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함께 볼 만한 애니메이션 ‘엘리멘탈’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 한 편이 있다. 꿈과 사랑에 대한 도전, 가족애를 애니메이션으로 흥미롭게 풀어내서 엄마들이 아이에게 보여주러 극장에 갔다가 감동을 받고 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힐링이 되며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다양한 인종이 얽힌 이민사회 그려내

‘엘리멘탈’은 유명 애니메이션 기업 ‘픽사’가 만든 작품이다. 극장 상영 후, 디즈니 플러스에 공개되어 5일 만에 2,640만 뷰를 달성하였다. ‘엘리멘탈’은 올해 한국 영화관에서 꾸준한 흥행몰이를 해고, 이에 지난 5월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상영되었다.

엘리멘탈Elemental의 사전적 의미는 ‘기본적’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모든 것은 기본 원소로 그려진다. 배경인 엘리멘탈 시티에도 물, 흙, 공기, 불 4개의 원소들이 살고 있다. 마치 각기 다른 인종이 다양성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멜팅 팟Melting Pot’ 같은 미국 사회 한복판을 보는 듯하다.

황홀하도록 눈앞이 화려한 도시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너무 닮아 있다. 도시의 첫 번째 종족인 물의 원소는 바다에서 나와 이곳을 개척했다. 홍수에 휩쓸리거나 스펀지에 흡수되어버리는 약점이 있지만, 이미 상류층으로 자리를 잡았다. 두 번째 종족인 흙은 몸에서 식물이 자라난다. 세 번째 원소인 공기는 구름 같은 모양으로 바람처럼 날아다닐 수 있어서 스포츠 경기의 선수로 나온다. 세 종족이 순서대로 백인, 흑인, 라틴 계열을 상징하는 느낌이라면, 불의 원소는 엘리멘탈 시티에 가장 발을 늦게 들인 이방인 집단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런 상황 속에 사는 불의 종족 ‘엠버’가 물의 종족인 ‘웨이드’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불의 성질을 가진 엠버는 화끈하고 열정적이다. 그는 아버지가 이곳에 이주해 온 뒤 오랫동안 꾸려온 ‘파이어 플레이스’ 상점을 물려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손님을 대할 때면 불 같은 성질이 한 번씩 튀어나와 주변을 태워버려서 아버지를 실망시킨다. 그래도 가족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던 중 그는 어느 날 ‘진상’ 손님 때문에 또다시 열이 받아서 씩씩거리며 지하실로 내려오고, 거기서 불꽃을 피우며 화를 푼다. 그런데 이 불꽃이 잘못되어 지하실 전체로 불길이 번지고 하수도 파이프에 균열이 생긴다. 그러면서 누수의 원인을 찾아내는 시청 조사관 웨이드를 만난다. 웨이드는 물의 종족으로 감성적이며 눈물이 많고, 성격이 유연하다. 둘은 역경을 함께 해결하러 다니다가 점차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하지만 종족이 달라서 ‘서로를 상하게 만들까’ 우려하는 주변의 반대에 부딪힌다. 영화는 이들이 사회적인 통념을 극복하는 모습을 계속 담아낸다.

실제로 여주인공 ‘엠버 루멘’의 이름에서 엠버Ember는 ‘장작이나 숯이 타다 남은 잉걸불’을 일컫고, 루멘Lumen은 라틴어로 ‘빛’이라는 뜻이다. 남자 주인공인 웨이드 라이플Wade Ripple 역시 ‘물속을 걷는다’라는 단어와 ‘물결’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이름이다. 특별히 재미난 점은 이 영화에서 웨이드의 엄마 목소리를 맡은 성우다. 우리에게 친근한 ‘나 홀로 집에’ 영화에서 주인공 캐빈의 엄마를 맡았던 ‘캐서린 오하라’가 이 역할의 더빙을 맡아 열연했다. 그는 세계적인 배우로서 고령에도 지금까지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배우와 성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엠버의 목소리는 중국계 미국인 리아 루이스가 더빙을 맡았다. 그는 태어난지 6개월 만에 중국 상하이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이민자다. 웨이드의 목소리는 영화 ‘쥬라기월드:도미니언’에서 램지 역을 맡았던 아프리카 모리타니 태생 배우 마무두 아티가 열연했다. 사진 디즈니 코리아 페이스북
엠버의 목소리는 중국계 미국인 리아 루이스가 더빙을 맡았다. 그는 태어난지 6개월 만에 중국 상하이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이민자다. 웨이드의 목소리는 영화 ‘쥬라기월드:도미니언’에서 램지 역을 맡았던 아프리카 모리타니 태생 배우 마무두 아티가 열연했다. 사진 디즈니 코리아 페이스북

