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까지 대가족을 이루며 다 같이 살았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제외하고 말이다. 6살 때까지, 나는 아버지는 미국에서 돈을 벌고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누가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라고 물어보면, “미국에 계세요.”라고 답했다.

어느 날이었다.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들어왔는데, 온 가족이 모여 “언제까지 효상이한테 아버지가 미국에 가 있다고 할거냐?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이야기해줘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나를 보러 오지 않는 아버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미국에 계시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돌아가셨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되지 않아 고모가 어디에 같이 가자며 내 손을 잡으셨다. 동사무소에 어머니가 오셨다고 했다. 동사무소에 다달았을 쯤, 고모는 발걸음을 멈췄다. 한참을 밖에 서서 어머니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어머니가 보고 싶은 마음에 유리창 너머를 계속 들여다 보았고, 그러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휙 돌리며 나를 못 본 척했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와 한참을 울었다. 마음이 저릿하니, 많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그 후로 더 이상 우릴 찾아오지 않으셨다.

초등학교 입학 후로는 항상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조별활동을 하려고 친구 집을 가면, 친구의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고 내 친구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물어보셨다. 그런 장면을 볼 때면 치기어린 질투와 시샘이 올라왔다. 학교 운동회 날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할 때, 준비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선생님께 혼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갑자기 비가 쏟아져도 우산을 가져다 줄 사람이 없을 때 등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외롭고, 부러운 것들이 많았다. 시끌벅적한 대가족과 살지만 나는 그 사이에서 늘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채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됐다.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줄어들기 보단 더 커져만 갔다. 그 즈음에, 어머니가 주유소를 하는 분과 재혼을 하시고, 그 분의 자녀 둘을 키운다는 이야기를 고모에게 전해 들었다. 남의 자식은 키우면서 자신이 낳은 자식은 친가에 맡기고 떠난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한부모 가정도 많은데, 나와 남동생을 버릴 땐 언제고...’ 하는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그리곤 절대 어머니를 만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뒤로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고모가 내게 물었다. 어머니한테 연락이 왔는데, 만나보지 않겠냐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제 와서 무슨...’ 하며 만나지 않겠다고 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던 나는 서른 살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의 자리가 지금껏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그제서야 처음으로 ‘아버지 없이, 어머니 혼자 우리 둘을 키우려는 게 막막했겠다.’ 하며 엄마의 심정이 조금은 헤아려졌다. 그럼에도 어릴 적 상처는 쉽사리 아물어지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투머로우 잡지에 실린 글 한편을 읽었다. ‘인생의 방향을 아는 새, 육분이의 사랑’이었다. 이 책에는 오목눈이 새 ‘육분이’와 뻐꾸기 ‘앵두’가 나온다. 육분이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총 12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새이다. 어느 날 육분이의 둥지에 한 뻐꾸기가 날아와 알을 낳고 간다. 육분이는 뻐꾸기 알이 자기 알인 줄 알고 온 정성을 다해 부화시키고, 자신보다 큰 뻐꾸기 새끼에게 벌레를 잡아 먹이고, 누룩 뱀이 둥지를 습격할 때도 온 몸을 던져 뻐꾸기를 지켜낸다. 하지만 그렇게 기른 ‘앵두’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난다. 앵두 생각에 육분이는 그리움으로, 원망으로 가슴이 미어진다.

마침내 왜 자신을 떠났는지, 앵두를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로 결심한다. 육분이는 앵두를 만나기 위해 1만 9천 킬로미터, 100일하고도 7일을 비행하며 수많은 일을 겪는다. 그 여행 길에 육분이는 ‘뻐꾸기가 알을 낳기 위해 이 먼 길을 날아왔다.’는 사실에 놀란다. 힘들게 날아와서 남의 둥지에 알을 낳지만, 낳은 열두 개의 알 중, 두 개만이 살아 남아 다시 아프리카로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육분이는 말한다. “앵두야, 다른 오목눈이 둥지로 가지 말고 꼭 엄마 둥지로 날아와. 엄마가 네가 낳은 알을 품어 줄 테니깐.” 글을 읽는 내내 어머니 생각이 났다.

육분이가 앵두를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로 한 것처럼, 나도 어머니를 만나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어머니를 만나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렸다.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살았던 어머니, 24살의 나이에 혼자가 된 어머니, 아이 둘을 어떻게 키워야할지 불안했던 어머니....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야, 어머니의 선택을 조금 이해했다.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어머니와 연락하며 지낸다. 사는 곳이 멀어 자주 왕래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 아끼는 마음을 전하며 살고 있다. 어렸을 적, 그렇게 채우고 싶어도 채워지지 않아 허했던 마음 한쪽 구석이 어느새 꽉 채워졌다. 나의 어머니, 나의 남편, 나의 가족들과 나누는 진심이 조금 더 밀도 있는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글 정효상

정효상 씨에겐 두 아들이 있다. 두 아들을 기르면서 가장 큰 힘이 되는 사람은 남편이다. 남편과 함께 아들들을 바라보며 행복해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잘 키울지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기도 한다. 현재는 남편과 든든한 정신적 지지자인 어머니와 연락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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