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티오피아 수교 60주년, 감사와 희망 전하러 간 청년들…” 온라인 기사 제목을 클릭하니 11명의 한국 청년들이 큰 현수막을 손에 쥐고 웃고 있다. 들여다보니 ‘셀람! 해피오피아’라고 적혀 있다. ‘에티오피아에 행복을 전하겠다’는 뜻이란다. 이들의 행보는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한국 전쟁 참전용사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 또 하나는 에티오피아 청소년과 문화교류의 장을 만드는 것. “참가자들은 웃고 울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얻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 추억 속에 무엇을 담아 왔을까? 각기 전공이 다른 대학생들 10인과 대입을 앞둔 19살 1인.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12일간의 여정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해피오피아 팀과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던 한국 봉사팀이 함께 모여 6.25전쟁 당시 간호장교로 참전한 브르끄네쉬 케베데 할머니 댁을 찾았다. 아들과 며느리, 손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해피오피아 팀과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던 한국 봉사팀이 함께 모여 6.25전쟁 당시 간호장교로 참전한 브르끄네쉬 케베데 할머니 댁을 찾았다. 아들과 며느리, 손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Q. 안녕하세요? 해피오피아 프로젝트 소개를 부탁합니다.

박정아: 안녕하세요? 해피오피아 프로젝트는 NGO 단체인 국제청소년연합이 기획한 것으로, 여성가족부 주관 청소년 교류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된 프로그램이에요. 저를 포함해 총 11명이 선정되어 지난 8월, 에티오피아에 다녀왔습니다.

김효은: 우리는 크게 디자인팀, 공연팀, 기획팀, 스텝팀, 오피스팀으로 나눠서 역할을 분담했어요. 출국 몇 달 전부터 함께 모여 필요한 물품을 후원 받는 일, 행사를 기획하는 일, 공연 연습 등을 하며 프로젝트를 준비했죠.

이상희: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감이 컸어요. 올해 초 건강 문제로 하고 싶은 공부도, 경험하고 싶은 아르바이트도 잠시 내려놓아야 했거든요. 점차 컨디션을 회복하던 시기에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어요. 삶의 활력을 얻고 싶었고, 주변의 응원을 받으며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곽예승: 저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어르신을 꼭 뵙고 싶었어요. 저희 친할아버지도 6.25전쟁에 참전하셨거든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지만, 자주 그 희생을 잊고 살 때가 많았어요. 바쁘다는 이유로 6월 25일 당일에도 묵념의 시간조차 갖지 않는 제 모습을 보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혁천: 저는 성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기 전에,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고민하다가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어요. 태어나 처음으로 나를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 시간과 열정을 쏟아보고 싶었습니다. 이렇듯 모두 각자 다양한 이유로 모여 한 팀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한국에서 에티오피아까지 가는 데엔 비행기로 13시간이 좀 넘게 걸렸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해 처음 거리로 나서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건물들 사이로 등장하는 알록달록하면서도 정감 있는 상점들, 차선이 아예 없는 비포장도로와 여러 동물들로 북적거리는 도로… 낯설고도 친근한 풍경에 겨우 적응할 즈음 그들은 서둘러 참전용사를 만나러 밖을 나섰다.

참전용사분들의 가정을 방문해 ‘아리랑’을 관악기로 연주하고, 에티오피아 현지 노래를 아카펠라로 불렀다. 공연을 지켜보던 웨르끄네흐 샤레우 어르신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참전용사분들의 가정을 방문해 ‘아리랑’을 관악기로 연주하고, 에티오피아 현지 노래를 아카펠라로 불렀다. 공연을 지켜보던 웨르끄네흐 샤레우 어르신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Q. 참전용사를 찾아갔다고요.

박효진: 네, 현재 생존해 계시는 분이 일흔다섯 분이에요. 그중 저희는 세 분의 할아버지와 파견 간호사였던 할머니 한 분을 만날 수 있었어요.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집이 마을 골목 깊숙한 곳에 있어서 구글 지도로 찾기가 어려웠거든요. 가는 중간중간 주민에게 길을 물었어요. 한번은 오르막길에 자동차 시동이 꺼져서 모두 내려 차를 밀었어요.(웃음) 가는 길이 힘들었던 만큼, 참전용사들을 직접 만났을 때 뛸 뜻이 기뻤죠.

