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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와서 인생을, 세상을 배웁니다

기사승인 2022.07.13  10: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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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표지 촬영은 현지 시각 밤 9시에 시작됐다. 대낮처럼 훤한 북유럽의 백야 덕분이었다. 6월이 되면 핀란드에선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백야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핀란드에는 밤새 북유럽의 정취를 즐기려는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김예선 씨는 ‘백야 속에서도 숙면할 수 있는 법’을 고민한다. 자신을 ‘핀란드에서 즐겁게 생존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그는 여행객이 아닌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유학하러 왔던 핀란드에서 넓고 깊은 인생의 맛을 느껴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언어도 충분히 배웠으니 한국으로 돌아가 취직하면 되지 않냐’는 주변의 성화에도, 그가 핀란드에서의 삶을 고집하는 이유를 한번 들어보자.

김예선
7년 6개월째 핀란드에 거주 중이다. 유학생으로 시작해 이젠 어엿한 직장인으로, 핀란드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완벽한 삶은 없기에 때론 실패도, 후회도 하겠지만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더 넓은 세계를 배워가겠다’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핀란드 랜드마크인 헬싱키 대성당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핀란드에서 얼마나 지내고 있나요?

7년 하고 6개월 되었어요. 저는 검정고시로 조기 졸업을 하고 만 17살에 핀란드에 도착했어요. 삼촌이 핀란드에 계셔서 유학 갈 결심을 좀 더 빨리할 수 있었어요. 여기에 와서 공부도 하고 현지인들과 어울리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고, 대학 졸업 후 벌써 직장인이 되었네요.(웃음)

처음 마주했던 핀란드와 지금의 핀란드는 어떻게 다른가요?

제가 핀란드에 도착했던 때가 겨울로, 날씨가 안 좋았어요. 지금은 ‘백야’지만 그때는 밤이 계속되는 ‘극야’였거든요. 사방이 어두컴컴하고 쌀쌀했어요. 멋진 북유럽풍 거리를 거닐 모습만 상상했는데, 전혀 다른 분위기라 크게 실망했지요. 날씨뿐만 아니라 유학생의 삶도 제 기대와 달랐어요.

처음으로 타향살이가 어떤 건지 배우면서 방황도 많이 했어요. 외로움도 크게 느꼈고, 언어도 도통 늘지 않았고, 사람들도 잘 사귀질 못했죠. ‘내가 여기 온 게 맞는 선택일까? 뭘 할 수 있지?’ 매일 그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핀란드가 한국보다 편하게 느껴지는 날이 많고, 이곳에 살 수 있어서 감사해요.

그렇게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요?

학문적인 지식만 아니라 삶을 사는 법을 이곳에서 배웠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핀란드에 와서 제가 처음 배운 것이 ‘나는 어떤 사람인가?’였어요. 유학길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자를 발급 받으러 독일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유럽에서는 만 18세 이상인 성인만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있더군요. 그 외에도 제가 미성년자라서 생기는 제약이나 문제들이 많았어요. 그때 부모님, 친척 어른을 비롯해 독일에 사는 지인까지 총동원해 그 일을 도와주셨죠. 그 와중에 저는 ‘잘 안되네. 안 되면 한국 다시 가면 되지 뭐’ 하고 가볍게 생각했어요. 다행히 어른들의 도움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비자를 얻어 핀란드로 돌아갔어요.

하루는 비자와 관련해서 삼촌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예선아, 너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다면서?”라고 물으셨어요. 저는 깜짝 놀라서 그게 아니라고 열심히 해명했어요. 그러면 “아, 그랬구나. 내가 오해했네.”라고 하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삼촌께서 오히려 “예선아, 그 마음은 이기적인 마음이야. 이번에 너를 위해 마음을 써서 도와주신 분들이 정말 많은데 네 마음에 그분들의 마음은 없으니 ‘그냥 안 되면 가버리지’ 하고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닐까?”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생각지 못한 답이었지만, 그 말이 전혀 섭섭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진짜 그렇네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죠. 사실 그때까진 제가 ‘이기적’이라는 단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돌아보니, 내가 불편하고 싫은 것만 커서 저를 향한 마음은 어떤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더라고요. 그 일을 계기로 이렇게 철없는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고 응원해주셨던 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한국에서 온 저 어린 학생이 이곳에서 잘 적응하기를…’ 하며 저를 지켜보셨던 마음을요.

그 응원 덕분인지 그때부터 핀란드 삶에 잘 적응해갔어요. 또 NGO 단체를 운영하시는 삼촌을 따라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원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직접 경험할 기회도 얻었어요.

1. 헬싱키 근교 도시인 반타Vantaa에 있는 식당에서 인턴십을 했다.
2. 윷놀이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모습. 꾸준히 NGO 단체 활동을 해왔다.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즐겁다.
3. 자전거를 타고 골목골목을 누비며 우편물들을 전한다.

거기서 어떤 봉사활동을 했나요?

