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순재

‘수많은 배우들의 대표적인 롤 모델이자 멘토’ ‘140편의 영화 외 수백 편의 드라마와 연극에 출연한 배우’ ‘다시 태어나도 배우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65년차 배우’ 87세 배우 이순재 씨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최근에도 연극 ‘리어왕’의 주인공 역을 맡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데, 그가 이토록 오랫동안 연기에 몰두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수 천 명의 청년들 앞에 그가 펼친 온라인 강연에서 그 답을 알렸다.  

2021 IYF 온라인 월드캠프에서 그는 ‘끊임없는 도전, 세계 최고를 만든다’는 주제로 참석자들에게 강연했고,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 본인 제공
2021 IYF 온라인 월드캠프에서 그는 ‘끊임없는 도전, 세계 최고를 만든다’는 주제로 참석자들에게 강연했고,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 본인 제공

반갑습니다. 이순재입니다. 이렇게 여러분과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코로나가 얼른 끝나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즐거울까요(웃음)? 우선, 제가 연기를 시작한 이유부터 말해보겠습니다.

연극이 좋아서, 예술에 대한 확신으로 시작한 길

제가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때는 6‧25전쟁의 여파가 짙게 남아 있던 시절로, 취업 시장이 활발하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판검사가 되거나 은행원이 되는 게 최고의 직종이었죠. 그때 배우는 아무도 환영해주지 않는 직업이었어요. 소위 ‘딴따라’라고 불리며 무시 받는 직업이었죠. 장가가기도 힘들었어요. 특히 제가 서울대 철학과에서 공부를 마치고 연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도 컸습니다.

대학 시절에 저는 좋은 영화를 많이 봤습니다.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영화와 프랑스의 누벨 바그 영화, 상업과 예술의 경계에 있던 미국 영화를 접하고 감탄했죠. 특히 로렌스 올리비에가 제작 감독 주연한 ‘햄릿’을 보면서 ‘저건 확실한 예술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보니 로렌스 올리비에는 연출가이자 배우이며, 영국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았단 말이죠. 예술가인 거예요.

그래서 그 양반 작품의 90%를 봤어요. 연기의 진수를 본 거죠. 그러고 나서 ‘이 정도 경지면 배우도 해볼 만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연극영화를 학문으로 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 맞는 동료들끼리 ‘우리라도 한번 해보자’ 하고 서울대 내에 연극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했어요. 그렇게 하다 연극에 깊이 빠지게 됐고, 군에서 제대한 후 결국 배우라는 길을 선택한 거예요.

그때는 연극으로 대박을 쳐봤자 배우에게 돌아오는 돈은 몇 푼 안 됐어요. 그래서 대선배들이라도 후배들에게 커피 한 잔 사주는 게 어려운 시절이었죠. 결혼한 사람들은 살림 살아야 하지 아이들 공부도 시켜야 하지, 그러다보니 사모님들이 다 부업을 했어요. 돈을 벌거나 신분을 높이려면 다른 분야로 전직해야 했지요.

저도 처음에는 마음 한편이 불안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 길이 좋았고, ‘이게 진짜 예술이다. 이런 거라면 배고프고 멸시를 당하더라도 해볼 만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시련을 만난 때도 있었지만 배우로 살면서 결혼도 했고, 한때 국회의원도 하고, 지금은 학생들도 가르치고 연극도 하고 있어요.

목적과 의지가 있다면 직업의 귀천을 뛰어넘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를 반대하시던 아버지도 제 굳은 결심을 들으시곤 이렇게 이야기하셨지요. “그래, 무엇이든지 일류가 되면 밥은 벌어먹고 살지 않겠냐?”라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이다

연기란 우리가 살아온 과정,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일부 유형들이 극화돼 가는 것입니다. 문학성이나 철학성이 깊은 셰익스피어나 안톤 체호프 작품의 경우에는 그 내용이 좀 더 깊고요. 배우의 역할은 그 작품의 본령을 전달하는 것인데요,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것이 전혀 달라집니다.

제가 종종 학생들을 만나 연기 수업을 합니다. 한 학기 동안 무대에 한 작품을 올려요. 그때 가장 중점을 두고 지도하는 것이 기본기입니다. 연기는 단면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깊이 들어갈 수 있으려면, 발전하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해요. 그래서 특별한 연출보다는 고전 원작을 주로 다루며, 화술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칩니다. 대사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게 기본이라는 거죠. 예를 들어 같은 말도 단음(짧은소리)으로 발음하느냐 장음(긴소리)으로 발음하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제가 연극 할 때는 사전을 펼쳐놓고 장음 단음을 일일이 찾아가며 연습했어요. 한마디 가지고 한 시간씩 연습했어요. 요즘은 연출가가 배우에게 언어에 대한 정확한 발성을 지적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그런 흐름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시절 이순재의 인생을 바꾼 영화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을 원작으로한 작품으로 로렌스 올리비에가 제작,감독,주연을 맡았다.
대학시절 이순재의 인생을 바꾼 영화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을 원작으로한 작품으로 로렌스 올리비에가 제작,감독,주연을 맡았다.

