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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기사승인 2021.12.09  08: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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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헨리 <크리스마스 선물>

살면서 기억나는 선물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꼬깃꼬깃한 손편지, 어린 시절 소원을 빌며 접은 종이학 한 상자, 어머니가 한 코 한 코 떠주신 벙어리장갑…. 이런 선물들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부자가 된 기분이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연극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는, 미국 작가 오 헨리의 단편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의 주인공 짐과 델라의 선물이 그러하다. 그들의 소중한 마음이 담겨 있기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선물로 기억되고 있다.

1900년대 초 뉴욕, 짐과 델라는 주 8달러짜리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젊은 부부다. 이 부부에게는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짐의 금시계였고, 다른 하나는 델라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델라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사랑하는 남편 짐을 위해 선물을 사고 싶지만, 알뜰살뜰 모은 돈이 고작 1달러 87센트뿐이기 때문이다. 세 번이나 세어보지만 틀림없다. 동전들 가운데 60개가 1센트짜리다. 델라는 훌쩍이다, 거울 앞에 서서 갈색 폭포처럼 물결을 이루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바라본다. 시바 여왕의 보석마저도 빛을 잃을 만큼 빛나는 아름다운 머리칼이다. 델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밖으로 나가 헤어용품점으로 들어간다.

“제 머리카락을 사시겠어요?”

“20달러 드리죠.”

얼마 후, 짧은 머리로 가게를 나온 델라는 짐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시내의 상점들을 뒤진다.

“그러다 마침내 선물을 발견했다. 시곗줄을 보는 순간 짐에게 딱이라고 느꼈다. 마치 짐과 같았다. 조용함과 품격, 짐과 시계 둘 모두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델라는 시곗줄 값으로 21달러를 내고 남은 87센트를 가지고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짐의 금시계는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를 거쳐 집안에 내려오는 귀중한 시계였다. 델라는 그동안 낡은 시곗줄 때문에 남몰래 시계를 꺼내 보던 짐이 앞으로 자랑스럽게 시계를 꺼내 볼 모습을 상상하며 기뻐한다. 하지만 망설임 없이 잘라버린 머리카락 때문에 개구쟁이 소년처럼 변한 모습을 보니 좀 서글프기도 했다.

델라는 기도했다. 이런 자신을 짐이 아름답게 보도록 해달라고.

저녁 7시, 집에 돌아온 짐은 델라의 짧은 머리를 보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보고 델라가 말한다.

“여보,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당신에게 선물도 주지 않고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가 없어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았어요. 제 머리카락은 금방 다시 자랄 거예요. 제가 얼마나 멋진 선물을 사 왔는지 당신은 아마 모를 거예요.”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잠시 멍한 상태로 있다가 정신이 든 짐은 델라를 껴안는다. 그리고 자신이 사 온 선물을 풀어 보여준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머리핀 한 세트가 들어 있다. 브로드웨이 상점에 진열되어 있던 옆머리와 뒷머리에 꽂는 머리핀 세트로, 델라가 오래전부터 갖고 싶어 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머리핀으로 치장할 긴 머리카락은 사라지고 없다. 델라는 머리핀을 보고 기쁨의 탄성을 지르고, 탄성은 곧 갑작스런 눈물로 변한다. 델라는 머리핀을 가슴에 품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제 머리카락은 아주 빨리 자라요, 짐!”

그리고 상점을 다 뒤져서 얻은 귀중한 시곗줄을 짐에게 건넨다.

“멋지지 않아요? 이제 하루에 수백 번도 더 시계를 봐야 해요. 당신 시계 좀 건네주세요.”

짐은 델라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소파에 드러누워 머리 뒤로 팔을 두르며 웃는다. 짐 또한 델라의 선물을 사기 위해 소중한 시계를 팔았기 때문이다.

“델라, 우리 크리스마스 선물은 잠시 치우고 나중을 위해 잘 보관해 둡시다. 당장 사용하기엔 너무 멋진 물건들이야. 자, 이제 고기나 준비합시다.”

가난도 짧은 머리도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건

허름한 아파트에서 주당 20달러의 수입으로 임대료 8달러를 내고 나머지 돈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부부, 돈이 없어서 선물을 사기 위해 아끼는 머리카락을 자르고 소중한 시계를 팔아야 하는 부부, 아무리 봐도 행복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 같다.

고심 끝에 선물을 마련했지만, 서로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을 선물하게 된 부부, 그런데도 짐과 델라가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은 마지막 대목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현명한 사람들에게 끝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선물을 주고 받는 모든 사람 중에서 짐과 델라 두 사람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처럼 선물을 주고받는 모든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 어디에 있든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며….”

