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기사승인 2021.12.09  08:40:26

공유
default_news_ad1
카자흐스탄의 겨울은 일찍 시작된다. 9월 초엔 고산 지대에는 눈이 내리고, 11월 초면 대부분의 지역에 눈이 쌓인다. 나는 해외 봉사로 인연을 맺은 IYF 카자흐스탄 센터에서 지내고 있다. 현지 학생들도 함께 생활해서 러시아어도 많이 늘었다. 고려인인 한비까(맨 왼쪽)는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다. 고려인과 우크라이나 혼혈인 김슈샤(오른쪽에서 두 번째)는 내가 대학 수업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러시아어를 가르쳐준다. 러시아 친구인 아나(왼쪽에서 두 번째)는 문화를 이것저것 알려준다. 이곳에서 만난 고마운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얼굴이 꽁꽁 얼 정도로 추웠지만,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학교 활동 중 하나인 해외봉사활동을 아프리카 가나에서 했다.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가나는 한국보다 무더웠지만, 나는 태권도 공연을 하고 태권도 아카데미도 진행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공항을 벗어나자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머리에 자기 몸통만 한 항아리를 이고 물을 팔고 있었다. ‘저 아이들은 왜 저기에 있을까?’ 생각하며 한참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아이들이 가난과 배고픔 속에 있음을 알았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는 아이들, 사람들이 버리고 간 짐 속에서 입을 옷을 찾는 아이들….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은 자신이 먹고 입을 것들을 직접 구하고 있었다. 그렇게 고된 하루를 보낸 아이들은 언제나 내게 환한 미소를 보냈다. 태권도를 가르쳐줘서 고맙다며, 아껴온 사탕 하나를 들이밀면서 말이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현지 분들이 내게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저녁마다 흰쌀밥을 지어 주셨다. 그분들에게 그 밥은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하는 귀한 음식이었다. 자신들도 먹지 못하는 쌀밥을 내게 주는 그분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창피했다.

가나에서 만난 학생들은 열정적으로 태권도 수업에 참여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우린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필자는 사진 가운데)

한국에서 나는 눈만 뜨면 게임 생각만 하던 학생이었다. 밤을 새우며 게임을 했고, 학교 수업시간엔 엎드려 자기 바빴다. 이런 식이다 보니 학업은 늘 뒷전이었고, 성적은 바닥을 쳤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밥 먹는 것도 잊었다. 게임이 끝나고 나서야 냉장고를 열어 먹고 싶은 걸 먹었다. 그렇게 부족함 없이 자랐으면서도 내 입에선 불평이 나오기 일쑤였다.

그런 삶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나에서 처음으로 알았다. 하루를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내일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주변을 돌보며 살았다. 그 앞에서 ‘내가 이분들에게 밥을 얻어먹을 자격이 있나?’ 싶을 만큼 내 삶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분들이 내게 주었던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언젠가 꼭 보답하겠노라고, 그렇게 막연한 다짐을 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우즈베키스탄으로 해외봉사를 가다

한국으로 돌아와 난생처음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생이 된 후로 공부와는 담쌓고 살아온 터라 수업 시간을 따라가는 것도 벅찼지만,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따라갔다. 이런 내 태도의 변화를 선생님들도 알아차리셨고, 기초가 부족한 나를 붙잡고 하나씩 가르쳐주셨다. 덕분에 상위권 학교는 아니지만 대학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건 바로 해외 봉사였다. 한 달간 다녀온 가나에서의 추억 때문에 아프리카 대륙으로 갈까 고민했지만,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서 다른 나라를 찾았다. 그러다 알게 된 나라가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위치한, 이름도 생소한 ‘우즈베키스탄’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 나라로 떠났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동안 많은 도시를 돌며 공연을 했다. 겨울이 긴 나라에 따뜻한 크리스마스 공연을 선물했다.