연기란 얼굴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닙니다. 발성부터 대사 암기, 인물 탐구와 상대 배역과의 호흡 등 작은 것 하나하나 모여서 표현되는 거예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배워야 해요. 연기는 끊임없이 반복하고 훈련하는 것이지요.

최근 제가 학생들과 워크숍을 하며 보고 느끼는 것들이 있습니다. 옛날에 한 달 걸려서 하던 작업을 요즘 젊은이들은 보름이면 해내요. 정말 대단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일이 빨리 또 쉽게 이루어지니까 정상에 올라간 사람들이 그 다음에 작품이 잘 뜨지 않으면 좌절하고 쉽게 포기한다는 겁니다. 연기 세계가 거기가 다라고 착각해서 그런 거예요.

배우의 길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작품 하나로 크게 떠서 인기와 명성을 얻고, 중심이 그곳으로 넘어가버리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당장에 돈을 많이 못벌고 인기가 조금 없을지라도 배우로서 역량을 가지고 기초부터 단단하게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치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저는 후자가 작품의 본령을 가장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빠른 성공으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머무르게 되면 연기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집니다. 반대로 자신이 부족하고 올라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배울 수밖에 없어요. 후자가 실력과 깊이가 월등할 수밖에 없으며, 그게 진짜 배우로 남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건 연기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무엇이든 쉽게 빠르게 하는 것도 좋지만, 어렵게 배우고 기본부터 제대로 할 때 깊이 그리고 멀리 갈 수 있는 거예요.

연기에 ‘완성’은 없기에, 또 도전이다

저는 1956년에 연극 ‘지평선 넘어’와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가’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65년간 연기활동을 하면서 연극, 영화, 드라마 세 가지 분야에서 다양한 작품을 했어요. 옛날에는 1년에 7편, 8편씩 막 찍었어요. 동시에 4편을 같이 찍은 적도 있었죠. 그렇게 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어요. 신혼 초일 때 집에서 자는 시간이 한 달에 일주일 혹은 5일 정도였죠.

제가 세 가지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TBC에서 최초 일일 연속극 주인공을 제가 했습니다. KBS에서는 최장수 일일연속극 ‘보통 사람들’에 출연했고요. 그리고 MBC에서는 ‘보고 또 보고’로 60%라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지요. 이외에도 이병훈 감독과 같이 했던 ‘허준’이나 ‘이산’ 같은 작품들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때 NG를 안 내려고 무척 노력했어요. 학식이 높은 왕이지만 아들을 죽인 왕인 영조를 연기할 때는 인물이 복잡한 만큼 공부를 정말 많이 했어요. 요즘에 TV를 보니 제가 출연한 드라마인 ‘목욕탕집 남자들’ ‘엄마가 뿔났다’ ‘거침없이 하이킥’과 같은 작품들을 재방송해주더라고요(웃음). 돌아보면 복이 많아서 좋은 작품들도 많이 만났어요.

저는 그 수많은 작품을 하면서 대상을 한 번도 못 받았어요(웃음).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었고, 인기가 있는 배우도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늘 도전해야 할 여지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의욕도 생기고 힘도 생긴 것 같아요. 그렇게 계속 연기를 하면서 연기라는 게 끝이 없고 완성도 없다는 걸 알았어요. 파고파고 들어가면 새로운 게 자꾸 나와요.

그래서 60년 넘게 배우로 살아왔지만 연기는 여전히 어려워요. 10월에 개막하는 ‘리어왕’이라는 작품이 정말 그래요. 문학성이 강한 작품인데, 보면 쉽지 않아요. 석 달쯤은 준비해야 해요. 그 시간 동안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작품이 끝난 이후에는 못했다고 자책하거나 박수 받았다고 우쭐하기보다 ‘내 역량이 지금 어느 정도다’ 하고 자기 반성을 해요. 그리고 그걸 보완하기 위해서 다음 작품을 하고 또 다음 작품을 하는 거예요.

내가 지금 어느 수준의 배우인가 그걸 모르면 바보가 돼요. 한 작품으로 뜰 수 있겠지만 계속 그것만 하다보면 거기서 멈추게 돼요. 본인도 그걸 잘하니 그것만 추구하는 거죠. 그러면 그대로 끝날 수가 있어요. 연구하지 않으면 안 돼요.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잠시 떴다가 사라지는 거예요. 아이디어를 계속 내고 고민할 때, 그때 진정한 배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살 때 운이 좋으면 인기도 붙고, 부수적으로 돈도 버는 거지요.

신구, 나문희, 김영옥, 강부자, 김혜자 등 지금까지 남아 있는 원로 배우들은 다 그런 배우들이에요. 대부분 화려한 시작이나 엄청난 인기를 누린 사람이 아니었어요. 중년 이후에도 조연이든 주연이든 꾸준히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도전하고 노력해서 사랑받는 스타들이지요.

