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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여행한다 고로 존재한다

기사승인 2022.07.20  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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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작가 최갑수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인생을 배운다. 혼자 여행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걸 배우고, 사랑할 대상과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리고 돌아올 즈음엔 행복이이미 가까이 있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최갑수 작가가 수십 년 해온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내면에 있는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의 본질을 찾아 떠나본다. 

여행책 < 단 한 번의 여행> 표지를 장식한 사진. 주문진 해변에 있는 강릉 BTS 정류장이다. Ⓒ최갑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일상이 회복되면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만 봐도 ‘아, 떠나고 싶다!’는 말들을 합니다. 여행 전문 작가에겐 코로나가 더 힘든 시간이었겠지요?

정말 그랬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주위의 다른 작가들, 여행 관련 업체들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코로나 이전에는 1년에 평균 16번 정도 해외여행을 다녔습니다. 보통 1~2주씩 취재를 하고 곧바로 다른 나라로 여행 일정이 이어지기도 했죠. 한국엔 가끔 들어오는 정도였는데, 터키를 다녀온 2020년 2월 이후 발이 묶였죠. 저는 취미로 여행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기에, 이동을 제한하는 코로나가 처음엔 무척 당황스러웠어요.

해외는 어려워도 국내여행은 가능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2년 동안 국내여행으로 방향을 돌렸어요. 대학에 갓 입학한 큰아들은 코로나로 입대를 선택했고, 저는 온라인 수업하는 두 아이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느리게, 느긋하게 이 땅을 다녔어요. 여행을 가면 주로 사진을 찍지만, 가끔은 아이들과 바다에서 카약도 타고 호수가 보이는 숙소에서 안개 가득한 아침을 맞기도 했어요. 자유로를 끝까지 따라가면 철책선 앞에 작은 카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가족과 시골길을 걸으며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가슴에 새겼어요. 이런 국내여행의 발자취를 묶어서 <단 한 번의 여행>, <하루 여행 하루 더 여행>이란 제목으로 여행책 두 권을 냈어요.

여름에 가고 싶은 동해안 바닷가 사진들이다. 1. 발 담그고 싶은 화진포 해변. 2. 동해에서 낙조를 배경으로 서핑을 즐기는 모습. 3. 영덕의 강구항에서 축산항까지 이어지는 40km 바닷길은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이다. Ⓒ최갑수

저도 그 책들을 보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곳들을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었어요. 코로나 팬데믹은 작가님이 책을 내고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할 기회를 주었네요.

네, 그렇죠.(웃음) 저는 인생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이 여행이나 도서관에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코로나 이후엔 도서관에 가서 300으로 시작하는 서가의 책들을 읽었죠. 경제, 경영 같은 사회과학이에요. 이 분야의 저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궁금했거든요. 주욱 읽어 보니 명징하고 선명한 논리의 언어들이었어요. 더 놀라운 사실은, 언어가 달라도 경제학자, 정치학자가 말하고 있는 바가 시인, 소설가들의 지향점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죠. 같은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풀고 있을 뿐이죠. 

나 같은 문학 전공자들은 세상을 ‘위로’와 ‘동경’이라는 감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해요. 이제는 사회과학 책들을 펴고 제게 부족한 데이터와 숫자로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죠. 매일 열심히 공부했어요. 거기서 배운 내용으로 올해부터 ‘얼론 앤 어라운드’라는 온라인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어요. 이렇게 코로나 팬데믹은 앞만 보고 달려온 나를 억지로 멈춰 세워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 줬어요.

다시 시작될 여행을 위해 새로운 준비를 하고 계셨군요. 여행의 에피소드도 많으시죠?

당연하지요.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타고 사진을 찍다가 300미터 상공에서 떨어질 뻔한 적도 있고, 사막에서 지프를 타고 가다가 사고 날 뻔한 적도 있어요. 유럽 여행을 갔을 때엔, 첫날 야간기차에서 카메라 장비를 몽땅 도둑맞았죠. 그 비싼 카메라를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긴 했지만, 이미 잃어버린 걸 어쩌겠어요. 그때처럼 자유롭게 여행한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여행하다 보면, 힘든 일도 아픈 형편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돼요. 저는 여행에서 생긴 일들을 한참 뒤에나 아내에게 얘기해요. 말해봐야 걱정만 끼치니까요. 그런데 에콰도르에서 죽을 뻔했던 일은 연락이 닿자마자 아내에게 당장 말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편안한 테이퍼드 핏 청바지에 검은색 티셔츠, 나이키 에어포스 운동화, 야구모자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다. 싸늘한 날씨엔 후드티를 입고 비니모자를 쓴다. 일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데엔 단순한 차림이 좋아서란다. 그런 그가 여행 작가 아카데미를 열어 프리 워커들을 후원할 플랜을 세우고 있다. 그가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들엔 한결 같이 나름의 ‘스토리’가 담겨 있는데, 그중 몇 장을 소개한다.
1. 호주 멜버른 시장에서 찍은 멋진 아저씨. 2. 남호주 애들레이드의 거리를 걷다가 한 컷. 3.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새벽 풍경. 4. 에티오피아 짐마의 거리 풍경. 창문 아래 웅크리고 앉은 사람이 최갑수 작가. 5. 인도 나갈랜드에서 현지인과 함께. Ⓒ최갑수

여행에서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고요?