우즈베키스탄은 과거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주변 나라들에 비해 수자원이 풍부해 ‘아시아의 오아시스’라 불리며 큰 번영을 누린 나라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유구한 역사가 깃들어 있고, 다른 도시들에서도 아름다운 문화와 예술,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영광은 화려한 건축물에만 남아 있고,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굶주리고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곳 사람들 중에서도 내 눈길이 간 건 고려인이었다. 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한국인 피가 흐르지만 한국에 가보지 않은 그들을 볼 때면 기분이 묘했다. 한국어 수업과 코리안 캠프를 진행할 때면 특히 고려인 분들이 많이 참여했는데, 그들은 수업을 마치면 항상 케이크를 선물로 주셨다.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고마움을 표현하는 그들의 풍요로운 마음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한번은 우즈베키스탄을 떠나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 러시아로 봉사하러 갔다. 수업에 참여하신 분들에게 이런 사정을 전하며 마지막 수업을 하고 헤어졌는데, 우즈베키스탄을 떠나는 날 그분들이 새벽부터 도시락을 준비해 나를 배웅해주셨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눠 싼 도시락을 보며 눈물이 절로 났다. 이른 시간부터 준비했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고마웠다. 나는 러시아말이 서툴고 그분들은 한국말이 서툴러 깊은 대화를 나눌 순 없었지만, 먼 이국땅에서 가족을 만난 것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받은 만큼 주고 싶었다

1년간 중앙아시아에 있는 여러 나라와 러시아로 봉사하러 다녔다. 봉사활동을 하며 가장 많이 느낀 게 있다면, 이 세상에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이 아직 많다는 것이었다. 가나에서도 그랬고, 이곳에서도 많은 사람이 하루 한 끼를 걱정하며 살았다. 그런데도 언제나 내게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을 건네는 사람들…. 난 그들에게 도움을 주러 갔지만 마음에 큰 빚을 진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그들에게 음식을 해주고 싶었고, 배고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면 나는 해외봉사단 지부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내 이야기를 몇 차례 들으신 지부장님이 “네가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배우는 것에도 흥미가 있다면 그 꿈을 갖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 좋겠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지부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꿈을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지 고민했고, 해외 봉사 시절에 알게 된 카자흐스탄의 농업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현재 카자흐스탄에 있는 대권 씨는 매일 현지 학생들과 저녁을 먹는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도, 음식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다시 그곳으로 떠나다

작년 9월, 나는 카자흐스탄 농업대학교 식품가공학과에 입학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이 있는 중앙아시아는 유목 생활을 하던 민족이 살았던 까닭에 유제품이 발달했다. 나는 이곳에서 요거트와 버터를 비롯해 유제품을 만드는 기초 지식부터 다양한 가공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쳐서 식탁에 오르는지를 알고 배우는 게 무척 재밌고 흥미롭다. 배우고 나서야 왜 이곳 사람들이 고마움을 표현할 때나 초대받은 집에 갈 때 케이크를 들고 가는지도 이해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는 일조량이 많아 농사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물론 건조한 기후 때문에 물을 대는 기술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현재 중앙아시아는 한국과 MOU를 맺어 K-형 농업 기술이 많이 전파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마음에 진 빚을 갚아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의 농업 기술을 지속적으로 도입하면 지금보다 많은 양의 농작물을 수확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아직은 먼 미래지만, 나는 넓은 이 땅 어딘가에서 농사를 짓고, 이곳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맛있는 밥 한 그릇을 나눠 먹을 상상을 한다. 그리고 수확한 농작물을 아프리카로 보내, 내게 따뜻한 쌀밥을 주었던 분들이 하루라도 밥 걱정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너무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꿈을 마음에 되새기며 학교로 간다.

김대권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에서 해외 봉사를 하며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그들은 언제나 김대권 씨를 더 살뜰히 챙겼다. 그 따뜻한 사랑을 경험한 뒤, 그에게는 ‘굶주림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고, 현재 카자흐스탄 농업대학교 식품가공학과를 다니며 꿈을 향해 정진하는 중이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저작권자 © 데일리투머로우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