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받아들임, 훈련의 과정

피아니스트인 필자는 ‘취미와 직업과 꿈이 일치하는 행복한 길을 지금 계속 걸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멋진 길을 다른 사람들도 걸을 수 있다고 확언한다. 이 말에 솔깃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2회 연재로, 지난 호에는 받아들이는 기능을 통해 어떻게 삶에 변화가 나타났는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번 호에서는 구체적으로 비우고 받아들이는 훈련 과정을 소개한다.

책상 앞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었다. ‘비우고 받아들이기’라는 주제로 두 번째 게재할 글을 써야 하는데, 첫 번째 글보다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앞서니까 영 손에 잡히질 않는다. 사람 마음은 희한하다. 그냥 하면 술술 잘 풀리는 일들도 잘하려고 마음에 힘을 주면 오히려 역반응이 나타난다.

마음을 비워야겠기에 손을 놓고, 몇 자 쓰지도 않은 노트북의 빈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문득 표음문자로 된 한글이 신기하게 보였다. 글자 하나하나는 별 의미가 없는데, 모이면 의미를 지닌 문장이 된다. 그 문장들이 모이면 감동적인 이야기가 되어서 누군가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통찰력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기도 한다.

생각과 글자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도 매우 비슷하다. 의미 없이 지나가는 생각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현재 나의 감정이나 상황과 개연성을 형성하면서 의미를 가지는 생각들이 있다. 그 생각들은 즉시 세포분열을 시작해 순식간에 집단을 만든다. 그리고 그 집단이 오랫동안 유지되면 사고방식이라는 시스템으로 내 안에 만들어진다. 생각이 글자와 다른 점은, 단어를 이루지 못한 개별 글자는 의미가 없지만 생각은 그 자체로 개별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에는 방향성이 있어서 주로 비슷한 속성을 지닌 생각들을 낳고 그 생성된 생각들이 집단을 형성한다. 이런 비슷한 성향의 생각들이 계속되면 삶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떤 성향의 생각들을 받아들이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한 학생의 실제 사례를 통해 ‘비우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고등학생 A는 소위 말하는 *‘인싸’다. 친구도 많고, 친구들 사이에 평판도 좋아서 사람들에게 늘 둘러싸여 있다. 하루는 어떤 친구가 뒤에서 자신의 험담을 한다고 들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냥 불편한 점을 내 앞에서 말해주면 좋을 텐데…’ 하며 A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A와 굉장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자신을 험담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갑자기 A는 불안해졌다. ‘정작 다른 친구들도 속으로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조금씩 주변 상황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등교해 친구에게 인사를 했는데, 그날따라 친구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평소라면 ‘오늘 기분이 안 좋나? 무슨 일이 있나 보다’ 하고 가볍게 지나쳤을 텐데, 불안한 마음이 드니까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엉뚱하게 흘러갔다.

‘아, 쟤도 나에게 뭔가 불만이 있구나.’

A의 내면에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점점 커져 갔다. 시간이 지나자, 눈빛만 조금 불편해 보여도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랬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보지만, 나중에 자신을 등지고 떠나갈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A는 결국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이제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싫고 두려웠다. 혼자 다니다 보니 외롭긴 해도 오히려 편했다. 하지만 고립된 마음은 가만히 있지 않고 온갖 생각들로 마구 가지를 뻗어나간다.

‘이 세상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어차피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없는데 평생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A는 점점 사람들과 멀어지고 마음은 어두워졌다. 이제 A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사람들은 다 나를 싫어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갔다. 누군가 자신에게 진심 어린 조언이라도 해주면, ‘나를 싫어해서 하는 소리’라며 자신의 억측 같은 전제를 더욱 강하게 믿었다.

보편타당한 상황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생각

만약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A의 인생은 외롭고 불행해질 것이다. A의 문제는 무엇일까? 자신을 험담하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고, 험담할 게 없는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없는 법이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보편타당한 전제를 인정한다면 그 누구와의 갈등도 넘어갈 길이 보인다.

