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윗 소니’ 손흥민

인터넷 미디어가 발달한 이 시대에 프로 선수들의 팬 서비스는 운동 실력 이상으로 비중이 커지고 있다. 팬 서비스는 자신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성원해주는 이들에게 화답하는 말이나 행동을 일컫는데, 주로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거나 경기 후 사인을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어린이 팬들에게는 좋아하는 선수와 시선을 맞추고 사인을 받은 ‘그 일’이 평생의 추억이 되고, 꿈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시간을 내 운동장에 찾아가서 축구 경기를 본 적은 없다. TV로 경기를 보며 응원하는 정도인 평범한 팬이다. 그런 나에게 조금 특별한 일이 생겼다. 작년 12월 22일(현지 시각)에 있었던 영국의 카라바오컵 8강전인 토트넘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경기 시작 전에 사이드라인 부근에서 몸을 풀고 있던 손흥민 선수가 꼬마 팬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영상을 본 뒤, 뒤늦게 손흥민 선수의 팬이 되어가고 있다.

“소니Sonny!”라고 외친 꼬마

조회 수 100만을 넘기면서 화제가 된 영상을 보면, 꼬마 팬이 운동장에 있는 손흥민을 향해 “소니Sonny!”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고 이를 본 손흥민이 싱그런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손흥민의 반응에 꼬마 팬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손흥민은 위대한 선수일 뿐 아니라 대단한 사람이야”, “한 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주었네”, “정말 아름다워, 소니!” “언젠가 실력이 비슷한 선수는 나올 수 있어도 인성이 비슷한 선수는 안 나올 거야” 등 반응이 다양했다. 요즘 영국에서 손흥민은 ‘스윗 소니’ ‘스마일 소니’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손흥민의 기량은 정말 뛰어나다. 그런 선수가 어떻게 따스하고 섬세한 인성까지 갖추었는지 놀랍다. 성적이 좋고 자신의 인기가 높아지면 자만할 법도 한데 손흥민은 한결같이 팬들에게 고마워하며 겸손하다. 특히 어린이 팬들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그처럼 밝고 일관된 그의 태도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가져다준다. 선수에 대한 믿음에서 형성된 신뢰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킨다.

손흥민의 태도는 팀이 승리하는 데에도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 손흥민은 토트넘의 스트라이커인 케인과 호흡을 맞춰,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역대 최다인 ‘37골 합작’의 신기록을 이루어냈다. 그가 자기중심적인 선수였다면 그처럼 훌륭한 호흡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자만해서 자기중심적으로 플레이를 했다면 팀이 승리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본인의 성장도 멈추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가 뛸 때 팬들의 가슴도 같이 뛴다

지난 4월 10일에 있었던 아스톤 빌라 원정 경기에서는 손흥민이 3골을 넣어 토트넘이 완승을 거두는 데 맹활약했다. 경기 시작 3분경에 케인의 강력한 슛이 상대 선수의 몸에 맞고 튕겨나오자 손흥민이 놓치지 않고 빠른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라 상대 팀의 사기를 꺾었다. 후반 21분에는 역습으로 추가골을 터뜨렸고, 5분 뒤에 한 골을 더 넣어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그 경기를 보면서 손흥민 선수가 그라운드를 달릴 때 나도 같이 뛰는 것 같은 즐거움을 만끽했다. 토트넘 팬들의 응원가가 경기장을 메우고 전광판에 손흥민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나오자,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해트트릭Hat-Trick :  축구나 하키 따위의 경기에서, 한 선수가 한 경기에 세 골 넣는 일.

영국 언론에서는 해트트릭을 달성한 손흥민 선수가 양발을 모두 사용하는 완벽한 기술을 구현했다고 평가하면서, 그가 팀원들에게 가져다준 것은 단순히 득점만이 아니며 팀과 팬 모두에게 행복을 선사했다고 칭찬했다.

단순한 삶, 기본을 중시하는 아버지

언젠가 손흥민이 이렇게 말했다.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다.” 그 말처럼, 유럽 전역을 흥분시키고 있는 손흥민의 오늘에는 아버지 손웅정의 가르침이 있었다. 한번은 TV에 손흥민이 이삿짐을 정리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때도 아버지가 “집안에 물건을 많이 두지 마라. 깔끔하고 단순한 환경이 축구에 좋다.”라고 조언했다.

알려져 있듯이, 아버지 손웅정 씨도 젊어서 축구선수였다. 하지만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28세에 은퇴해야 했다. 그 후 그는 축구 지도자로 청소년 선수 양성에 힘을 쏟았다. 자전적 에세이집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서 그는 “나는 축구를 모르면서 축구를 했다. 공도 다룰 줄 모르면서 공을 찼다.”라고 회고하면서, 스스로를 기본기도 모르는 ‘삼류 선수’였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배워온 것의 정반대 방법으로 아들에게 축구를 가르쳤다.

대나무 중 최고로 치는 ‘모죽’은 아무리 물을 주고 가꿔도 싹이 나지 않다가 5년이 지나서야 죽순이 올라오는데 하루에 80센티미터씩 쑥쑥 자란다고 한다. 그동안 모죽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내실을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손웅정 씨는 축구도 모죽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들이 8살 때부터 축구를 가르쳤는데 기본기만 6년을 가르쳤다. 실제로 아들이 16세가 될 때까지 정식 경기에 내보내지 않고, 매일 6시간씩 기본기만 연습시켰다. 하루에 양발 슈팅을 1,000개씩 훈련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 덕분에 발에 걸리면 터지는 ‘손흥민 존(페널티 박스 부근 좌우 45도)’이 탄생했다.

진정한 승자는 이기는 자가 아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훈련 지도를 넘어 바른 인성을 강조했다. “겸손해라. 네게 주어진 모든 것들은 다 너의 것이 아니다.”, “삶을 멀리 봐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라.” 등 그는 언제나 ‘삶의 본질’을 강조했다. 기술을 가르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그는 아들에게 항상 이렇게 이야기한다.

“올 시즌에는 상황이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올 시즌이 어려웠다고 내년 시즌도 어렵다고 볼 수 없다. 올해 풍년이 들면 다음 해에 흉년이 들 수도 있고, 올해 흉년이면 내년에는 풍년이 들 수도 있는 거다. 그게 삶이고 자연의 이치다. 계속 풍년만 들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운동선수에게 승패는 중요하지만,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승패에 연연하는 마음을 넘어설 수 있다. 손흥민이 오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해도 오늘 축구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자가 진정한 승자’라는 아버지의 철학을 마음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손웅정 씨의 책을 읽다가 눈이 멈추는 대목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아래 내용이었다.

“상대가 넘어지는 것을 보면, 그 상황이 아무리 공을 골문으로 넣을 수 있는 좋은 찬스라 해도 공을 바깥으로 차내라. 사람부터 챙겨라. 너는 축구선수이기 전에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다.”

아버지에게 혹독하게 배웠지만 그 이상의 진한 사랑을 받아온 손흥민.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목청껏 불러대는 아이에게 손을 흔들지 않을 수 없다. 팬들 가운데 가장 약한 어린이 팬들을 가장 먼저 돌보는 마음은 아버지의 가르침 속에서 만들어진 사랑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손흥민 선수 때문에 축구가 좋아지고, 그의 미소 덕분에 내 마음의 주름도 하나둘 사라지는 것 같다. 구겨진 마음이 반듯하게 펴지고 맑아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사인해주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도 기쁨을 준다. 감사로 만들어진 손흥민의 행복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한다. 그가 짓는 싱그런 미소가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고, 흔들어주는 손이 아이들로 하여금 미래의 꿈을 꾸게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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