7~8년 전 일인데요. 남미의 에콰도르 취재를 마치고, 갈라파고스 제도로 혼자 가는 여행이었어요. 비행기를 타고 발트라 섬의 공항에 내려 크루즈 배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쓰나미가 몰려왔어요. 선장은 배가 쓰나미로부터 멀어지는 것 외엔 피할 길이 없다고 승객들에게 알렸어요. 크루즈 배가 달려봐야 쓰나미 속도보다 빠르겠어요? 밤이 되니 바다가 요동치는 정도가 더 심각해졌어요. 저는 모든 짐을 포기하고 사진기에서 메모리카드만 꺼내 비닐로 꽁꽁 싸서 호주머니에 넣었죠. 미친 듯이 흔들리는 배에서 결국 죽겠다 싶었어요.

연락을 취할 모든 방법이 두절되자 갑자기 인생의 후회가 밀려왔어요. ‘왜 좋은 차를 못 탔을까?’ ‘왜 큰 집에 못 살았을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출장 올 때 예쁜 딸내미 볼에 뽀뽀 한 번 해주고 올 걸, 막내 꼬옥 안아주고 올 걸, 큰놈이 졸라대던 이어폰을 사주고 올 걸, 아내한테 사랑한다는 한마디를 하고 올 걸…. 그런 아쉬움들이 쓰나미처럼 들이닥치면서 제 인생에 가장 어두운 10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저는 출장갈 때 이른 아침에 떠나는 비행기를 자주 타요. 그때도 새벽에 혼자 나와 공항으로 갔거든요. 갈 때마다 번번이 곤히 자는 가족을 깨울 수 없잖아요. 악몽 같던 그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어요. 파도가 조금씩 잦아들더라고요. 그때 인생에서 간절한 것이 뭔지, 가족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알았어요. 

여행이 때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준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죠. ‘여행이 삶이다.’라는 말에 이제 수긍할 것 같더라고요. 내가 있는 자리가 가장 좋은 자리인데 그걸 모르고 다른 삶을 그리워하는 것, 그게 여행이고 삶인 것 같아요. 남들이 하는 여행이 좋아 보이지만 막상 거기에 가보면 자기가 하고 있는 여행이 제일 좋은 거죠. 여행과 삶은 유사점이 많아요. 여행 전에 계획을 세우면 더 많이 준비해서 여행을 더 값지게 해줘요. 여행을 계획하기 위해 공부하라는 말은 아니에요. 계획을 세워두면 여러 상황을 예상하게 되고, 현지에서 돌발 사태가 생겨도 난감하지 않아요. 하지만 즉흥적으로 여행을 가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우왕좌왕하게 되죠.

삶도 똑같아요. 생각하며 계획을 세운 자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어요. 만약에 팀을 이룬 여행에서 내가 괜히 객기 부리는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 일정까지 엉망으로 만들 수 있잖아요. 여행에서의 ‘팀’을 ‘가족’으로 바꿔 놓으면, 나의 부주의한 행동이 우리 가족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여행이나 우리의 삶이나 준비할수록 좋고 계획을 세울수록 더 좋다고 생각해요. 위험 요인들을 대처할 예방적 차원에서 말이죠.

그러네요. 방학을 맞아 여행을 떠나려는 대학생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그들에게 가볼 곳을 추천해주시겠어요?

해외라면 우리나라보다 국력이 강한 나라들을 가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유럽의 경우 스위스나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가 있고 싱가포르나 미국도 좋아요. 우리보다 발전한 곳에 가서 보고, 또 그들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대단하게 여기는지도 경험하세요. 코로나로 몇 년 움츠려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열린 시선이 필요해요. 박물관이나 문화 유적지도 구경하겠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도 만나서 대화를 해보세요. 그 나라 젊은이들이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사는지 보면 좋겠어요. 새로운 가능성도 보고 자신감도 얻을 거예요.

제가 두바이에 갔을 때 사막에 있는 아트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영국, 독일, 미국, 필리핀, 호주 같은 나라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모여 공동 작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 광경이 너무 부러웠어요. 우리 대학생들도 이런 글로벌 프로젝트에 같이 동참하면 좋겠어요.