A가 처했던 상황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상황에서 A가 가졌던 생각의 방향이었다. 그 방향을 따라 그의 마음이 도착한 곳은 ‘완벽한 고립’이었다. 이 불행한 고립에서 A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다른 생각이 그의 마음을 새 방향으로 끌어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원래의 부정적인 생각을 비워내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느 날 A는 인터넷 강의를 듣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여러분의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한번 적어보세요.” 그 말에 A는 자신의 생각을 노트에 써보았다. 자신의 생각이 적힌 노트를 마치 남의 일처럼 객관적으로 보다가 그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생각이 너무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만일 다른 누군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절대로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은, 부정과 불만으로 꽁꽁 뭉친 사람의 모습이었다. 이런 자신이 너무 싫었다.

생각을 깊이 해보았다. 만약 이런 사람이 나에게 와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주었을까? A는 노트에 적힌 자신의 생각들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에게 상담해주듯 적어보았다. ‘나를 확실히 싫어하고 뒤에서 욕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었지? 이 생각은 사실인가?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없었을까?’

그를 욕하고 싫어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았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A는 자신의 생각이 정말 사실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며칠 전 자신이 건넨 인사에 시큰둥했던 친구가 떠올라 먼저 연락을 하고 찾아갔다. 만나자마자 대뜸 질문했다.

“너, 나를 싫어하니?”

그 친구는 뜻밖의 질문에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가 말하면 믿을 거야?”

그리곤 자신이 왜 시큰둥하게 인사를 받았는지 설명해 주었다. 다른 고민거리가 있었을 뿐, A와는 연관이 전혀 없었다. A는 다시 한 번 노트에 적어보았다.

“어제 인사했는데 반응도 표정도 별로 좋지 않았어. B는 나를 싫어하는 거야.”

그리고 그 옆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B에게 물어봤더니 걱정거리가 생겨서 내가 하는 인사를 제대로 못 받았다고 하네. B는 나를 전혀 싫어하지 않아.”

진실과 거짓 중 하나는 버려야 한다

상반된 두 문장을 동시에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이다. 하나를 받아들이면 하나는 버려야 한다. A는 생각해본다. B의 말이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그걸 그대로 믿으면 A가 마음에서 고민할 것이 없다. 하지만 A가 자신의 생각을 믿고 B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면 A는 계속 힘들어야 하고,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A는 마침내 B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 이후 신기하게도 B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A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적어본다. 그리고 확인해본다. 그렇게 A는 자신을 옭아매던 생각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사례의 주인공인 A가 너무 멍청한 사람이어서 이런 일이 실제 있었는지 독자 중에 의구심을 갖는 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이며, A는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자신이다. 이 사례를 기억하면서 받아들이는 훈련으로 돌아가 보자.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는 것은 좋은 시작이다. 처음에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인드맵에 적듯이 기록한다. 이 작업을 여러 번 해보면 반복적으로 나오는 생각들이 있다. 이런 생각들은 좋든 나쁘든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생각들이다. 그다음엔 영향을 주는 ‘반복적인’ 생각들만 추려서 적어본다. 오래 영향을 주고 있는 생각들은 마치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게 했을 것이다. 그 생각들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말이다.

특정 정보를 자주 접하다 보면 누구나 그것을 사실처럼 여긴다. 거기에 감정적 요소까지 더해지면 그 믿음이 더욱 견고해진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해’라는 추측성 정보에 A는 오랫동안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거기서 오는 마음의 상처 즉,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기 연민 등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더해져 그 안에 완전히 갇혀버린 것이다.

영향을 미치는 생각들을 추려냈다면, 그다음엔 여기서 가장 중심이 되는 생각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A는 구체적으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순간순간의 상황 속에서 ‘저 사람 왜 나를 불편하게 쳐다보지?’, ‘저 사람 왜 내 인사를 무시해?’ 등의 단편적인 반응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생각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보니 그 중심에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생각이 형성되어 있었다. 중심이 되는 생각을 찾아내야 지난 호에서 이야기한 ‘사고방식을 파악’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필자는 피아노를 공부하면서 늘 이런 훈련을 한다. 단순히 악보에 적힌 악상 기호들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가 어떤 의도로 악상 기호를 적었는지, 무엇에 대해 말하려는 것인지 등을 늘 고민하고 연구한다. 그리고 이런 훈련은 평상시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예컨대 독서를 할 때 그냥 책을 읽지 말고, 작가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 파악하며 읽는 것이다. 읽다가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필기하고, 그 문장들이 결국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발견하며 어떤 의도로 이야기되고 있는지 파악하면 더욱 알찬 독서가 된다.

