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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세상, 지금도 활짝 열려 있습니다

기사승인 2021.09.08  21: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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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 10번 길을 따라 걷다보면 작은 동네 서점이 나온다. 버건디 색으로 꽉 채워진 내부, 은은한 조명, 거울 위에 빼곡히 붙여진 메모장으로 꼭 다른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곳. 책 곁에 주인장의 애정 어린 책 소개 글이 꽂혀져 있는 곳. 이곳은 ‘지금의 세상’ 대표 김현정 씨의 일터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 서점을 열어 자영업자가 된 지 4년째 되었다는 그.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민의 시간을 지나왔다는 김현정 씨와 출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올해로 서점 창업 4년 차를 맞은 김현정 씨. 그는 오늘도 밝은 에너지와 화사한 웃음으로 손님을 만난다.

서점 ‘지금의 세상’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지금의 세상’은 사당동에 위치한 작은 동네 서점이자 *큐레이션 서점입니다. ‘지적 호기심’ ‘마음의 편안함’ ‘미래에 대한 두려움’ ‘행복에 대한 갈망’ ‘사랑에 대한 감정’ 5가지 테마를 바탕으로 좋은 책을 발굴해 총 25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어요. 이곳 동네 분들이 가장 많이 오십니다. 책도 읽고, 때론 자기의 일상을 종알종알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에요.

지금의 세상은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에서 본 단어예요. 서점에서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지금’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서점을 아껴주는 손님들이 이곳 이름을 줄여서 ‘지세’라고 불러요(웃음).

독립 서점 대표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서점은 3시에 오픈해서 9시까지 영업을 합니다. 길가에 입간판을 내놓다가 주변 가게 사장님들을 만나면 인사도 나누고, 내부 청소도 하고, 새로 입고한 책들을 정리해요. ‘오늘은 어떤 손님이 이곳에 올까?’라는 기대와 함께 책방을 엽니다. 저는 손님을 기다리면서 다양한 일을 하는데요. 추천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거나, 책 및 저의 일상과 관련된 영상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합니다.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고, 종종 책 관련 행사 진행자 일이 들어오면 출장도 다녀옵니다. 틈틈이 책도 읽고, 반가운 손님과 인사도 나누고 안부도 묻습니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가요. 최근에는 저녁마다 진행하는 온라인 프로그램이 있어서 퇴근 전까지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누군가에겐 휴식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는 공간이다.

퇴사 후, 서점 창업을 선택했어요. 평소 책에 관심이 많았나 봅니다.

퇴사한 후 ‘뭘 하지? 이제 어떻게 살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회사 다닐 때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을 주로 했는데 저는 한 방향으로 이야기하는 것 말고, 대화가 하고 싶었어요. 대화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책을 도구로 하면 좋겠더라고요. 멋진 도구이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요. 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는 공간을 그리다보니 자연스레 서점 형태가 된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요. 대표님을 부러워하는 분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부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힘들다고 하소연을 많이 하다 보니 요즘에는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어요(하하).

서점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퇴사다! 해방이다!’ 하고 마냥 좋아했어요. 그런데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 많더라고요. 회사 다닐 때는 9시 출근 6시 퇴근이 정해져 있고, 회의하고 함께 해나가야 하는 프로젝트들이 있고, 매달 월급이 들어왔잖아요. 그런데 자영업자가 되니 서점 문은 언제 열 건지, 휴무는 언제로 할 건지 등 이 세상이 흘러가는 시간조차 제가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오전부터 열심히 일에 몰두하다 체력이 방전되는 경험도 하고, 밤늦게까지 동네 사장님들이랑 술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다음날 일정이 다 틀어지기도 했어요. 저는 그때를 망나니 시절이라고 불러요. 그 시절을 거치며 제게 주어진 자유 속에 제가 지켜야 하는 법칙들과 루틴을 조금씩 만들었어요.

손님들의 고민이 적힌 포스트잇. 김현정 씨는 매주 하나의 고민을 채택해 관련 도서를 소개하고 있다.

수익을 내는 부분도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회사 다닐 때 받던 월급만큼 수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현실을 너무 몰랐던 거죠. 세상에서 돈을 버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책만 팔아서 서점이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어요. 그때부터 ‘어떻게 수익을 낼 수 있을까?’ ‘가치 있는 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어떤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까?’를 고민했어요. 2년 차부터는 외부 활동도 본격적으로 했어요. 북 콘서트, 토크쇼, 수업과 같은 다양한 책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고, 로컬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면서 사당동에서 활동하는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동네 잡지를 발간도 하고요. 그 시절 재미있는 일들이 참 많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은 무엇인가요?