신주애: 부축 없이는 일어나기도 힘겨운 어르신이 문 앞까지 나오셔서 반가워하며 저희를 맞아 주셨어요. 미리 준비한 감사장과 작은 선물을 전해드리고, 에티오피아 전통곡인 ‘르유 껜’을 불렀는데, 함께 따라 부르시며 즐거워하셨어요. ‘르유 껜’이란 특별한 날을 뜻해요. 말 그대로 그날이 저희에게 정말 특별했죠.

김종은: 어르신이 스무 살이 되던 해, 황제의 명을 받고 20일간 배를 타고 한국으로 건너왔던 날, 생전 처음 경험했던 겨울의 추위, 하얀 눈을 보았던 기억부터 잔혹했던 전쟁을 뒤로한 채 고향에 다시 왔지만, 민족 반역자로 몰리며 겪었던 수모까지…. 힘들었던 삶을 고스란히 전해 들을 수 있었어요.

문혁천: 어르신들은 그런 삶 속에서도 참전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지금도 매일 아침 한국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고 계셨죠. 더 놀랐던 건, 며칠 전 가족이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우리들이 온다는 소식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대요. 저희를 만나고 싶어서요. 참전용사분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저희 눈에도, 어르신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어요.

정대은: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어르신들 마음에는 한국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이 있었어요. 간호장교로 참전하셨던 할머니께서도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신처럼 전쟁터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곽예승: 그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낯선 땅 한국의 전쟁터로 향하던 10대, 20대 참전용사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고요. 이제는 우리가 그분들께 무엇인가 해드릴 차례인 것 같아요. 다시 에티오피아로 돌아가서 살아계신 참전용사분들을 한 분 한 분 기록하고 싶어요. 가장 좋은 장비로, 가장 멋진 모습으로요. 그렇게 후대에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말이죠.

참전용사 아베라 아달페라우 어르신.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던 앨범을 꺼내 보여주시며 지난 70년의 세월을 천천히 이야기하셨다.
참전용사 아베라 아달페라우 어르신.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던 앨범을 꺼내 보여주시며 지난 70년의 세월을 천천히 이야기하셨다.
한 편에 자녀와 손주들의 사진이 모여 있었다. 과거 군부 쿠데타로 셀라시에 황제가 폐위되고, 정권이 바뀌면서 민족 반역자로 몰렸던 참전용사들은 자녀를 타국으로 이민을 보내야 했던 때도 있었다.
한 편에 자녀와 손주들의 사진이 모여 있었다. 과거 군부 쿠데타로 셀라시에 황제가 폐위되고, 정권이 바뀌면서 민족 반역자로 몰렸던 참전용사들은 자녀를 타국으로 이민을 보내야 했던 때도 있었다.
참전용사 어르신의 가슴에 달린 수많은 훈장들. 한국 전쟁 참전 훈장이 가장 중앙에 달려 있었다.
참전용사 어르신의 가슴에 달린 수많은 훈장들. 한국 전쟁 참전 훈장이 가장 중앙에 달려 있었다.
6.25전쟁 당시, 한국으로 군사 파병을 명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아프리카 국가 중에선 유일하게 한국에 지상군을 파병했다. 이들은 황제 직속 부대로서 최정예 전력을 자랑하는 황실 근위대로, ‘강뉴 부대’라고 불렸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253전 253승이라는 압도적인 성과를 냈다.
6.25전쟁 당시, 한국으로 군사 파병을 명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아프리카 국가 중에선 유일하게 한국에 지상군을 파병했다. 이들은 황제 직속 부대로서 최정예 전력을 자랑하는 황실 근위대로, ‘강뉴 부대’라고 불렸다. 이들은 한반도에서 253전 253승이라는 압도적인 성과를 냈다.

