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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사의 슬픈 선택

기사승인 2021.05.21  19: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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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드레 지드 <좁은 문>

<좁은 문>은 19세기 프랑스 신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알리사’와 ‘제롬’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로,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게 되고 그럼에도 함께하지 못하는 과정을 제롬의 시점에서 묘사했다.

제롬은 열두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파리에서 어머니와 함께 산다.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란 제롬은 조숙했다. 그가 열네 살이던 해의 초여름, 제롬은 퐁괴즈마에 있는 삼촌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곳에서 세 명의 사촌 알리사, 쥘리에트, 로베르를 만나고, 제롬은 그 가운데 조용하고 진지한 알리사를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알리사에겐 마음에 아픔이 있었다. 엄마가 아빠 모르게 젊은 장교와 만나는 것을 알고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제롬은 슬픔과 괴로움으로 힘겨워하는 알리사를 보며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며칠 후 두 사람은 교회에서 다시 만나고, 그날 보티에 목사는 ‘좁은 문’에 관하여 설교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이 설교를 듣고 제롬은 알리사의 방문처럼 보이는 좁은 문으로 가기 위해 자신이 노력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또래 사내아이들과 달리 공부하면서 이기심을 버리고 경건하게 행동하며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삶, 그 삶을 모두 알리사에게 바침으로써 사랑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제롬의 어머니가 오랫동안 앓던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제롬은 알리사를 더 깊이 의지한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알리사 또한 제롬을 향한 사랑이 깊어가지만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서로를 대한다. 어느 날 제롬이 알리사에게 약혼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지만 알리사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며 거절한다. 그즈음 알리사의 엄마는 결국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좇아 도망친다. 알리사는 버림받은 아버지를 돌보며 장녀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산다.

ⓒVilhelm Hammershoi, Strandgade with Christians Kirke in the Background, 1908

사관학교에서 공부하던 제롬은 크리스마스에 퐁괴즈마에서 알리사를 다시 만난다. 그때 알리사의 동생 쥘리에트가 자신을 좋아하며, 알리사가 동생과 자신을 이어주려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쥘리에트는 그녀가 꿈꾸는 제롬과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골 농부와 충동적인 결혼을 해버린다. 그 일로 알리사는 충격을 받고, 한동안 제롬을 멀리한다.

시간이 흐르고, 쥘리에트는 평범하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 산다. 그즈음 제롬과 알리사는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그것은 제롬이 입대한 후에도 계속된다. 처음에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냈고, 두 사람은 만족스러워한다.

하지만 알리사의 편지에는 점점 그녀의 고뇌와 무기력함 등이 표현되고, 제롬은 걱정한다. 제롬이 제대한 뒤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제롬은 행복한 시간을 보낼 걸로 상상하지만 알리사는 그를 피한다. 약혼하자고 다시 청하는 제롬에게 “우리는 행복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신성을 위해 태어났어” 하며 거절한다. 제롬에게 “넌 지금 유령과 사랑에 빠져 있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때 제롬은 자신이 알리사에게 다다르기 위해 열심히 살고 바르게 살려고 했던 그동안의 노력에 환멸감을 느낀다. 그는 도망치듯 알리사를 떠나 공부에 몰두하려고 아테네 대학에 들어간다.

3년 후 제롬은 알리사가 그리워 찾아가고, 창백하고 야윈 알리사는 자신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며 작별 인사를 남긴다. 얼마 후, 제롬은 알리사가 요양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동생 쥘리에트를 통해 듣는다. 그리고 알리사가 제롬의 이름으로 봉인해둔 봉투가 그에게 도착한다. 봉투 안에는 알리사가 쓴 일기가 들어 있었다. 제롬은 일기를 읽으면서 알리사가 그토록 자신을 밀어냈던 이유를 알게 된다.

그로부터 10년 후 제롬은 쥘리에트를 만난다. 쥘리에트는 알리사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제롬을 보며 안타까워하지만, 제롬은 “내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해도 그 여자를 사랑하는 척할 수밖에 없을 거야”라고 말한다.

ⓒPeter Ilsted, Reading a Letter in an Interior, 1908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보면 마음 아프고, 어떻게 보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하다. 제롬과 알리사가 나눈 마지막 대화에서 제롬이 말한다.

“날 그렇게 사랑한다면서 왜 날 밀어내기만 하는 거야? 처음에는 쥘리에트의 결혼을 기다렸어. 네가 쥘리에트의 행복을 바란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애는 지금 행복하잖아. 그리고 한동안은 네가 아버지 곁에 머물고 싶어 한다고 믿었어. 하지만 이젠 우리 두 사람만 남았잖아.”

제롬의 이야기에 알리사가 대답한다.

“제롬, 우리가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서 사랑보다 더 훌륭한 것을 엿본 날부터 이미 늦어버린 거야.”

그를 밀어낼 수밖에 없는 알리사의 심정이다. 그리고 일기엔 이렇게 적었다.

“그에게 무슨 말을 한 거지.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그 앞에서는 항상 나의 미덕을 과장하는 걸까. 가슴에 가득 차 터져 나오려는 말은 한마디도 못했다.”

사랑하지만 다른 말을 하는 알리사, 후회하지만 다시 만나도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고뇌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나는 제롬 때문에 예뻐지기를 원했다. 완벽의 추구도 다 그를 위한 것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완벽은 그가 없음으로만 도달할 수 있다. 오, 주여, 이는 당신의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제 마음을 당황케 합니다.”

