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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까지 대가족을 이루며 다 같이 살았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제외하고 말이다. 6살 때까지, 나는 아버지는 미국에서 돈을 벌고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누가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라고 물어보면, “미국에 계세요.”라고 답했다.어느 날이었다.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들어왔는데, 온 가족이 모여 “언제까지 효상이한테 아버지가 미국에 가 있다고 할거냐?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이야기해줘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나를 보러 오지 않는 아버지가
일본에서 ‘쿠라시아くらしあ (당신의 삶에 행복을) 방문요양센터’ 를 운영하는 에모토 치히로 씨를 만났다.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은 그는 차가운 고독 속에서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노인들에게 ‘하루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 이 직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오늘 열렬히 기뻐할 수 있도록, 삶의 행복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곤 자신을 웃음 짓게 하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미래를 그리지 않던 이들이 내일을 약속할 때의 눈빛, 살고자 하는 의지를 내비치는 순간 등은 고단한 하루를 기쁨으로 바꾸었다.
인터넷 미디어가 발달한 이 시대에 프로 선수들의 팬 서비스는 운동 실력 이상으로 비중이 커지고 있다. 팬 서비스는 자신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성원해주는 이들에게 화답하는 말이나 행동을 일컫는데, 주로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거나 경기 후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어린이 팬들에게는 좋아하는 선수와 시선을 맞추고 사인을 받은 ‘그 일’이 평생의 추억이 되고, 꿈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나는 시간을 내 운동장에 찾아가서 축구 경기를 본 적은 없다. TV로 경기를 보며 응원하는 정도인 평범한 팬이다.
가족끼리 책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소개한 <한 지붕 북클럽>의 공동 저자 중 시아버지 최병일 씨. 그는 아들과 두 딸이 초등학생일 때부터 도서관에 데리고 다녔고, 일요일이면 함께 등산을 했다. 그러면서 세 자녀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와 선생님에 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애석하게도 자녀들이 결혼한 후에는 뿔뿔이 흩어져 살아 예전 같은 정겨운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온라인 독서토론을 시작하면서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마치 한 지붕 아래에 있는 것처럼 가까워졌다. 4년 동안 독서토론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
3년 전, 나와 남편은 평생 사랑할 것을 약속하며 부부가 되었다. 이후, 소중한 두 아이가 태어났고 그렇게 단란한 가정이 꾸려졌다. 우리는 종종 불협화음이 나는 초보 부부이자, 아직 서툰 것이 많은 초보 부모이다. 그래서 서로를 품어주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면서 가족의 의미를 배워가고 있다. 좌충우돌 우리 가족 성장기의 일부를 공유한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고 돌아와 우리 네 식구가 집에서 처음 만나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 네 명이 이렇게 가족이 되는구나…’라는 설렘으로 가슴이
‘마인드교육’은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 나라에서 먼저 관심을 보여 왔다.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밝게 변하면서 주변에 저절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미국 마인드교육의 진행상황이 궁금해, 마인드교육 지도자로 활동하는 케리 에스티 교감 선생님을 만났다. 뉴욕주 소재 공립 학교에서 교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십니다. 학생들을 직접 만나면서 몸소 느끼는 점들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2년 동안 우리 삶을 덮친 코로나 바이러스는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팬데믹 동안 그들은 고립된 상태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기치 않은 이유로 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