한국의 청년들은 참전용사 가정 방문을 시작으로 프로젝트를 본격화했다. 지난 8월 25일, 1950년에 한국으로 최정예 병사를 파병했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머물렀던 왕궁이자 현재 박물관인 ‘라스 메코넨’ 홀에서 위문 공연을 개최했다. 이날 참전용사와 후손, 미망인 등 약 200명이 홀을 가득 채웠다. 현지에서 프로젝트를 도왔던 에티오피아 현지 학생들은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려는 해피오피아 팀을 보며 큰 감동을 얻었으며,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느꼈다고 한다.

Q. 그 다음 일정은 에티오피아의 청년들을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신주애: 네, 아디스아바바 국립대학교를 시작으로 총 4개의 대학을 다니며 ‘코리아 콘서트’를 열었어요. 한국에서 공연을 준비할 때 ‘많은 학생이 참여하면 좋겠다! 어떤 학생들을 만나게 될까?’ 궁금했어요. 그 때문인지,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니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웃고 있더라고요.

김종은: 한국 음식, 한복, 한글부터 K-pop, 부채춤, 태권도 등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체험 부스도 설치하고, 무대에서 공연도 했죠. 첫날에만 약 500명의 대학생이 참여했어요. 특히 K-pop 댄스 공연을 보는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어요. 뉴스에서만 보던 한류 문화의 인기를 직접 체감하니 신기했습니다.

오세윤: 에티오피아 친구들이 밝게 웃던 모습이 생각나요. 2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났던 내전으로 많은 사람이 소중한 가족을 잃었고, 어떤 대학생들은 학도병으로 참가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상처를 입고 돌아왔어요. 나라 곳곳에 그 상흔이 남아있었죠. 그럼에도 마음의 힘을 잃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려는 학생들이 존경스러웠고,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었어요.

김혜민: 저희가 준비한 건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학생들의 솜씨였잖아요. 준비 기간에 종종 ‘우리가 과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고 의기소침해질 때가 있었어요. 그 걱정이 무색하게, 관객들이 저희 공연을 보고 너무 기뻐했어요. 에티오피아 학생들은 저희가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려 했다는 것, 그런 마음으로 에티오피아까지 와준 것. 그 자체가 감동이었대요. 그들의 표정을 보면 볼수록, ‘작은 것이라도 좋다. 이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수도아디스아바바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기념공원을 방문했다. 관련 역사를 보고 듣고 배우며, 한국의 자유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쳐 희생한 참전용사 전사자를 기리고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에티오피아 수도아디스아바바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기념공원을 방문했다. 관련 역사를 보고 듣고 배우며, 한국의 자유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쳐 희생한 참전용사 전사자를 기리고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Q.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어요. 기억에 남는 순간을 하나씩 꼽는다면요.

이상희: 행사 막바지에, 사람들이 힘껏 손을 흔들며 저희를 배웅해주셨던 순간을 꼽고 싶어요. 과분한 사랑을 받은 기분이랄까요?(웃음) 그 모습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보였죠.

김혜민: 저는 이동하던 길에 보았던 아이들이 기억나요. 바짝 마른 다섯 명의 아이들이 도로변을 향해 빈 깡통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어요. 지나가던 사람에게 건네 받은 먹을거리를 소중히 챙겨가는 걸 보며 안타까웠어요. 풍족한 한국에서 살며 불평하던 제 모습이 생각나 부끄러웠고요.

박정아: 저는 한국에서 팀원들과 합숙하던 때요! 초반에 팀 분위기가 무척 좋았어요. 밝고, 의욕적인 친구들이 모였기에 걱정이 없었죠. 그런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양의 일을 진행하면서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갔어요. 갈등도 자주 생겼죠. 해결 방법을 몰라 난감했어요. 그때 선발대로 에티오피아로 먼저 떠난 실장님과 연락이 닿았고, 온라인으로 모임을 했어요. 그간 힘들었던 점도 털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현지 봉사팀에서 이 행사를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좋은 행사장을 얻게 된 생생한 뉴스도 전달받았죠. 에티오피아를 깊이 사랑하는 분들의 진심이 저희 마음에도 닿았어요. 좀 어려워도, ‘온 우주가 우리를 돕는다.’라는 패기로 부딪혀 보기로 했죠. 오히려 그런 위기가 있었기에 팀워크가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오세윤: 현지에서도 일정이 무척 빠듯했어요. 그 때문에 아픈 팀원도 있었고요. 어떤 날은 주변 환경이 열악해서 전기와 물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무대에서 공연하다가 노래가 멈추는 등 돌발상황이 속출했죠. 그런데 그런 불편함, 어려움이 저희 마음을 누르진 못했어요. 제가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하루하루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의 풍경이었어요. 언제나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행복으로 차 있었거든요.

