며 만났던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던 초롱초롱한 눈빛, 내 슬리퍼 줄이 뜯어진 걸 보고 선뜻 자신의 슬리퍼를 주던 현지인 친구…. 한국에 돌아가면 이 모든 것들이 너무 그리울 것 같다.

돌아보면, 내가 살아왔던 방식만 고집할 땐 르완다에서 사는 것이 괴롭기만 했다.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갔다. 그런데 내가 그려둔 틀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부턴 르완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행복하고, 일주일이 하루처럼 느껴진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경험하고 싶은 것도 많은 요즘, 나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글 신주애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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