만약에 국내로 여행을 간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경북 의성이나 제주도를 추천하고 싶네요. 특히 의성은 인구 노령화로 점점 소멸해가는 마을이었는데 젊은이들이 들어가서 마을을 새로이 일으키고 있어요. 청년 사업가를 위한 정부의 지원 혜택도 많아요. 어떤 청년은 버려진 우체국을 식당으로 개조해서 문을 열었는데 그 덕분에 외부인들이 찾아와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들도 찍으면서, 이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개척하고 성장시키고 있는지 살펴보는 여행을 하면 흥미가 더 있을 것 같아요. 

경북 의성에 가면 폐건물이었던 안사우체국을 새롭게 꾸며 한식당으로 문을 연 청년 사업가도 만나볼 수 있다. Ⓒ최갑수

제주도 역시 많은 젊은이들이 이주해서 삶아가고 있어요. 잘되는 카페는왜 잘될까, 여기까지 와서 이 사업을 왜 할까, 나는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자는 거예요. 차이는 그냥 사진만 찍느냐, 아니면 살펴보면서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청소년들은 직업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프리 워커’로서 여행 작가가 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 십중팔구 여행 작가를 낭만적으로 봅니다. 물론 여행지를 다니는 것만 보면 맞아요. 파리 노천카페에서 노트북을 켜고 글 쓰는 모습, 기차에서 우연한 만남으로 이어지는 연애를 꿈꾼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건 현실에 없는 꿈이에요. 여행 작가도 회사원, 운동선수와 똑같은 직업인이에요. ‘프리 워커free worker’가 누리는 자유를 만끽하려면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보다 더 자기 관리가 필요해요. 하루 일정이 끝나고 호텔에 와서도 원고를 쓰고 사진을 정리해서 하루하루를 잘 마무리해두는 습관이 있어야 해요. 촬영과 글쓰기를 위한 연습과 훈련은 기본이고, 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상식도 필요해요. 게다가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들고 다니려면 든든한 체력도 중요하지요.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 작가라는 말에서 ‘여행’만 눈여겨보고 ‘작가’는 그냥 스쳐 읽는 편이죠.(웃음) 

여행 작가가 아니라도 모든 직업엔 공통적으로 필요한 마인드가 있어요. 저는 ‘꾸준함이 재능을 이긴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나는 여행 작가로서 타고난 재능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제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여행 작가로 잘살고 있어요. 그것은 꾸준함 때문이에요. 누구나 꾸준히 하면 70% 수준까지는 도달해요.

여기까지는 별다른 재능이 필요 없는 세계죠. 재능은 그 이상의 영역으로 가려고 할 때 필요해요. 그런데 어떤 학생들은 해보지도 않고 재능 없다는 탓만 해요. 굉장히 안타까워요. 여행 작가는 ‘여행’이라는 ‘일’을 통해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삶의 성취를 이뤄가는 사람이에요. 그게 여행하는 삶의 본질이기도 하지요.

그를 파주 출판 단지 안의 도서관에서 만나고 오면서, 구상 선생의 시가 계속 입가에 맴돌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 너의 앉은 그 자리가 / 바로 꽃자리니라 /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몸이 뒤로 젖혀질 때의 설렘 때문에, 혹은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돌아올 때 이렇게들 말한다. 집이 제일이라고. 그러다가 또, 가시방석 같은 현실이 고마운 꽃자리인 걸 알기 위해 떠날 궁리를 한다. 오늘, 여행의 고수를 만나 듣고 얻은 게 많다. 꽃자리 같은 날이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

최근 출간한 <어제보다 나은 사람>은 여행서가 아닌 자기계발서이다. 대학생이 된 맏아들에게 아버지가 살며 터득한 지혜를 알려 주고 싶어서 책을 냈다. 파란 색 표지 위에 놓인 달걀 프라이가 궁금해서 작가에게 물었다. “노른자는 제 자신이고 흰자는 가족이에요. 예전에는 제가 세상을 가리키는 파란 부분에서 놀았는데, 코로나로 가족과 붙어살다 보니까 가장 완전한 삶은 나와 내 주변에 다 있다는 걸 알았어요. 달걀 자체가 완전식품이기도 하잖아요.”라며 해석을 해준다. 일을 통해 삶을 완성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최갑수

대학 때 시로 문단에 데뷔했다. 신문사에 입사해 여행 기자로 발령이 나면서 여행이 평생 그의 ‘일’이 되었다. 열심히 여행하다 보니, 여행이 좋아지고 유명세도 생겼다고 한다. 2006년 독립해 여행 작가로서 ‘프리 워커’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고 있다. <밤의 공항에서>,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등 모두 16권의 책을 냈다. 최근에는 ‘얼론 앤 어라운드alone&around’라는 뉴스레터를 주 5회 온라인으로 발행하고 있다.

조현주 기자 realantique@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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