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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의 매력, 느껴본적 있나요?

기사승인 2022.01.04  09: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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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

짐바브웨는 그곳 현지어로 ‘돌집’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짐바브웨에는 다양한 돌과 자연이 어우러진 곳이 많다. 표지 배경인 ‘락뷰 Rock View’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파란 하늘 아래 큰 돌, 작은 돌, 모난 돌, 긴 돌…. 다양한 모양의 돌이 한 곳에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짐바브웨 해외 봉사단원인 전영조, 한규민, 이은오 씨는 그곳의 돌들이 꼭 자신들의 모습 같다고 했다. “한 사람씩 보면 뾰족한 돌처럼 모나기도 하고 부서진 돌들처럼 약하기도 하지만,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함께할 때 생각지 못한 일도 해내는 걸 봤거든요.” 그 말을 들으니, 짐바브웨에서 그들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궁금해졌다.

왼쪽부터 이은오, 한규민, 전영조. 나이도, 관심 분야도, 살던 지역도 서로 달랐던 세 사람이지만, 1년간 짐바브웨에서 함께 봉사 활동을 하며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사진을 보며 익살스러운 표정이 무척 재미났습니다.

영조: 그런가요?(웃음). 짐바브웨는 지금 초여름으로, 그날 날씨가 무척 화창했어요. 또, 락뷰가 전에 현지 친구들과 함께 왔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고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가보고 싶었는데, 표지 촬영 덕분에 한 번 더 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은오: 처음 만나 어색해하던 게 어제 같은데 벌써 10개월이 지났어요. 그동안 저희 셋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장 편한 친구가 됐어요. 장난도 많이 치고요(웃음). 그런 모습이 사진에 담긴 것 같아요.

서로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은오: 저는 두 누나와 자라서 늘 형 있는 친구가 부러웠어요. 짐바브웨에 오면서 형이 둘이나 생긴다고 생각하니 좋았죠.

규민: 영조 형이 나이가 가장 많고, 제가 중간, 은오가 막내예요. 저도 좋은 형과 동생이 생긴다는 게 기뻤어요. 한편으론 제가 보통 사람들보다 말하거나 생각하는 게 느리다 보니 동료 단원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 걱정도 됐죠.

영조: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자기소개를 했어요. 은오 소개를 듣고는 ‘아, 나보다 동생이구나’ 정도 생각했어요. 그리고 규민이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털어놓았는데, 그걸 들으며 ‘이 친구를 내가 잘 도와줘야겠다. 동생들이랑 잘 지내다 오면 되겠네.’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예상과 현실은 좀 다르더라고요(하하).

이은오 단원. 한 고아원에서 종이접기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활동에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들과 종이로 물고기를 접으며 바다에 대해 알려주었다.

뭐가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영조: 함께 활동하거나 이동할 때 규민이에게 전달사항을 여러 번 말하곤 했어요. 그게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하니 점점 지치더라고요. 지내다 보니 규민이가 나보다 영어도 잘하고 바이올린도 연주할 줄 아는데, 제 말은 부러 듣지 않는 것 같아 미울 때도 있었죠. 그런데 하루는 규민이가 “형이 나를 위해 말해주는 걸 들어야 하는데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느라 또 놓쳐버렸어… 미안해.”라고 했어요. 그러니 화를 낸 것이 도리어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을 열어준 것이 고마웠어요. 지금은 규민이가 어떤 부분을 잘하고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알아요. 그래도 불편한 일이 생기면 종종 털어놓거나 다투기도 하면서 살고 있어요(웃음).

규민: 하루는 은오가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형, 모르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게 더 부끄러운 거래요. 언제든지 모를 땐 물어봐도 돼요.” 그 덕분에 이곳에서 보내는 동안 살면서 말을 제일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렇게 저를 대해주는 형, 동생, 지부장님과 함께 있어서 행복했죠.

은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셋이 마음이 안 맞아서 다투기도 하고 싸울 때도 있었는데, 마음이 가장 잘 맞았을 때가 건축 봉사 할 때였어요. 건축은 저도 영조 형도, 규민 형도 다 모르는 분야니까 배운 그대로 했거든요. 또 현지인들 틈에서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셋이 뭉쳐야 했고요(하하). 저희가 했던 활동 중 가장 고된 활동이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아요.

건축 봉사 외에 짐바브웨에서 어떤 활동을 했나요?

영조: 한국에 있는 봉사단과 연계해서 ‘온라인 코리안 캠프’를 진행하며 한국 문화를 알리기도 하고, 짐바브웨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현지 문화를 배우기도 했어요. 교도소나 보육원을 찾아가 아카펠라 및 댄스 공연도 하고, 오지 마을에서 레크리에이션 활동과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은오: 저희 모두 음치고 몸치 예요(하하). 그러다 보니 공연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어요. 영어도 서툴러 앞에 나가서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죠. 솔직히 말하면, 저희 모두 할 수 있는 것 혹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아온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어려움이나 부담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한규민 단원. 듣는 사람들이 잠시나마 즐거워지길 바라며 바이올린을 켰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큰 박수로 환호해 주던 사람들이 고마웠다.

어떻게 바뀌었는지요.

