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가족_인터뷰

가족끼리 책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소개한 <한 지붕 북클럽>의 공동 저자 중 시아버지 최병일 씨. 그는 아들과 두 딸이 초등학생일 때부터 도서관에 데리고 다녔고, 일요일이면 함께 등산을 했다. 그러면서 세 자녀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와 선생님에 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애석하게도 자녀들이 결혼한 후에는 뿔뿔이 흩어져 살아 예전 같은 정겨운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온라인 독서토론을 시작하면서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마치 한 지붕 아래에 있는 것처럼 가까워졌다. 4년 동안 독서토론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이들 3대 가족은 그 안에서 어떤 변화를 느꼈을까? 책의 공동 저자인 시아버지 최병일 씨와 며느리 김예원 씨에게 들어본다.

3대가 모여 매달 독서토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매우 신선합니다.

시아버지: 저는 은퇴 후 제2의 인생으로 현재 숭례문학당의 강사가 되었어요. 전국을 무대로 독서토론과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요. 학생들과 독서토론을 하면서 참 좋다고 느꼈어요. 친한 사람끼리도 속마음을 다 나누기는 어려운데, 책이 있으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과도 가능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가족과도 해보고 싶었어요. 당시 며느리와 아들이 베이징에 살았고, 결혼한 딸도 멀리 떨어져 사니까 모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서 토론은 꿈도 꾸지 못했지요. 그래도 제가 독서토론이 너무 재미있다고 자꾸 자랑을 했더니, 며느리가 “우리도 한번 해볼 수 있을까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온라인으로 가족 독서토론을 처음 시작했어요.

가족끼리 독서토론을 할 때 유의할 점이 있을까요?

시아버지: 나이 먹은 사람들은 상대방을 도와준답시고 자꾸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하며 자기 생각을 강요해요. 그러나 ‘상대방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면 내 생각을 주입하지 않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돼요. 경청하다 보면 살아온 연륜에서 도움이 될 지혜가 나오지요. 그것이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이에요.

며느리: 누군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때 “공감이 안 된다.” 혹은 “저건 틀렸어.” 하는 판단이 나오면 토론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져요. “이런 경험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요.” 하면서 공감을 해줄 때 그 사람이 받는 기쁨이 굉장히 커집니다. 그래서 독서토론에서는 독서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독서는 하나의 매개체일 뿐이고, 사실 *비경쟁 토론을 하는 모임을 통해서 가족이 서로 소통한다는 것이 중요해요.

* 비경쟁 독서 토론: 서로 대립적인 의견을 주고받으며 상대를 설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토론과 달리, ‘경청’과 ‘공감’을 최우선으로 한다. 누군가의 의견에 반대나 반박을 하지 않고, 경청하고 공감함으로써 환대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다.

최병일 씨는 독서토론 외에 글쓰기에 관해서도 화상으로 강연하고 가르친다.
최병일 씨는 독서토론 외에 글쓰기에 관해서도 화상으로 강연하고 가르친다.

가족의 소통이 왜 중요하다고 보십니까?

시아버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족이잖아요. 남은 안 볼 수 있어도, 가족은 끊을 수 없어요. 우리의 가장 좋은 관계는 가족 안에서 결실이 돼야 해요. 가족은 안 보면 보고 싶고 또 만나면 반가워야 사회에 나가서도 일을 하는 데 힘이 돼요. 내가 가정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없으면 밖에서 활동하는 데도 힘이 안 나요. 가정은 휴식처가 됨과 동시에 에너지의 충전소도 되어야 하는데 소통을 하지 않으면 충전이 되지 않아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해야 충전이 되지요. 사회생활에서 상처를 받고 고민이 많아도 집에 와서 소통을 하면서 공감을 얻고 격려를 받으면 다 풀려요. 그런데 자꾸 과거 이야기나 내 이야기만 해서는 싸움이 되고 충전이 안 돼요. 공통의 과제가 있어서 주거니 받거니 해야 되지요. 공통의 과제는 여행도, 책도, 영화도 될 수 있어요. 그런 도구를 잘 살려서 서로가 응원하고 사랑하고 마음을 교류하는 장소가 가정이에요. 소통이 중요하지만 요즘 가정마다 불통이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요.

공감되는 바가 큽니다. 그런데 책 읽기를 싫어하면 독서토론이 부담스럽겠어요.

시아버지: 우리 인류가 문자를 만든 건 8천 년 전이고, 종이와 인쇄 기술이 발명되어 책이 나온 건 5백 년 정도 됐다고 해요. 인간의 뇌엔 책을 읽는 습관이 오래전부터 없었지요. 결국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 훈련을 받아야만 가능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책을 안 읽는다고 ‘왜 책을 안 읽어?’ 할 게 아니라, ‘기회를 못 만났구나. 훈련이 안 돼 있구나.’라며 이해가 필요해요. 또 “책을 다 읽고 와라.”가 아니라, “책을 안 읽고도 이 자리에 참석한 용기가 대단하다.”면서 환영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세요. 토론을 구경만 하고 있어도 그 책이 궁금해지거든요. 읽는 맛을 알면 재미가 있고, 내게 유익하다는 것을 느끼면 나중에는 말려도 읽어요. 그 단계에 올 때까지 절대로 상대방을 구박하지 말고 참여에 의의를 두어야 해요. 책이라면 어려운 것, 졸리는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도 쉽고 재미있는 책을 읽고 토론하다 보면 나중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바뀌지요.

