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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롭던 나를 부드럽게 만들다

기사승인 2022.06.07  08: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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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진 씨가 이번 호의 표지 주인공이 된 데에는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따스함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얼굴이 다 보이지 않았으나, 정지된 화면 안에서 아이들과 나누는 익살스럽고 사랑스러운 표정에서 행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혜진 씨의 찰랑이는 머릿결이 신기한 아이들은 그녀의 머리를 만지고, 만지고, 또 만지며 “한국 갈 때 꼭 이 머리카락 주고 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에스와티니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돌아온 그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에스와티니를 다녀오셨다고 하는데 생소한 나라입니다. 어떻게 가게 되었나요?

윤혜진 (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진주 보건대학교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혜진 씨는 간호사를 꿈꾼다. 아픈 아이들을 돌보며, 행복하게 자라나는 걸 보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에스와티니로 1년 동안 해외 봉사를 다녀오며 간호사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을 배웠다고 한다.

경상도 방언으로 ‘하고재비’란 말이 있어요.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제 별명이 ‘하고재비’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뭐든지 ‘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거든요. 해외봉사 활동 역시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많은 곳 중에서도 특히 아프리카를 가고 싶었는데, 제가 아토피가 심하다 보니 흙먼지가 심한 그곳에 가는 게 걱정되더라고요. 그런데 ‘에스와티니’라는 나라를 다녀온 분 중에 ‘아토피가 나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초원지대라서 흙먼지가 적고, 나무가 많아서 공기도 좋다고 하기에, ‘바로 이곳이다!’ 싶어서 떠났습니다.

실제로 가보니 어땠나요?

에스와티니의 자연 경관은 디즈니 영화에 나올 정도로 환상적이에요. 나무가 얼마나 빼곡한지 직접 보지 않으면 상상 못할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워요. 초원에 소, 임팔라 등 야생동물들이 눈앞에서 뛰어다니는데 굉장히 신기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현지 사람들도 좋았어요. ‘순수하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지만 정확하게 와 닿지 않았는데, 에스와티니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순수하다’가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어떤 대화를 나누든지, 편견과 추측 없이 그대로 흡수하고 또 자기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순수의 원형이죠.

저는 그들에게서 타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배웠어요. 그리고 일 년 사이에 저도 아토피가 다 나아서 한국에 돌아왔어요. 왜, 어떻게 나았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공기가 깨끗하고,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라고 추측을 해봐요.

아름다운 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지내며 아토피까지 치료됐다니, 무척 행복했을 거 같아요.

네, 에스와티니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물론 행복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지만요. 제가 ‘하고재비’라고 했잖아요.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어렸을 때부터 이런저런 학원도 다니고, 운동도 다양하게 배웠어요. 해본 게 많고 뭐든 곧잘 하다 보니, 제 스스로 “나는 조금만 해도 잘한다.”는 생각을 키워갔던 거 같아요.

저를 포함해서 8명의 단원이 에스와티니로 해외봉사를 떠났어요. 십년지기 친구 한 명도 같이 갔던 터라, 일 년을 즐겁게만 보낼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는 조금만 해도 잘한다.”는 생각 때문에 언제나 문제가 생겼어요.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에스와티니의 자연경관에 넋을 놓곤 했다. 빼곡히 심어져 있는 나무, 호수, 붉은 토양의 조화는 어디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어떤 문제가 있었나요?

제가 잘한다고 생각하니까 같이 간 친구들의 의견을 무시하기 일쑤였어요. 제 생각과 다르면 답답해서 짜증도 냈고요. 처음엔 친구들이 다른 의견도 내면서 조율해 보려고 했지만, 제가 워낙 완강한 자세를 취하자 포기해버리더라고요.

그리고 8명의 봉사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오빠가 단장을 맡았는데, 제가 보기엔 23살에 군대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단장을 하는 게 탐탁지 않았어요.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고, 매번 지각을 하고요. ‘딱 질색인 저런 사람의 말을 내가 왜 들어야 하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니까, 오빠가 시키는 일을 안 하기도 하고, 점점 상대를 무시하는 일이 생겨 자주 싸웠죠.

그런데 에스와티니 해외봉사 단원들을 관리해주시는 지부장님이 어느 날 저를 부르시더니, ‘어떻게 지내고 있니? 너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던데….’라고 하셨어요. 처음엔 ‘나 때문이라고?’ 억울한 심정이었지만, 친구들과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그걸 다 들으신 지부장님께선 “혜진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잘한다고 여겨서 그래.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아. 너보다 장점이 있을 수도 있고, 네가 배워야 할 부분도 있어. 그리고 이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려면 잘해야 하는 게 아니야.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야 너도 행복해질 수 있어.”

그 이야기를 처음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어요. 제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힘들다고 하니까, 내 모습은 어떤지, 내가 그렇게 무시하던 오빠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봐야겠다 싶더라고요.