두 사람의 선물이 빛나는 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마음을 담아 서로에게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그 물건이 쓰임이 있든 없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어서라도 상대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선물이라면, 받는 사람이 기쁘고 행복할 수밖에 없다. 선물을 받은 사람에게 그가 세상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인지, 선물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선 가난도 짧은 머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때 행복하다

요즘은 그런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이 드물다. 선물을 살 수 있을 만큼 삶이 여유로운 까닭도 있지만, 각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서 누군가를 아주 가치 있게 여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대부분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서 만족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때 행복하다.

얼마 전 생일에 아들에게 케이크를 선물 받았다. 거기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 할래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 글을 읽으며, 바쁘다고 좋은 음식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 아들이 성장할 때 공감하기보다 늘 ‘이렇게 해야 한다’며 정답을 내밀어 부딪혔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 내 마음에는 아들을 향해 아쉬움과 불만이 많았다. 더 잘했으면 하는 욕심에 아들을 채근하고 닦달했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생각에 잡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키웠는데 다시 태어나도 엄마 아들이 되겠다고 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시간이 지나서야 부족하기만 한 나 자신을 알게 되었는데도, 그런 엄마를 소중하게 여기는 아들의 마음을 느끼니 한없이 감사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여러 선물을 받았다. 학창 시절에 새로 산 지갑을 잃어버리고 속상해하는 나에게 부주의함을 꾸짖는 대신 똑같은 지갑과 그 속에 들어 있던 돈까지 넣어서 주셨던 아버지,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시험을 보겠다는 나를 걱정하며 날마다 촛불을 켜고 기도하셨던 어머니, 용돈을 모아 작은 반지를 선물해 주었던 남편…. 이런 선물들은 잊히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기쁨과 감사로 마음에 남는다. 부족한 나에게 아낌없이 쏟아준 과분한 사랑이었다. 그것이 나에게 힘이 되었고,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선물에 담긴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사람

선물에는 가치가 담겨 있다. 델라가 산 시곗줄에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잃어도 짐이 멋진 시곗줄이 달린 시계를 자유롭게 볼 수 있다면 정말 좋아’라는 가치가 담겨 있다. 짐이 산 머리핀에는 ‘소중한 시계지만 델라가 아름다운 머리핀을 하고 기뻐한다면 시계를 잃어도 좋아’라는 가치가 담겨 있다. 그처럼 소중한 가치가 담긴 선물은 받는 이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소중한 가치가 담긴 선물이라도 받는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면 그 의미는 사라지고, 행복도 함께 사라진다. 내가 받는 선물의 가치는, 스스로 나 자신의 점수를 얼마만큼 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같은 선물이 당연한 것이 되기도 하고, 그저 그런 것이 되기도 하고, 무척 고마운 것이 되기도 한다. 짐과 델라는 자신보다 상대를 소중하게 여겼다. 점수로 비유하자면, 자신은 60점쯤 되고 상대는 90점쯤 된다고 여긴 것이다. 그 마음이 크리스마스 선물에 고스란히 담겼다.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줄 때 고마움을 느끼는 법인데, 이때 자신을 낮게 여기는 사람은 작은 것에도 고마움을 느끼고 더 행복해한다. 그 행복한 마음을 사람들에게 표현해 주변도 행복하게 만든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남보다 낮은 위치, 누군가에게 고마워하는 위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부족하고 못난 것을 괴로워하며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곤 한다. 하지만 부족하고 못난 위치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고 주변을 따듯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안다면, 모자랄 때 슬퍼만 하며 지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낮은 위치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삶이 잘 풀릴 때에도 자신의 모자람을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언제나 누군가를 향해 고마운 마음을 품고 살 것이다.

행복으로 가는 길

짐과 델라는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열악한 형편 속에서도 그들이 행복해 보이고 그들의 이야기가 따듯하게 느껴진다. 나는 짐과 델라의 10년 뒤 모습을 그려보았다. 짐이 승진해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고, 그곳에서 그들을 닮은 귀여운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그때에도 두 사람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크리스마스에 서로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선물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그해 크리스마스에도 서로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미소를 지으며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주고받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것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햇살에 반사된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그림 같은 풍경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물이다. 상큼한 한 줄기 바람과 깊고 푸른 하늘은 덤이다.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만 하면 이 소중한 선물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가까이 있어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잃으신 예수님이 마구간에 태어나신 날이다. 우리에게는 늘 아주 큰 선물들이 배달되고 있는 셈이다.

글쓴이 심문자

서울과학기술대학 사회교육개발원에서 독서교육을, 방정환 교육센터에서 부모교육을 하고 있다. 예루살렘 라디오 ‘북적북적 북클럽’ 진행자이다. 독서지도사, 청소년상담사, 독서논술교사 등 책과 관련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의 선물>은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의 단편 소설이다. 그는 복역 중에 딸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10여년 남짓한 시간 동안 3백여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가난하지만 서로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부부의 일상을 담은 이 작품은 서민의 삶을 훈훈하게 그리는 오 헨리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심문자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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