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들리지만, 그래도> 이동희 작가

이동희 작가의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서점 한쪽에 ‘인플루언서 oo님의 추천’이 붙어 있길래 호기심에 집어 들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라는 제목이 달린 프롤로그를 읽어내려간 후에야 왜 책 제목이 ‘안 들리지만, 그래도’인지 이해했다. 청각 장애인인 작가는 신체적으로 들을 수 없는 세상에서, 하나씩 더듬고 파헤치며 찾은 타인의 내면의 소리를 이 책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그의 시선 끝에는 ‘자신’이 있었다. 글을 쓰며 타인의 진심을 발견하고, 본인을 발견한 그를 만났다.

Q. 글을 쓰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몇 년 전, 한 친구가 청각 장애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글로 써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하더군요. 10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지만, 제가 가진 가치관이나 감정을 헤아릴 수 없다면서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다른지, 배려가 상처가 되는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등 청각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겪는 여러 일들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소에 글 쓰는 걸 즐겨 했기 때문에 금방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몇 년이나 걸렸네요.

Q. 책을 읽어보면 상처를 받았던 내용보단 따뜻한 내용이 훨씬 많던데요.

글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하하). 처음엔 제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적느라 글에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어요. 그런데 글을 쓰는 동안 어느새 분노가 조금씩 사그라들었어요. 그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쉴 새 없이 글을 쓰고 감정을 토해내기를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힘들고 비참한 순간이 더 많다고 생각했는데, 고맙고 따뜻한 순간이 훨씬 많았네. 나는 왜 그걸 몰랐지?’ 그때부터 차근차근 고맙고 따뜻한 순간들을 찾아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그 순간을 묶다 보니 이렇게 책이 됐네요.

그의 귀에는 세상의 소리를 들려주는 작지만 위대한, 보청기가 끼워져 있다.
그의 귀에는 세상의 소리를 들려주는 작지만 위대한, 보청기가 끼워져 있다.

Q. 개인적으로 책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이 ‘다정’ 씨가 알려준 청음과 청능이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못 한다고 여기며 살아온 걸 다정 씨가 찾아서 알려줬잖아요.

주변 사람들도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예요. 청음과 청능 이야기를 해주면 다들 몰랐다면서 흥미로워하더라고요. 그 당시 저의 여자친구였던 다정이는 제가 들을 수 있는데 왜 통화는 어려운지 궁금해했어요. 저는 소리를 들을 순 있지만 입 모양을 봐야만 알아들을 수 있었거든요. 다정이가 제게 왜 그런지 물어볼 때 저도 ‘왜 그렇지?’ 궁금했어요. 제겐 너무나 당연했던 일이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물음이었거든요.

질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정이는 ‘왜 그런지’를 찾아서 왔어요. 저는 청능이 부족한거래요. 그때 배운 걸 독자분들께도 알려드릴게요. 청음은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귀로 들어온 소리를 이해하고 분별하는 건 뇌의 역할이에요. 이처럼 소리를 이해하고 분별하는 것이 청능입니다. 청각 장애인들은 보청기와 인공와우 같은 보조 장치를 사용해 소리를 듣기 때문에 청음은 가능하지만, 소리를 이해하는 능력은 학습이 충분하지 않아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저 역시, 들리는 소리를 바로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입모양을 봐야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거였어요.

그 당시 저는 제 장애가 싫고 숨기고 싶었기 때문에, 왜 그런지 알고 싶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잘 숨길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다정이가 청음과 청능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니, 부끄럽더라고요. 진작 스스로 묻고 찾았어야 할 대답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배운다는 게요. 그리고 ‘지속적으로 학습한다면 나도 더 나아질 수 있구나’라는 가능성을 알게 됐어요.

이동희씨에겐 함께 있기만 해도 즐거운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든든하다.
이동희씨에겐 함께 있기만 해도 즐거운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든든하다.

Q. 이외에도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하게 된 경우가 있을 것 같아요.

청각 장애인인 저는 제가 할 수 없는 일이 무척 많다고 믿었어요. 귀가 들리지 않으니 손님들과 소통해야 하는 콜센터나 편의점, 서브웨이 같은 곳에선 절대로 일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는 것도 싫었어요. 음치, 박치라서 노래방에선 항상 조용히 탬버린만 흔들곤 했어요.

그랬던 제가 사려 깊은 편의점 점장님 덕분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오지랖 넓은 아주머니들에게 끌려가서 줌바댄스도 춰보고요(하하). 뭘 하든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들 덕분에 노래방에서 눈치 안 보고 신나게 노래도 불러요. 친구들이 종종 웃겨서 웃음을 터뜨리곤 하지만, 이제 개의치 않아요.

저는 늘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편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했는데, 저 역시 편견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어요. ‘못할 거야’라는 생각에 저 스스로 어두운 동굴 속에 숨어 있느라 못 해본 게 더 많을 거예요. 그런 저를 제 주변 사람들이 이끌고 나왔죠. ‘나는 할 수 없을 거야’라는 편견과 부끄러움을 깨고 걸음을 내디딘 곳엔 자유가 있었어요. ‘나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기고요.