은오: 전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하기 싫고 부담스러운 일이 있으면 최대한 미루고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 바빴어요. 솔직히 해외 봉사도 많이 망설였어요. 앞서 봉사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가고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타지에서 1년간 고생해야 하는 게 싫었거든요. 그런데 이곳에서 부담을 넘는 즐거움을 처음 느꼈어요. 제가 영어가 많이 서툰데 이곳에선 사람들과 계속 대화해야 하고, 프로그램도 영어로 말해야 하더라고요. 그 부담을 한 번 두 번 넘었어요. 그렇게 1년을 보내다 보니, 요즘은 서툰 영어지만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하고 있어요(웃음). 부담을 피했다면 지금까지도 여전히 말 한마디 못했을 텐데 부담을 넘으니 새롭게 배우고 얻는 게 있더라고요. 그게 좋았어요.

규민: 저는 이곳에 오기 전에 집에서 종일 TV만 보며 불규칙하게 생활했어요. 자연히 여기 와서 처음 해본 일이 많았어요. 스케줄에 따라 일찍 일어나고, 책도 읽고, 처음으로 함께 노래도 부르고, 댄스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바이올린 공연도 하고요.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조금만 발을 내디디면, 완벽하진 않아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옆에서 저를 밀어주고 끌어준 지부장님과 형, 동생, 현지 사람들 모두 고마워요.

영조: 사실 세 사람 중 제일 고집스러운 사람이 저일 거예요(하하). 저도 정말 오랫동안 제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았어요. 그렇게 살아도 큰 불편이 없었고, 그렇게 사는 게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곳에 오니 영어 공부, 일찍 일어나기 등 하고 싶지 않은 걸 해야 할 때가 많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래도 제 편한 대로 하려고 했어요. 하기 싫은 건 최대한 버티고, 하고 싶은 건 몰래 하고요.

그런데 어느 날 규민이가 현지인과 이야기하면서 모르는 영어 단어를 메모하는 모습을 봤어요. 순간 저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어요. 규민이는 어려워도 부족한 부분을 배우고 도전하려고 하는데, 저는 잘하는 것만 내세우지 하나도 배운 게 없더라고요. 제가 살던 방식을 내려놓고 지부장님이 저희에게 늘 이야기하셨던 ‘도전, 부담을 넘는 법’에 귀를 기울였어요. 그때부터 짐바브웨 사회복지부 장관님을 만나고, 현지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는 등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전엔 내 삶을 1이라는 크기로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방식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2, 3의 크기로 살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한국으로 돌아간 후, 짐바브웨의 무엇이 가장 그리울 것 같나요?

규민: 너무 많아요(웃음). 저는 오지 마을에서 만난 ‘마이클’이라는 친구 집에 갔을 때가 가장 그리울 것 같아요. 그때 제가 열도 나고 속도 안 좋고 몸이 안 좋았는데, 마이클 부모님이 약도 사다 주시고 밥도 해주시면서 엄마 아빠처럼 챙겨주셨어요. 그게 너무 고마워서 아파도 그 마을에서 머물렀던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거기서 아이들과 쇼나어語로 노래도 부르고 현지 춤도 추었는데, 너무 행복한 기억이에요(하하).

은오: 이곳 음식도 그리울 것 같아요. 짐바브웨는 옥수수가루로 만든 ‘싸자’와 야채 볶음을 주식으로 먹어요. 처음에는 맛이 없었는데, 현지인들에게 요리법을 배우고 매일 직접 만들며 맛을 알게 됐어요. 처음에 요리에 실패해서 시큼한 ‘싸자’로 아침을 먹었던 그날도 무척 그리울 것 같습니다.

사진 오른쪽 전영조 단원. 짐바브웨 주식 ‘싸자’를 만들기 위해 이은오 단원과 함께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땔감으로 쓰기 위해 주워온 나뭇가지가 잘 마르면, 그때부턴 불을 붙이기 위해 바람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2022년 새해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맞고 싶은지요.

규민: 전에는 제 생활 습관이 좋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곳에 와서 제가 혼자 살아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나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고, 함께 배우며 나아갈 수 있더라고요. 한국에 가서도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배우며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은오: 여기 올 때 ‘어떤 봉사활동을 하게 될까? 힘이 들까?’ 그런 생각만 했는데, 이곳에서 교류와 소통, 삶을 대하는 마음 자세, 생활 습관 등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돌아가면 다시 일하려고 하는데요, 이젠 부담스러운 일도 부딪혀 보려고요. 영어를 배웠던 것처럼요.

영조: 사실, 전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이곳에서 배운 걸 실천해보고 싶어요. 전에 지부장님이 ‘도전이란, 일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해보고, 한 가지를 더 추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늘 기억하고 있어요. 한국에 돌아가서도 그걸 제 삶에 적용하고 싶어요.

인터뷰 막바지,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마이타바사!”라고 답했다. 짐바브웨 현지어인 쇼나어로 ‘고마워’라는 뜻이란다. 그 이유를 묻자, 배웠던 쇼나어 중 가장 많이 쓰는 말이었고 그때마다 따듯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라고. 그러곤 모두 씨익 멋쩍게 웃었다. 그 미소를 보며 기자는 그들이 앞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나를 따듯하게 받아줘서 고마워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줘서 고마워요.” 그 인사는 함께 했던 서로와 현지 사람들 그리고 지부장님 모두에게 건네는 인사였다. 그들이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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