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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연결이 대학생활을 좌우한다

기사승인 2021.06.11  09: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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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영어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영어는 직장에서도 필요하지만, 외국인과 소통은 삶의 반경을 넓혀주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뜨겁다.

기자는 10년 전에 미국으로 해외 봉사를 다녀왔다. 한 친구가 캐나다로 유학 가서 영어를 배우고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 부러워, 그와 비슷한 경험을 선택한 것이 해외 봉사였다. 미국에서 지내는 일 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 특별히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진 교육시스템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아울러 유학생들이 영어 때문에 겪는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에 대해 들을 수 있었고, 잘못된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힘 또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거나 가려고 준비한다. 그런데 유학을 가면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을 현지에서 만나게 된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 미리 알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알고 간다면 유학 생활을 알차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어려운 과정들을 지나 이제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는 유학생 조항주 씨를 만나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조항주
13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문화의 차이, 영어에 대한 장벽을 온몸으로 느끼며 영어를 배웠고, 작년 5월 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그는 대학원 준비를 하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 중이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언제 미국으로 유학을 갔으며, 유학 초기에 느꼈던 점들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열세 살에 미국에 와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작년 5월에 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를 졸업했습니다. 현재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족 품에서 큰 걱정 없이 지내던 제가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홀로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무엇보다 영어를 하지 못해 친구들, 선생님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학교에서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해명을 할 수 없어서 한동안 너무 답답하고 속상했습니다. 한국과 다른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영어는 저에게 마치 높은 담처럼 느껴졌습니다.

Q. 그 장벽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미국에서 공부하면 영어 실력이 바로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는 어땠습니까?

처음에는 미국인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을 꺼렸고, 대부분 한국인 유학생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당연히 영어 실력이 많이 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반 친구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어느 책을 읽고 그 책의 작가와 주인공을 비교하는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현지 친구들과 대화하며 같이해야 했습니다. 그들과 영어로 대화하고 교류해야 하는 것이 저에겐 부담이었지만, 한 번 두 번 부담을 넘을 때마다 제 영어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그때 제 영어 실력이 가장 많이 늘었던 것 같습니다.

Q. 언어의 장벽만큼 문화의 차이도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곳이나 좋은 문화도 있지만 나쁜 문화도 있지 않습니까. 제가 미국에서 지낼 때 공원 화장실에서 마약을 하는 학생들을 쉽게 보고, 아파트 복도에 대마초 냄새가 가득한 경우도 자주 접했습니다. 이런 문화는 유학생들에게 큰 문제를 미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약에 대한 인식이 한국과 미국이 다릅니다. 미국에서는 최근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15개 주에서 대마초가 합법화되었고, 다른 주에서도 합법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미국 친구들도 대부분 대마초를 피웠습니다. 유학생들은 대부분 혼자 지내기 때문에 집에서 간섭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약 살 돈이 없는 미국 학생들이 이런 상황을 악용해, 돈이 많은 유학생들과 친해진 뒤 그들의 집에서 마약을 하면서 마약을 권합니다. 그리고 유학생들의 돈으로 마약을 사게 합니다. 그렇게 마약에 빠진 유학생들은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졸업에 실패하게 됩니다.

유학 생활 중에 찾아오는 모든 어려움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혼자서는 이겨낼 수 없는 어려움이나 유혹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어떤 유혹은 이겼어도 더 큰 유혹이 찾아올 때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의 문화는 영화에서도 노래에서도 마음 가는 대로 살라고,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그렇게 살면서 유혹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유학 생활 중에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주변에 제가 믿을 수 있고 저를 도와주실 수 있는 분들이 많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스토니브룩 뉴욕 주립대는 미국의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 위치해 있다.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낸 학교로서, 세계 대학 평가에서 세계 Top 200위 대학으로 선정, 미국 내 70위 대학으로 선정된 학교이다.

Q. 자기를 믿으라고 하는 청소년 문화가 안타깝다는 말에는 공감이 갑니다. 유학 생활 중에 항주 씨가 믿고 따를 수 있는 분은 누구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편식이 심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종종 제가 싫어하는 반찬을 저에게 먹으라고 주셨습니다. 저는 특히 씀바귀나물을 싫어했는데 할아버지는 그것을 꼭꼭 씹어서 먹게 하셨습니다.

“맛있는 것만 먹으면 안 돼. 쓰고 맛없는 것도 먹을 줄 알아야 해. 지금은 네가 맛을 몰라서 이것을 싫어하지만, 맛을 알게 되면 좋아하게 될 거야.”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싫어하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게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살면 나태해지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없다고 하시며, 저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한 분의 외삼촌이 계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와 달리, 삼촌은 미국에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삼촌은 제가 공부를 잘했을 때나 못했을 때나, 부족할 때나 문제가 있을 때나 흔들림 없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저를 지탱해 주셨습니다. 삼촌은 저에게 공부를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삼촌을 믿고 따르는 것이 정말 쉬웠습니다. 삼촌을 통해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믿는 것은 나 자신을 절제하는 데 큰 힘이 됩니다.