중심 생각을 발견한 뒤엔 팩트 체크가 필요

누군가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더라도 상대가 하고 싶은 말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알아내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훈련이라는 태도로 조금씩 시도해보면 하루하루가 달라질 것이다.

중심이 되는 생각을 발견했다면, 여기에 대한 ‘팩트 체크’를 시작해야 한다. 앞서 예를 들었듯이 우리는 감정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팩트가 아니어도 사실이라고 믿는 경우가 허다하다. 감정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이 생각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이 단계에서 ‘내 생각은 틀릴 수 있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면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틀릴 수도 있음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믿어왔던 것을 내려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신념이나 의견은 수많은 생각에 대한 한 사람의 선택이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려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방어기제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할 때 오히려 더 앞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자의 말을 경청하고 따르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검토해볼 수 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 때문이다.

내가 옳지 않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이처럼 여러 면에서 큰 도움을 주며, 이를 바탕으로 내 생각에 대한 팩트 체크를 반드시 냉정하게 감행해야 한다. A처럼 직접 물어보며 확인해 봐도 좋다. 그리고 나면 생각과 팩트를 동시에 적어 놓고 내가 선택해야 한다. 만일 생각과 사실이 달랐다면, 둘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는 없기에 하나는 버려야 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기에 생각이냐, 팩트이냐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롤 모델을 본받고 싶다면

생각과 팩트를 분별하고 취사선택하는 훈련은 혼자보다 누군가와 같이 해보면 더욱 효과적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영향력을 갖게 하는 중심 생각은 무엇인지 파악하는 훈련을 함께 하다 보면, 다른 종류의 사고방식도 쉽사리 파악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생각의 예시를 들었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중심 생각들도 많다.

만약 따르고 싶은 롤 모델이 있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본받고 싶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중심 생각과 사고방식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자. 그리고 마치 내 생각과 팩트 사이에 하나를 선택하듯, 나의 사고방식과 롤 모델의 사고방식을 적어 놓고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처음 자전거를 탈 때는 앉아서 페달에 발 올리는 것도 힘들고 넘어지기 일쑤지만, 나중엔 걷는 것보다 자전거 타는 것이 더 쉽고 편해진다. 이처럼, 생각을 비우고 받아들이는 것도 훈련을 통해 쉽고 편해질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사회에 큰 어려움이 닥쳤다. 하지만 모든 일에 양면성이 있듯이, 부정적인 측면만 있지는 않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좀 더 많아진 사람들도 있다. 젊은이들 사이엔 MBTI 같은 심리검사가 유행하는 등 사람의 이해에 대한 관심이 커진 모습들도 보인다. 바쁠 때는 다른 사람의 마음은커녕 나 자신의 마음조차 돌아볼 여유가 거의 없다.

여러 측면에서 어려운 시기인 것은 맞지만, 이럴 때 마음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여 보면 어떨까.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 행동과 삶은 생각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열심히 일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값진 것들도 정말 많다. 마음의 세계를 공부하고 훈련해 나간다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석승환

20살 되던 2009년 그라시아스 음악학교(현 새소리 음악고등학교)에 입학해 피아노 전공을 시작했다. 졸업 후 2012년에 뉴욕 마하나임 음악원 피아노과에 진학했다. 이듬해, 뉴욕에서 가장 큰 음악 기관인 메트로폴리탄 뮤직 커뮤니티에서 주최한 국제 콩쿠르 입상을 시작으로 Grand Prize Virtuoso 국제 콩쿠르(오스트리아 비엔나) 1위, Golden Classical Awards 국제 콩쿠르(미국 뉴욕) 1위 등 많은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하였다. 전문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피아니스트 강충모, 이고르 레비젭 등 세계적인 음악가를 사사하였고, 현재 이탈리아 벨리니 음악원 디렉터인 에피파니오 코미스를 사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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