핀란드는 행복지수가 1위인 나라지만, 가장 내성적인 사람들이 사는 나라로 불려요. 또 인구밀도가 적어서 홀로 고립되기 쉬운 환경이죠. 그래서 청소년,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특히, 한국과 핀란드의 문화 교류 활동도 활발히 하고요. 제가 배정된 팀은 행사 참가자분들과 봉사자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팀이었어요. 처음에는 ‘왜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팀에 있어야 해?’ 하며 불만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 팀에서 보냈던 시간이 제 마음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어떤 일이든 당연하게 되는 일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공연을 보러 가거나 식당에 가도 결과물이 만들어지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셨을 분들을 떠올리곤 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식사지원팀에서 일하는 게 즐겁게 느껴졌고, 요리를 진지하게 배울 만큼 애정이 생겼죠. 그리고 어떤 일이든 가치 있게, 묵묵하게 해냈던 경험은 지금 직장에서 일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지금 핀란드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현재 프리랜서 유치원 교사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핀란드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일 모두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우체국에서 일한 지는 3개월 정도 되었는데요. 업무가 7시부터 시작되는데 오전에는 사무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우편물을 배달합니다. 겨울이 되면 눈이 오는 날도 있고 비도 자주 오는 편인데요. 그럴 때면 배달 업무가 무척 힘들어요. 몸이 지칠 때면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해야 하나’ 부정적인 생각이 불쑥 올라오고요. 하지만 그대로 포기하기보단 ‘누군가는 이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이 일도 사회 전체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야. 내 위치에서 주어진 일들을 차분히 해나가자.’라고 결론을 내려요.

식사지원팀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제 마음을 후자로 기울도록 해주거든요. 그리고 직장 선배분들을 보면 자신이 맡은 업무에 큰 사명감을 갖고 일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런데 전혀 다른 성격의 두 가지 일을 함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우체국 일은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어요. 유치원 교사직은 오래전부터 관심 있던 분야였는데 최근에 운이 좋게 기회를 잡았죠. 처음 핀란드에 와서 대학에 입학할 때 사회 복지학을 배워보고 싶었는데, 시험 점수가 부족해서 비즈니스 학과에 진학했어요.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요리를 제대로 배워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잠시 요리학교에서 공부했는데, 경제적인 사정으로 그만두고 실전을 익힐 수 있는 식당에 취직했어요. 하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그 일자리마저 위태로워졌죠. 그때 지인의 추천으로 시작한 일이 우체국 일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아르바이트’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곳은 아르바이트나 정규직을 나누기보다 모두 같은 직장으로 여겨요. 생각해 보니,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제 마음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도 많았네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모든 일이 어렵고 슬픈 일로만 남지 않았어요. 제가 핀란드를, 제 삶을, 세상을 좀 더 넓고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어요. 무엇보다 그 과정을 통해 핀란드가 제게 무척 고마운 나라가 되었죠.

큰 도움을 받았나 보네요.

지금도 손에 꼽을 만큼 감사한 순간들이 있어요. 특히, 입학시험의 첫 번째 단계인 언어시험에서 낙방한 제게 학교에서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다’라는 연락을 주었던 그 순간은 잊을 수 없죠. 외국인인 나를 받아주고, 무료로 공부할 기회를 준 곳이 이곳 핀란드였어요.

또, 핀란드는 ‘경쟁하지 않는 교육법’으로 유명한 나라인데요. 경쟁 사회 구조로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의 분위기와 달리, 이곳은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줘요. 그 덕분에 저를 포장하거나 숨길 필요 없이 소탈하게 소통하며 살 수 있어서 좋아요. 종종 동료 유학생들이 ‘왜 한국에 돌아오지 않냐’고 물어볼 때가 있어요. 한국에 가면 익숙한 환경에서, 더 편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요. 고마워서 그런 것 같아요. 또, 지식을 배우고 문화를 배웠던 이곳에서 앞으로의 제 삶도 배우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앞으로 핀란드에서 어떤 삶을 기대하나요?

저는 좀 더 마음이 말랑말랑한,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한국에서는 내가 살던 동네, 매일 가는 학교, 같은 사람들 등 좁은 범주 안에서만 지내다가 처음 핀란드에 왔을 때 새롭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왜 이렇게 해야 하지?’ 하며 반문하기도 하고, ‘이걸 어떻게 해?’라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때론 이해되지 않아도 그 나라의 문화를 하나둘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제 영역이, 시야가 넓어지는 걸 느꼈어요. 이제는 핀란드의 기후나 문화에는 익숙해졌지만, 직장을 다니며 만나는 세계는 늘 새로워요. 인생에 부담스러운 일들은 늘 생기기 마련이고요. 그런데 그 또한 제 삶의 영역을 넓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전에 식당 일을 하면서는 사람들을 만나는 법을 배웠고, 우체국 일을 하면서는 핀란드의 구석구석 길을 익히고 있어요.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는 핀란드 교육, 복지 분야의 더 실질적인 부분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원하는 길이든 그렇지 않은 길이든 새로운 일을 계속 만나게 되겠죠? 그때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도 웃으며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때론 타인의 조언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그런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에게 끝으로 물었다. “더 넓은 세계를 알아야만 행복한 걸까요?” 그는 어릴 적 사소한 일에도 엄하게 혼을 내시던 부모님에 대해 말했다. “그때는 부모님이 답답하고, 미웠어요. 이해할 수 없었죠. 그런데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지금은 ‘엄마 아빠가 내게 마음의 자세를 가르쳐 주고 싶었던 거구나.’ 하고 이해가 돼요. 그 당시에 부모님이 보는 세계와 제가 보는 세계의 넓이나 크기가 달랐기에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그것처럼 제가 보는 세계가 좁아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요. 그 때문에 내 삶이 불행하다고 어렵다고 오해했던 것 같아요. 삶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져서 나를 향하고 있던 사랑을 느끼고,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면 더 행복해지는 길이 아닐까요?”

7년 동안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며 맛본 행복은 그를 핀란드 삶에 푹 빠지게 했다. 겨울의 쓸쓸한 극야도, 잠을 설치는 백야도, 타지살이의 어려움도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말이다.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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