뉴욕에는 종종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허리케인이 찾아오는데, 이때 잘 버티는 나무가 있는 반면 어떤 나무는 쓰러지고 만다. 차이가 무엇일까?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의 힘일 것이다. 뿌리가 약하면 거센 비바람 앞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다. 유학 생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비바람을 동반한 유혹이 수시로 찾아온다. 그때 조항주 씨에게는 단단한 뿌리가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가족이 그를 지탱했기에, 유혹에 넘어지지 않았다.

유혹을 넘었다고 해서 유학 생활을 잘 마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가 모국어인 현지인들과 경쟁하며 대학을 졸업해야 하는데, 영어가 잘 늘지 않았다는 그가 어떻게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는지 물으며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Q. 미국 등의 대학은 입학하는 것보다 졸업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대학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처음 학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을 때, 강사분이 “우리 대학을 4년 안에 졸업하는 학생은 40퍼센트밖에 되지 않고, 6년 안에 졸업하는 학생은 60퍼센트 정도입니다. 20퍼센트는 아예 졸업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진심 어린 태도로 대학 생활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첫째로 시간 관리를 잘해야 하고, 둘째로 교수님에게 이메일을 잘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농담처럼 들릴 수 있는 이야기인데, 사실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제 주위의 유학생 친구들이 항상 강조한 것이 ‘시간 관리’였습니다. 한 친구는 매일 시간표를 짜서 생활했습니다. 그 친구는 과제를 할 시간이 되면 꼭 과제를 했습니다. 피치 못할 일이 있는 경우에는 다른 시간을 줄여서 정해진 과제 시간을 채웠습니다. 똑똑한 학생이 대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잘 절제하는 학생이 잘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에게 이메일을 잘 쓰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교수님에게 이메일을 잘 쓴다는 것은, 교수님에게 항상 조언과 도움을 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대학의 교수님들은 학생들을 진정으로 도와주고 싶어 합니다. 제가 교수님을 찾아뵈면 항상 반갑게 맞아주고, 과제를 검토해 달라고 부탁드리면 꼼꼼하게 보신 뒤 수정할 사항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수님을 찾아뵙는 횟수가 많을수록 과제의 내용이 좋아질 뿐 아니라 수업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습니다. 교수님이 지도해 주신 과제이니 나쁜 점수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교수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뒤처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Q. 어느 곳에서나 꼭 지켜야 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있네요. 수업은 어땠습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을 꼽는다면 어떤 것인지요?

저는 역사학과를 졸업했는데 ‘2차 세계대전 시뮬레이션’이란 수업이 있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이탈리아‧일본‧중국의 주요 인물 35명을 학생들이 한 인물씩 맡아 자신이 그 인물이 되어 치열한 논쟁을 펼치는 수업이었습니다. 저는 그 수업에서 프랑스의 외무장관 조르주 보넷Georges Bonnet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조르주 보넷은 1938년에 열린 뮌헨 협정 때 큰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뮌헨 협정은,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게 하려고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요구를 들어준 협정입니다. 영국 수상 네빌 체임벌린, 프랑스 수상 에두아르 달라디에와 조르주 보넷 등이 대표로 참석해서 히틀러와 협정을 맺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당시 전쟁을 피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려면 히틀러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쉬운 길을 선택한 그들이 처음에는 성공한듯 했지만, 1939년에 독일이 약속을 어기고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그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윈스턴 처칠이 수상이 되어 영국을 이끌어 갑니다. 처칠은 다른 수상들과 달리 어렵고 힘든 길을 택합니다. 당시 독일은 영국과 전쟁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독일이 하는 전쟁에 관여하지 않으면 영국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처칠은 많은 동맹국들을 등질 수 없고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볼 수 없었기에 타협하지 않고 독일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몇 년 동안의 치열한 전쟁 끝에 영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역사의 현장은 제 마음에 어떤 사실을 새겨주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쉬운 것이나 좋아하는 것만 선택하지 말고 때로는 어렵고 부담스러운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가르침이 세계사 속에서도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처칠이 어려운 길을 택했을 때 승리와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저도 부담을 넘었을 때 대학 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유학 생활에서 배운 것들은, 학업뿐 아니라 삶에서도 필요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자주 유혹에 흔들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길 바라며,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한다. 그 다음에 어떤 결과가 올지 예측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렇기에 길을 알려주고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약한 나무를 붙들어주어 땅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듯이… 이 글이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길 바란다.

최지나 기자 41536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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