70여 명의 현지 자원봉사자와 함께 행사를 진행했다. 바쁜 일정 속에도 즐겁게 활동하며, 의미있는 행사에 참석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70여 명의 현지 자원봉사자와 함께 행사를 진행했다. 바쁜 일정 속에도 즐겁게 활동하며, 의미있는 행사에 참석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K-pop 댄스 ‘캔디’, 태권무, 부채춤, 아프리카 댄스 ‘에끌로’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였다.
K-pop 댄스 ‘캔디’, 태권무, 부채춤, 아프리카 댄스 ‘에끌로’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였다.

Q. 해피오피아 프로젝트와 같은 ‘청소년 교류 활동’에 참여하면 어떤 점이 유익할까요?

김효은: 저는 이번에 꿈이 생겼어요.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잖아요. 참전용사 어르신들을 만나며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할 수 있는 마음’이 정말 멋있었어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국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저도 그분들처럼, 학생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박효진: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세상을,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고 깊어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내가 이토록 누군가에게 응원 받는 삶을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대외 활동을 찾고 있는 분이라면 ‘타인을 위할 수 있는’ 활동에 도전하는 걸 추천합니다! 오히려 배우고, 얻는 것들이 더 많을 거예요.

오세윤: 해피오피아 프로젝트는 기억에 오래 남을,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아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일 하나하나 쉬운 것이 없었기 때문이죠.(웃음) 그런 어려움을 만날 때 자신의 부족함도 깨달을 수 있고, 또 한 단계씩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찾고 있는 분들이라면 ‘부담스럽고, 도전적인 활동’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정대은: 얼마 전, 중랑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했어요. 150여 명의 관객 앞에서 해피오피아 프로젝트에 참가한 소감을 발표할 기회가 생겼거든요.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 것부터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된 것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제로 무척 유익한 경험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무엇보다 ‘나는 이런 대단한 일을 했어.’가 아니라 ‘이런 영광스러운 일에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라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번에는 저희가 직접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이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한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에티오피아 대학생들.
한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에티오피아 대학생들.
해피오피아 프로젝트를 취재하기 위해 온 현지 언론사 ENA와 인터뷰도 했다.
해피오피아 프로젝트를 취재하기 위해 온 현지 언론사 ENA와 인터뷰도 했다.

12일 동안, 한국의 청년들이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사람은 6,500여 명이었다. 현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들을 본 사람들이 ‘학생들의 밝은 미소가 인상적이었다.’라는 소감을 전했단다. 그런데 미소가 아름다운 건, 이들만이 아니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촬영한 영상 하나하나,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긴 참전용사와 에티오피아 학생들의 얼굴도 인상적이었다. 그분들도 즐겁다고, 행복하다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새로운 만남과 경험은 우리에게 지식과 교훈을 더해준다. 그런데 때로는 새로운 만남과 경험이 거대한 세계를 열어주기도 한다. 참전용사의 희생을 알게 된 한국의 청년들, 이역만리에서 감사와 위로를 전하러 온 한국인을 만난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아주 좋은 ‘경험’을 한 듯싶다.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세계를 열었으니 말이다.

취재를 하려고 받은 자료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한국 청년들이 그 안에서 웃고 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니 관객석에 앉아 있는 에티오피아 사람들도 따라서 환하게 웃고 있다. 보이지 않는 끈이 이어져 사랑이, 기쁨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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