에스와티니 전통 집 앞에서 전통 옷을 입고 한 컷.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말이, 자신의 모습과 타인의 모습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긴 쉽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엔 빨리 바뀐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내 모습을 알고 싶었어요. 그런데 오빠의 모습을 살펴보고 이내 부끄러워졌어요. 단장을 맡은 오빠는 비가 오는 날에도 밖에 나가서 우리가 사는 건물 주변을 청소하며 하루를 시작했어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잠긴 문을 열고, 밤이 되면 건물을 돌면서 위험한 곳은 없는지 점검하고 문을 잠갔어요. 다음 날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정리해서 알려줬고요. 저는 오빠가 행동이 느려서 지각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 일들을 묵묵히 하느라 그랬던 거였어요. 제게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행동들이었죠. 그냥 살피기만 했는데도 배울 점들이 많았어요. 저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불만만 내뱉고 있었죠.

그리고 적나라하게 제 모습을 볼 수 있는 일도 있었어요. 우리 센터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플라스틱 박스를 가득 채운 빵이 배달돼요. 빵이 도착하면 하나씩 비닐에 담아 정리하고, 박스에 떨어진 빵가루를 정리하는데요. 빵가루를 치우는 게 너무 귀찮아서 아무도 모르게 덮어뒀어요. 그런데 몇 시간 뒤에 지부장 사모님한테 딱 걸렸어요. “누가 이렇게 뒀어?”라고 물어보시자마자 모두가 저를 쳐다보는데, 진짜 숨고 싶더라고요. “네가 편한 대로 일하기 시작하면 이기적일 수밖에 없어. 닦아 놓으면 누군가가 빵을 다시 담을 때도 쉽고 벌레가 생기는 것도 막을 수 있는데, 네가 귀찮다는 이유로 이렇게 하면 어떡하니?”라며 혼내셨어요. 사실 잘못이 드러나 혼난 것은 한 번이지만, 저는 많은 일들을 내가 편한 방식대로 해왔었거든요. 친구를 기다려줄 수 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혼자 가버리고, 같이 짐을 들고 와야 하는데 제가 가져간 것만 달랑 가져오고요. 혼난 뒤 일주일 동안 이기적이었던 제 모습을 하나씩 찾아봤더니 얼마나 나밖에 모르고 살아왔는지 대번에 알겠더라고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난 후에 뭔가 달라졌겠네요.

저는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 아닌가?’라고 늘 생각했어요. 힘든 일이 생기면 나는 괜찮은 사람인데, 저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탓하기 바빴어요.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난 뒤로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요. 나 때문에 상처받았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모습을 돌아보고, 나서길 좋아하는 제가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 배우고, 따르게 되었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행복해지더라고요. 잦은 다툼과 감정 갈등으로 늘 삐죽삐죽 예민해져 있었는데 그 후로는 친구들과 함께 웃고, 서로를 챙기며 지냈어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생의 교훈을 그곳에서 배웠네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배운 것들을 잘 활용하고 있나요?

가장 큰 변화는 엄마와의 관계예요. 제가 중학생 때는 운동을 하느라, 고등학생 때는 기숙사 생활을 한다고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어요. 대학생이 돼서야 같이 살게 됐는데,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선지 같이 사는 순간부터 수시로 부딪혔어요. 그럴 때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상처받아 입을 꾹 닫았어요.

그런데 에스와티니를 다녀와서 엄마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가족이니까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어린 시절, 꿈, 성격, 좋아하는 것 등 제대로 아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엄마와 제일 친하신 친구분을 찾아갔어요. 엄마의 어린 시절과 살아온 환경, 제 나이 때의 엄마를 만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다 말씀드릴 순 없지만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오셨더라고요. 항상 엄마에게 들었던 ‘왜 나를 공감해주지 못할까?’ 했던 의문들이 그날 다 사라졌어요. 엄마로서는 최선을 다해 저를 품어주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그 후로 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곧잘 표현하면서 지내요.

저는 항상 문제가 생기면 ‘맞다, 틀리다’를 중점으로 해결하려고 했었죠. 하지만 서로가 맞다는 게 다르면 싸움은 끝나지 않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살아왔어요. 에스와티니에서 싸움을 멈추고, 그 사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배웠을 뿐인데 많은 부분이 달라졌어요. 상대방을 이해하는 걸 넘어서 저한테 없는 점들을 상대방에게서 발견하고 배우다 보니, 진심으로 그 사람을 존중하게 되더라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혜진 씨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작은 손으로 혜진 씨의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쓰다듬고 있는 아이들, 그런 손길이 거추장스럽지 않은 듯 가만히 앉아서 조용히 웃고 있는 그녀였다.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는 긴 단절의 시간을 보냈다. 온라인 메신저와 화상회의는 늘 열려 있었을지 몰라도, 서로 간의 온기를 느낄 길은 막혀 있었다. 이번 기회에 혜진 씨의 사진처럼 서로의 다름을 궁금해하며 다가가 보면 어떨까? 서로를 향한 애정이 손을 타고 전해지면, 어느새 단단하게 굳어 있던 마음이 녹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에스와티니에서 배운 것처럼 말이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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