책에 어떤 즐거움이 있는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들려주세요. 

며느리: 저도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조용히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그런데 그런 시간을 가질수록 내면을 풍부하게 해주는 기쁨을 맛보기 시작했어요. 어려운 고전 문학일 필요도 없어요. 단순한 그림책, 작은 시집 같은 얇은 책도 좋아요. 나에게 와 닿는 감동이 있다면 조금씩 읽어도 나의 내면에 뭔가를 채워줄 수 있어요. 이런 기쁨을 한번 맛보니까, ‘다른 책을 읽을 때도 그럴까?’ 하는 호기심이 생겨서 계속 읽게 되더라고요. 학생들도 입시공부가 바쁘겠지만, 내면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 읽기에 도전해보면 좋겠습니다. 

요즘 전자책도 많이 나오는데 종이책과 차이가 있을까요?

시아버지: 뇌 과학자들에 의하면, 영상을 많이 본 사람의 뇌를 MRI로 찍어보면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엽만 가동을 한다고 해요. 전자책도 모니터를 통해 보는 것이기에 영상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종이책을 많이 본 사람은 우리 뇌에서 사고하고 판단하며 또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역할을 하는 전두엽이 활성화되어 있어요. 옛날에는 책을 읽으면 그냥 좋다 했는데, 지금은 과학적으로 증명해낼 수 있지요. 책은 우리 인간의 사고력을 깊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도구예요. 그래서 종이로 된 책을 읽으면 좋아요.

토론하면 같은 책을 읽어도 깊이와 맛이 다를 것 같습니다.

며느리: 토론을 하다 보면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지 않고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져요. 상대방의 의견이 듣고 싶어서 이야기를 하게 되거든요. 똑같은 책을 읽어도 나와 상대방이 느낀 것과 감동받은 지점이 다 달라요.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토론을 통해 상대방의 것을 알고 배우게 되면서 생각의 폭이 굉장히 넓어집니다.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은 후, 산성도 둘러보고 토론을 했다.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은 후, 산성도 둘러보고 토론을 했다.

며느리: 토론을 하고 난 후에도 저는 남편과 그 책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 간 소통의 기회가 늘었어요. 저와 남편의 성향은 굉장히 달라요. 사고방식, 말하고 표현하는 방법도 달라서 이해가 안 갈 때가 많더라고요. 그런데 토론을 하면서 서로의 다름에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요. 상대방 성격은 내가 절대 바꿀 수 없고, 마찬가지로 누군가도 나를 바꾸려 들면 저항감부터 생기잖아요. 하지만 서로의 성격을 존중해주니까 나와 다른 주변 사람들도 이해해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게 되고, 서로 부딪히더라도 슬기롭게 문제를 해결해가는 효과를 볼 수 있어요. 독서 토론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전국을 무대로 독서토론을 하시는 시아버님과 함께 활동하시는데 어떠세요?

며느리: 요즘 아버님과 같이 일하는데 곁에서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대부분은 ‘이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하며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잖아요. 내가 가장 중요하고, 내가 잘되는 것을 목표로 잡아요. 그런데 아버님은 누군가를 대할 때 ‘저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까?’ 고민하시면서 상대의 삶을 빛나게 해줄 방법들을 생각하세요. 많은 분들이 아버님께 “강사님을 만나 인생이 바뀌었어요!” 하며 고마움을 표현하시는 걸 자주 봐요.

독서토론을 하면서 생긴 꿈이 있나요?

시아버지: 세계적인 명문가들을 보면 부모가 자식을 교육하는 것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를 교육한 경우가 많아요. 부모는 아이들을 키울 때 뭐가 중요한지 잘 몰라요. 돈 버느라고 정신도 없고요.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자녀를 키우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알고 있고, 인생을 살아보니 어떤 점이 아이 인성에 정말 중요한지 알거든요. 그것을 전수해 주려면 3대가 같이 살아야 하는데 지금은 다 핵가족이에요. 독서토론만이라도 3대가 함께 한다면 지혜를 전수해 줄 수 있지요. 저는 우리 집에 책 읽고 토론하는 문화를 정착시켜 대물림해 주고 싶습니다.

누구든 살아가면서 즐거운 순간도 있지만, 힘들거나 근심스러운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보통 이런 것들을 마음에 묵혀두기도 하고, “그런데 어쩌겠어.” 하며 회의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기도 한다. 불편한 내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은 것이다. 하지만 최병일 씨와 김예원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리 못하는 복잡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돌파구를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종류든 재미있는 책을 읽고 이야기해보기, 바로 그것이다! 독서토론을 하면 일부러 말하기가 어색한 것들도 자연스럽게 토론의 과정에서 꺼내놓을 수 있다. 또 누군가 내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내가 지닌 아픔과 상처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삶의 만능열쇠를 거머쥔 듯, 가족에게 자신 있게 말해보자. “우리 한번 독서토론해 볼까?”

한 지붕 북클럽

저자 최병일, 김예원  출판 북바이북  출간 2022.3.28

가족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했던 저자들이 ‘가족 독서토론’이라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저자의 가족이 독서토론을 시작한 이유, 토론 이후의 변화, 가족 독서토론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과 노하우, 실제 사례 등을 충실히 담았다. 4년 넘게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가족 독서토론을 이어온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서로 다른 입장과 위치에서 경험한 내용이 담겨 있기에 다양한 시각에서 가족 독서토론을 접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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