1. 최고 시청률 60%를 기록한 MBC 드라마 보고 또 보고(1998) 2. ‘야동 순재’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 MBC거침없이 하이킥(2006) 3. MBC드라마 이산(2007)에서 조선 21대 왕 영조를 연기했다. 4. 다문화 가정의 삶을 그린 영화 '덕구'(2018). 이순재 씨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1. 최고 시청률 60%를 기록한 MBC 드라마 보고 또 보고(1998) 2. ‘야동 순재’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 MBC거침없이 하이킥(2006) 3. MBC드라마 이산(2007)에서 조선 21대 왕 영조를 연기했다. 4. 다문화 가정의 삶을 그린 영화 '덕구'(2018). 이순재 씨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출연해 화제가 되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경영할 것인가? 

저는 대학 입학 전까지만 해도, 제가 배우의 길을 갈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서울대 정치학과에 진학하려다가 떨어져 철학과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시기에 배우의 세계를 만났고, 평생 연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청년기는 본격적으로 자기 인생의 시발점에 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전까지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스스로 자기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지 그 길을 선택하고 개척해야 할 시점에 서 있는 거지요. 저는 인생을 어떤 마음가짐, 자세로 사느냐, 경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할머니나 엄마 역으로 자주 등장했던 ‘김지영’이라는 배우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원래 영화의 단역 배우였어요. 대본에 이름도 없는 ‘빨래터에 나오는 동네 아줌마A’ ‘잔칫집에 모인 아줌마B’ 역할을 했습니다. 영화를 10년을 했는데도 동네 사람들이 그분이 배우인 줄 몰랐어요. 그런데 한번은 TV에서 빨래터, 잔칫집 장면에 나올 아줌마 역할이 필요했어요. 그 당시에 조연과 단역들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를 통해서 추천받아 텔레비전에 나오기 시작했어요.

단역이니까 대사가 한두 마디 주어졌지요. 생각해보면, ‘나는 10년을 해도 단역이네’ 하고 상심하거나 ‘이거 뭐 그냥 해서 용돈 벌어 동태나 한 마리 사서 들어가면 되겠다’라는 마음으로 한두 마디 대사를 대충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이분은 대사를 그냥 하지 않고 사투리로 하는 거예요. 전라도 사투리로 했다가, 경상도 말로 했다가, 이북 말로도 했다가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이 사람이 튀는 거예요. PD는 그냥 편하게 하라고 하는데 매번 다르게 준비해서 오니까 얼마나 고마워요. 그러니까 이곳저곳에서 쓰이는 거예요. 이름이 붙기 시작하는 거죠. ‘이웃집 복돌이 엄마’에서 ‘간난이 아줌마’ 역할을 맡고, 나중에는 집으로 들어오더라고요. 이모나 고모 역할을 맡더니 나중에는 안방을 차지했어요. 엄마나 할머니로 연기하는 거죠.

살아보니, 누구든 삶이 잘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아요. 저도 60년대엔 작품이 없어서 3~4개월 동안 공백기를 보냈던 적도 있지요. 다들 1등이 되고 싶지만, 2등이 되기도 하고 3등이 되기도 하고 손해도 보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몇 번의 기회는 주어진다고 생각해요. 배우들도 당장 뜨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서너 번의 기회가 와요.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김지영 씨 같은 사람들이에요.

단역이든 조연이든 자신의 자리에서 기본을 쌓으며 언제나 성실하게 최고의 배우로 사는 사람, 그런 자세로 사는 사람은 결국은 빛을 발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청년기를 살던 50~60년대는 의식주 해결이 급선무인 시대였어요.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나 비전을 넓고 크게 펼치지 못했어요. 지금은 앞선 세대 덕으로 그때보다 단단한 기반 위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사는 모습이나 환경만 달라진 게 아니라 더 똑똑해지고 용모나 신체적인 조건도 훨씬 좋아졌어요.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이냐?’에 대한 답은 어느 날 하늘에서 호박 떨어지듯 떨어지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세요.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생각해보세요. 모두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습니다.

60여년이 흘러 원로배우가 된 이순재. 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또다른 비극인 리어왕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리어왕’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다.
60여년이 흘러 원로배우가 된 이순재. 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또다른 비극인 리어왕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리어왕’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다.

그리고 어느 분야든 일류의 마음가짐으로 시작하길 바랍니다. 어느 분야든 성공한 사람들은 바닥부터 치고 올라오는 사람들이에요. 화려하진 않지만 자신의 역할에 꾸준히 집중하는 것, 거기에 보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시대는 무엇을 도전하든 대상이 국내가 아니라 세계예요. 더 넓은 세계로 도전하고 배울 수 있는 시대예요. 요즘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인물들이 각 분야에서 나오고 있잖아요. 스포츠처럼 옛날에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분야도 많고요. 저는 우리 민족의 바탕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각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오고 세계적인 리더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어렵고 좀 오래 걸릴지라도 잘 이겨내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젊은이들 파이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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