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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콤달콤 페루 라이프

기사승인 2021.11.05  08:4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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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면적이 한반도의 6배인 페루는 고산지대, 사막, 아마존 정글, 바다 등 다양한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나라다. 해외봉사단원인 이은지, 이하은 씨는 페루의 지방 도시로 봉사를 다니며 여러 문화를 체험하고, 동시에 좀 더 넓은 마음의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침보테’와 ‘이카’ 지역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잊을 수 없다는 두 사람. 그들의 봉사 라이프를 소개한다.   

#침보테Chimbote

못해도, 행복할 순 있잖아

글 이은지

한국에서 페루로 온 뒤 우리는 줄곧 수도 ‘리마’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리마에 조금 적응할 즈음 이곳저곳 지방으로 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더 넓은 페루를 볼 수 있겠다’라는 설렘과 ‘말을 제대로 못 하는데 한국 사람이 없는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함께했다. 아니, 걱정이 차지하는 면적이 훨씬 컸다.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1년간 공부했던 하은이와 달리 나는 페루에 와서 스페인어를 처음 배웠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고, 페루 사람들이 내게 뭘 물어도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멋쩍은 웃음을 짓곤 했다. ‘해외봉사를 떠나면 더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과 소통할 거라 생각했는데….’ 기대했던 것과 달리 현실은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는 7월에 ‘침보테’라는 도시로 한 달 동안 파견되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침보테는 페루의 항구 도시로 바다의 짠내가 날 거라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리마에서 버스를 타고 7시간을 달려 그곳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현지 지부장님을 따라 도착한 숙소는 시골 마을의 집이었다. 뒷문에는 말과 당나귀가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만 물이 나왔고, 더운 물은 끓여서 써야 했다. 열약한 환경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약간 불편할 뿐,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것보다 언어에 대한 고민이 컸다. ‘난 기본도 안 되는데 뭘 하겠어?’ ‘바보같이 있는 게 너무 싫다.’ ‘나는 안 돼.’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페루에 온 게 과연 잘한 선택일까? 이러다가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뒤엉켜 켜켜이 쌓여갔다.

한국 문화 행사 때, 한국어 잰말놀이를 한 적 있었다. 페루 사람들에게 어렵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한국어 발음이 좋아 신기했다.

어느 날 그런 나를 지켜보던 현지인 지부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은지야, 요즘 네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무슨 일인지 이야기해줄 수 있어?” 나는 한참을 꾸물거리다 입을 열었다. 언어가 어려워서 답답한 마음, 포기하고 싶은 마음,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털어놓았다. 내가 이야기하면 옆에 앉은 하은이가 통역하고, 종종 휴대폰 번역기도 등장했다. 지부장님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해주셨다.

“그래 은지야, 지구 반대편에서 지내는 게 쉽지 않지?(웃음) 답답하고 바보 같은 모습으로 지내고 싶은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거야. 그런데 나는 네가 이 어려움 덕분에 더 큰 걸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 잘해서, 할 수 있어서 봉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네가 잘하지 못해서 답답하고 실수할 때도 ‘내가 못 하는 일들이 많구나. 그러니 배워야겠다’ 하며 웃을 수 있는 마음을 배운다면 정말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 나는 네가 페루에서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사람이길 바라고 있어.”

나는 잘하지 못하니까 속상해하고, 어려우니까 슬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무기력한 내 모습이 미웠고, 못난 모습을 자책하기 바빴다. 그런데 내 언어 실력이 어떻든 페루에서 즐겁게 살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정말 기뻤다. 지난 삶을 돌아보니, 나는 실패가 싫어서 언제나 앉았던 자리, 먹었던 음식, 해보았던 일만 찾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익숙한 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불안했고, 늘 길이 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실패하고 좀 못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나는 말을 잘 못해도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늘 번역기를 가지고 다니고, 하은이를 호출하는 날도 많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를 도와주는 하은이가 고마웠고, 나를 기다려주는 페루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을 더 귀 기울여 들었고, 스페인어를 꾸준히 배워갔다. 하루는 고민에 빠진 페루 친구에게 다가가 보디랭귀지를 써가며 고민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침보테는 내게 가장 소중한 곳이 되었다.

사진 왼쪽부터 조앤나, 이은지, 이하은, 세라. 두 친구는 미국에서 페루로 봉사를 왔다. 아직은 스페인어가 서툴러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가 많지만, 몇달 뒤에는 우리 넷이 스페인어로 대화하고 있지 않을까.