갓난 아이였을 때 앓은 열병으로 이동희 씨의 고막은 녹아버렸지만, 그에겐 누구보다 헌신적인 부모님의 사랑이 있었다. 언제나 넓은 품을 내어주는 어머니와.
갓난 아이였을 때 앓은 열병으로 이동희 씨의 고막은 녹아버렸지만, 그에겐 누구보다 헌신적인 부모님의 사랑이 있었다. 언제나 넓은 품을 내어주는 어머니와.

Q. 편견을 벗고 ‘자신’을 바라보니 어떠셨나요?

저는 참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장애가 부끄러워서 귀를 덮을 만큼 머리카락을 길러 보청기를 가리고, 사람들의 말을 쉽게 알아듣지 못한다는 열등감 때문에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알아 들은 척 고개를 끄덕이거나 분위기에 맞춰 웃는 연기를 많이 했어요.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외에 마음도 연약하고 속도 좁고요(하하). 진짜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지요.

저는 저의 부족함이 싫어서 감췄는데, 저보다 더 저의 장애를 사랑하고 들여다봐줬던 여자친구가 있었고, 때때로 날선 말과 편견으로 제게 상처를 준 사람들도 있었지만 제 편에 서서 따뜻한 선 의를 건네준 많은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저를 도와주고,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저를 알면 알수록,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존재라는 게 명확해져요. 모자람을 아는 만큼 함께 살아갈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리고 예전보다 조금 더 솔직해져도 되겠구나, 조금 더 용기를 내도 괜찮겠구나 싶어요. 나의 부끄럽고, 여리고, 취약한 면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나를 품어줄 사람들이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확신과 믿음이 채워졌거든요.

Q. 가장 최근에 자신을 품어줄 누군가의 마음을 읽은 일이 있었다면요?

요즘 코로나 때문에 다들 마스크를 착용하잖아요. 저는 입 모양을 보면서 소통하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대화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마스크를 벗을 수도 없고요. 한번은 친구들과 같이 식당에 갔는데 한 칸씩 띄어서 앉아야 했어요. 제가 소음이 많은 곳에서는 더욱 소리를 잘 듣지 못하고, 마스크 때문에 입 모양도 안 보이니까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는데, 친구들이 제게 자신의 입 모양을 보여주려고 마스크를 벗고 쓰고를 반복하더라고요. 마스크를 내리고 소리를 내지 않은 채 입 모양으로만 제게 말을 거는데, 그 모습이 참 귀엽고 고마웠어요. 사실 얼마나 남의 눈치가 보이고 번거로운 일이에요? 저라면 그렇게 못 할 것 같아요. 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읽은 날이어서, 그 순간이 생각나네요.

Q. 그 모습이 상상됩니다. 책에 보면 ‘신께서 청각을 주는 대신 네 수명을 앞으로 10년만 준다면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고, 청각 장애를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이렇게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을 장애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보냈어요. 제 잘못이 아닌 일에도 ‘내가 장애가 있어서 이런 상황이 일어난 거야’라고 자책하면서요. 제가 용기 내어 책을 내고, 지금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전할 수 있게 된 건 아주 최근에야 가능했던 일입니다.

제가 이렇게 변할 수 있었던 건 곁에서 도와준 많은 사람들 덕분이었어요. 기억을 더듬으며 한 문장, 한 문장 글을 완성시켜나가며 알게 됐어요. ‘비극으로만 점철된 것 같았던 내 삶이 생각보다 괜찮았구나. 좋은 사람들이 많았구나. 즐거운 일들이 꽤 있었구나. 괜히 복잡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했구나. 장애가 있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숨길 필요가 없었구나. 있는 힘껏 사랑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표현해야겠구나.’라고요. 새로이 얻게 된 이 가치관이 제겐 너무 귀중한 재산이에요. 청각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위로와 선물 같아요. 지금 느끼는 이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이동희 작가가 상대를 모르고, 자신을 몰랐을 때에는 위태롭고 상처받는 순간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처음 펜을 들었을 때 지금껏 쌓인 분노를 적었다. 자기 눈에 보이는 차갑고 시린 세상을 말이다. 그게 다인 줄 알았으나 글을 적고 난 뒤 새로운 것이 보였다. 사랑받고, 도움받고, 누군가의 희생 안에서 지켜져온 자신을 말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가 있었을까?

이제 그는 상대를 알고, 자신을 안다. 귀가 들리지 않아 눈에 보이는 상대방의 표정, 눈빛, 입술을 읽던 그는 이젠 그들의 진심을 읽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 자신과 사람들의 온정으로 심지가 단단해진 ‘이동희’를 읽는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완성된 건 비단 책뿐이 아닌 것 같다.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