제롬이 알리사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같이, 알리사 또한 제롬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엄마처럼 부도덕한 여자가 되지 않고 성결한 여자가 되기 위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알리사는 자신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보다 숭고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여!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기에는 너무도 좁은 길입니다. 제롬만 생각하는 나의 마음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제롬을 사랑하고, 내면에서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알리사는 그 사이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그는 나에게 멈추어 있고,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 그가 미덕을 행하는 데 있어서 나는 그가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붙드는 우상이 되고 말았다. 주님, 말씀해 주옵소서! 그는 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Vilhelm Hammershoi, interior with Windsor chair, 1908

처음에는 알리사 자신이 좁은 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제롬이 자신의 삶에서 빠져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제롬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숭고한 좁은 문으로 가야 할 사람이라고 여기고, 그 일에 자신이 거침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랑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그 과정에서 알리사는 점점 야위어 갔고, 요양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알리사는 마지막까지 제롬을 사랑하고픈 자신의 원함과 숭고하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목적 사이에서 번민한다.

“나의 하나님, 제 마음을 온전히 당신께 바칠 수 있도록 제게 그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게만 해주시옵소서. 당신께 제 마음을 바칠것을 약속드립니다. 주여, 저의 비겁한 기도를 용서하옵소서. 제 입술에서 그의 이름을 떼어낼 수 없고, 제 마음이 고통도 잊을 수가 없나이다.

작가 앙드레 지드의 물음

<좁은 문>은 작가 앙드레 지드의 삶이 가장 많이 반영된 소설로 꼽힌다. 그는 영적 정결함과 금욕주의를 강조하는 집안에 태어나 성장기에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그래서일까, 알리사의 일기장에 적힌 섬세한 마음 표현들에는 지드가 겪은 아픔과 고통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이 소설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육신적인 쾌락을 좇는 알리사의 엄마, 성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알리사. 그리고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제롬이나 쥘리에트 등등. 소설 속 인물들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육체의 쾌락과 성스러움 사이의 어딘가에 서 있다. 육체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영혼의 만족만을 추구하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성스러운 삶을 추구하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서 그만두기도 한다. 지드는 이 소설을 통해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영혼의 기쁨과 인간적인 기쁨 중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성스러운 삶을 위해 인간의 기쁨을 포기하고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을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좁은 문

나도 학창 시절에나 젊은 날 여러 고전 소설들을 읽으면서, 깊지는 않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일지’ 고민한 적이 있다. 소설마다 등장하는 인간의 부조리와 부도덕 그리고 바르게 살려는 몸부림들을 보고, 나 자신에게도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면들이 있음을 보면서 바르게 산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음을 느꼈다. 나는 공부도 해야 하고 직장도 잡아야 했기에 알리사처럼 성스러운 삶을 추구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풀 수 없지만 풀고 싶은 문제처럼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답을 얻고 싶은 열망이 평소에는 느낄 수 없을 만큼 희미하게 자리 잡았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은지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바쁘게만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나는 내 영혼을 관통하는 빛을 만난다. 소설 <좁은 문>의 테마가 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라는 성경 구절에 나오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은 것이다.

나에게 그 길을 가르쳐준 분은 해박한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성경에는 성스러움에 이르는 길이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자신이 성스럽게 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죄를 짊어지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길이라고 했다. 첫 번째 길은 인간이 주체이며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선한 행위가 필요하고, 두 번째 길은 예수님이 주체이며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값 없이 주는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첫 번째 길을 가면 아무도 목적지에 이를 수 없지만, 두 번째 길을 가면 누구나 목적지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이따금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던, 예수님이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려 대라, 미워하면 살인한 것이고 음욕을 품으면 간음한 것이다’고 하며 온전한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다’고 하며 죄인의 친구가 되신 이유를 그때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나는 성스럽게 살 자신도 없었지만, 설령 내 노력으로 성스럽게 되더라도 그것이 예수님의 의도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문’이라고 표현했는데, 나사렛 예수는 사람들이 싫어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버린 ‘좁은 문’이었던 것이다.

서글프지만, 알리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성스러움에 이를 수 없는 문을 열고 들어가 애달픈 자기희생의 길을 계속 걸어야 했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에게나 어떤 사람에게 희생이, 헌신이, 열정이, 노력이, 진지함이 부족해서 문제라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걷고 있는 길 자체가 잘못되었을 때가 있다. 그 길을 버리고 다른 길로 들어서면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삶의 모든 순간순간들이 새롭게 해석된다. 알리사가 믿음으로 성스럽게 되는 길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기쁜 마음으로 제롬에게 그 길을 소개하고, 큰 은혜를 찬송하며 사랑하는 제롬과 거리낌 없이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 문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좁은 문이다.

글쓴이 심문자

도서관에서 북클럽 멘토링과 한국 마사회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특강을 하고 있으며, 예루살렘 라디오 ‘북적북적 북클럽’ 진행자이다. 독서지도사, 청소년상담사, 독서논술교사 등 책과 관련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좁은문>은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의 소설이다. 프랑스 신교도 집안에서 성장했던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짙은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1909년에 이 작품은 출간 이후 많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심문자 info@dailyt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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