이후 나는 리마로 돌아왔고, 침보테에서 한 활동을 보고할 기회가 있었다. 전에는 부담스러워서 그런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나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꼬박 하루 동안 원고를 적었고, 현지인들을 찾아다니며 발음을 배워 발표했다. 물론 실수도 많았지만, 페루 친구들은 나의 이야기에 함께 웃어주고 기뻐해주었다. 이제 나는 남은 시간 동안 이곳에서 익숙한 것 말고 낯선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 못 하는 사람이 되어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보고 싶다.

#이카Ica

페루가 내게 최고의 나라인 이유

글 이하은

페루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종종 “네?” 하고 반문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 안에 행사 준비를 모두 마쳐야 할 때, 영상 편집이나 공연 기획처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 그랬다. 한국이었다면 “다음부터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알려주세요.” “그거 잘하는 사람도 많던데 다른 사람을 알아보면 어떨까요?”라고 했겠지만,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해내야 하는 이곳 페루에서는 다른 누구에게 미룰 수 없기에 “네?”가 아닌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침보테에 이어 ‘이카’로 봉사를 갔을 땐, “네….”라는 힘없는 대답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카는 사막으로 유명한 곳이다. 햇빛은 무척 강했지만 낮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저녁에는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이카에 위치한 봉사 센터는 매달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한국 문화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사실, 리마에서부터 이 행사에 대해 이미 알고 준비해왔기에 처음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행사 시작 며칠 전에 행사 장소가 ‘센터의 작은 마당’에서 ‘넓은 경기장’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행사를 좋게 생각한 시청 관계자 분이 큰 장소를 빌려주신 것은 고마웠으나, 내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는 생각은 하나였다. ‘아니, 한국 사람은 은지랑 나랑 둘밖에 없는데 이게 가능한 거야?’ 머리가 아파왔다. 은지는 그날부터 이것저것 부지런히 준비하며 나에게 말을 걸어왔지만, 내 머릿속은 ‘이게 말이 돼?’ ‘하기 싫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니 은지랑 다투게 되었다. 현지 사람들과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나를 본 사람들이 “무슨 일 있어? 우리 여기 같이 있잖아. 이야기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괜찮다는 말만 하고 자리를 피했다.

한국 문화 행사를 마치고, '와카치나'라는 사막으로 여행을 떠났다. 난생처음 보는 사막의 광활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래언덕을 누비고, 모래 보드도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막의 오아시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 보았다.

내가 만약 페루 사람이었다면 그런 나를 답답하게 생각하고 무시했을 텐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도 한 페루 친구가 “하은아, 우리가 함께 있어. 무슨 이야기든 해.” 하며 말을 걸어왔다. 고집만 피우는 나에게 다가와 끊임없이 ‘우리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신기했고, 미안함과 고마움이 마음에 밀려왔다.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힘들다고 하고, 안 된다며 불평만 하는 고집스런 내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만 하는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날 오전 회의 시간에 지부장님이 앞에 나와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이번에 일은 참 많지만, 이 행사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문화도 소개하고 마인드 강연으로 소망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기쁩니다. 우리가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는데 이곳에서 함께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쁘고,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고맙습니다.” 지부장님의 시각으로 일을 바라보니, 나 혼자 짐을 지고 낑낑거릴 문제가 아니었다. 나도 기쁘고 즐겁게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내 기준을 내려놓고 지부장님의 시각으로 일을 해보기로 했다.

행사 사회 멘트를 구상하고, 공연을 준비하고, 의상을 체크하고, 한국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안 될 것 같아 보이던 문제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해결되었고, 리마에서 봉사단이 지원을 와 인원 문제도 해결되었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나는 내 기준을 내려놓고 나와 조금 다른 기준을 받아들일 때 더 풍성해질 수 있다는 비밀을 발견했다. 이후 내게 소소한 변화들이 찾아왔다.

동물을 무서워해 페루 길거리에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유독 많은 걸 보고 불평불만만 하던 내가 “괜찮아. 함께 지내다보면 익숙해지고 오히려 좋아하게 될 거야.”라고 말해준 친구 덕분에 고양이와 강아지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시설이 조금만 불편하면 입부터 튀어나오던 내가, 매사에 부정적으로 사고하던 내가 이젠 “내겐 페루가 최고의 나라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페루에서 은지와 나는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 익숙하게 걷던 길이 아닌 조금 불편한 길을 걸으며 더 넓은 세계를 배워가고 있다. 며칠 뒤 우리는 고산지대 ‘마추픽추’로 떠날 예정이다. 그곳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현지 진행 및 사진 임법 특파원

고은비 기자 press49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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