‘지금의 살롱’이라고, 지금의 세상에서 메인으로 진행하던 콘텐츠가 있었어요. 책방 책상을 다 밀고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그날의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하고, 때론 고민도 나누던 시간이었죠. 당시 동네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덕분에 서로 친해지고, 같이 밥도 먹고, 같이 소풍도 가곤 했어요. 지금의 세상이 퇴근길에 누구나 와서 놀다가는 곳, 살아 있는 대화의 장이었죠. 요즘에도 동네 분들이랑 “그때 참 좋았지” 하고 이야기해요. 그렇게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들겠구나’ ‘대박 날 수도 있겠다’ 확신했어요. 외부 일정도 몇 개월 치가 잡혀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코로나가 터지더라고요. 결국, 몇 개월 뒤엔 들어두었던 적금을 다 털어서 월세를 내야 했어요. 그러면서 큰 슬럼프를 겪게 되었어요. ‘힘겹게 새로운 삶에 적응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결국 내게 돌아오는 게 이건가?’ 창업 이후로 늘 적금 모으고 털고, 또 모으고 털고의 반복이었어요. 그런데 코로나는 탓할 대상도 없더군요. ‘이렇게 계속 하는 게 맞을까?’ ‘경제적인 안정기가 오긴 할까?’ ‘내 길이 아닌 게 아닐까?’ 수없이 고민했어요.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나요.

제가 처음 다녔던 회사에서 슬럼프가 왔을 땐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번아웃이 오지?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이 아니었나 보다’라고 생각했어요.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도망치는 걸 택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일하면서 성장하고 가치관이 조금씩 바뀌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더라고요. 그때 만약 일과 생활을 적절히 배분하는 법을 배워서 계속해서 그 분야로 깊이 파고들었다면, 재미있는 세상도 많이 만났을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니, 3년만 하고 또 그만두고 싶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통장 잔고를 보니 ‘여기서 포기하면 진짜 끝이다. 안 돼 망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낭떠러지에 서니 정신이 차려지더라고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명한 공방을 운영하는 선배를 찾아갔어요. 그날 ‘4년 차에는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어떻게 새로운 것을 하지? 그럴 힘이 없는데…’라는 생각만 들었죠. 그러다 ‘배우는 법을 배우기’라는 책을 읽었어요. 책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계속 같은 방법으로 애쓰는 것만 반복하면서 안 된다고 말한다’는 것이었어요. 제 이야기더라고요. ‘내가 1,2년 차에 썼던 방법을 지금도 쓰려고 하니까 안 통하는구나.’ 그때부터 제가 해왔던 방식을 내려놓고 문제 해결 방법을 바꿔봤어요. 코로나19라는 문제를 꿰뚫는 콘텐츠를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통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찾아보면 이렇게 다 있는데, 그 전에는 힘들고 안 된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거였죠. 그렇게 4년 차가 되었네요.

스머지스틱, 에코백, 책갈피, 펜 등 ‘지금의 세상’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기자기한 제품을 제작해 판매한다.

코로나를 꿰뚫는 콘텐츠란 어떤 것인지 궁금하네요.

지금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나의 세상 정리기’에요. 저와 일대일로 90분 동안 대화하면서 자신의 시간‧공간‧존재‧생각들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탐색해 보는 코칭 프로그램이에요. 이건 기존에 있던 프로그램 중 하나였는데 코로나 때 수요가 증가했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고, 현재 토요일 오전마다 세 분씩 만나고 있어요.

또 제가 평소에 ‘코로나 4단계 오기만 해봐라’ 하면서 생각했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혼자서 읽기 어려운 고전 문학을 온라인에서 모여 같이 읽고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챌린지’였어요. 처음에 <데미안>을 읽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페스트>까지 읽었죠.

7월에는 ‘머물다 사당’이라는 공간을 오픈했어요. 서점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은 걸 봤어요. 저도 처음 상경했을 때 혼자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문득 ‘이 혼잡한 도시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이런 공간이 필요할 거라는 판단도 했고요. 많은 분들이 이곳에서 쉼을 얻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년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면 올해는 그중에서 안정시킬 수 있는 콘텐츠를 선별해 집중하고 있어요. 또한 2년 차 때 외부로 힘을 키웠던 것과 반대로, 서점 내부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어요. 그 노력의 일환으로 서점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문학심리분석상담사 공부를 하고 있어요.

대표님은 생존을 위해 계획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하지만, 고립되기 쉬운 요즘 누군가에겐 정말 필요한 시간 아닐까요.

사실, 저도 프로그램에 참석하면서 도움을 얻을 때가 많아요. 기분이 처지다가도 사람들과 눈빛을 주고받고, 대화하면 에너지가 생기더라고요. 최근 온라인 고전 읽기 챌린지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다면 용기를 얻을 수 있겠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혼자 있지 말고 영상통화든 SNS 라이브 방송이든, 무엇을 도구로 하든 사람들과 연결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사람이 있는 책방인 지금의 세상에서 많은 분들이 서로서로 연결되면 좋겠네요(웃음). 혼자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과 연결될 때 얻는 것은 또 다르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그 즐거움을 충분히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삶을 살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움직여야만 할 때가 있다. 현정 씨는 가게의 존폐 문제 앞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고 여겼던 곳에서 그는 ‘수많은 길’을 만들어냈다. 그는 하루하루 그 길을 걸으며 사람들과 연결되는 기쁨을 느끼고,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고 있었다.

‘어느 날 독립 서점을 시작한 후배가 현정 씨를 찾아와 더 이상 길이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 ‘어쩌면 인생은 원하지 않는 길이나 앞이 보이지 않는 길도 걸을 때 더 풍성해지는 것이 아닐까.’ 기자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사당의 어느 예쁜 서점을 나왔다.

취재 고은비 기자  사진 박종도 기자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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