재미교포 2세 감독의 경험을 담아

영화 ‘엘리멘탈’은 다른 나라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흥행했다. 50여 개의 개봉 국가 중 북미를 제외한 한국에서 전체 수입의 약 17%에 해당하는 약 701억 원을 벌어들였다. 외신들도 상영 초반에 부진하던 ‘엘리멘탈’의 흥행 성공을 ‘한국에서의 성과’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의 희생, 이를 생각하는 앰버 루멘이 가게를 이어받겠다는 꿈, 끈끈한 가족애 등이 한국인의 정서와 무척 닮아 있다. 불의 종족 나라에서 이주를 해오기 전에 작별인사로 큰 절을 하고 떠나는 모습이나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는 것,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물을 휘젓는 것도 딱 한국인의 모습이다.

미국의 영화 전문 매체인 《스크린 랜트》는 이러한 이유를 두고 “한국계 미국인인 피터 손 감독이 한국 문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 제작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작품 속 상당수의 이야기가 손 감독의 여러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손 감독의 부모님은 1969년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단돈 150달러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낯선 뉴욕 맨해튼에서 매일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핫도그, 프레첼, 얼음을 파는 식료품점을 운영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고, 두 아들을 낳아 집에서는 한국 문화를 가르치며 키웠다. 손 감독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일하시던 가게에서 카운터를 보는 등 부모님을 도왔다. 엠버가 영화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박물관에 갔다가 입장 거부를 당하는 장면 또한 손 감독의 어린 시절 아픈 기억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제작 인터뷰에서 “백인들이 길에서 가게 일을 하는 아버지에게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소리쳤다.”라며 “나는 어린 마음에 그때는 미국 사회에 녹아 들고 싶어서 아버지가 그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게 오히려 창피스러웠다.”라고 고백했다.

손 감독의 어머니는 영화를 좋아했지만,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손 감독은 일찍이 이런 어머니에게 통역을 해주기 위해서 어머니와 함께 극장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도 많이 접했고, 애니메이터라는 꿈도 키워갔다. 그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예술 학교에 들어갔다. 또 대학생이 되어서는 2D를 공부하다가 픽사의 ‘토이스토리’를 보고 반해서 실제로 픽사에 입사했다.

픽사는 3D 애니메이션의 선구자 격으로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키운 회사다. 손 감독은 그곳에서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의 미술 부서, 캐릭터 개발팀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또 ‘라따뚜이’에서는 ‘에밀’ 역으로, ‘버즈 라이트이어’에서는 ‘삭스’역으로, ‘몬스터 대학교’에서는 ‘스퀴시’ 역을 맡으며 성우로도 활동했다. 더불어 영화 ‘업’에서는 자신을 모티브로 ‘러셀’이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번에 제작한 영화 ‘엘리멘탈’은 그가 감독으로 첫 영화 ‘굿나이노’를 만든 후 동료들과 함께 모여 문화충돌과 세대 차이에 대해 수다를 떨던 것이 계기가 되어 제작으로까지 이어졌다. 다음은 손 감독이 한국에 와서 직접 했던 말이다.

피터 손 감독은 1977년 생으로 월트디즈니와 워너브라더스에서 경험을 쌓고 2000년 9월 픽사 스튜디오에 입사했다. 사진 디즈니 코리아 페이스북
피터 손 감독은 1977년 생으로 월트디즈니와 워너브라더스에서 경험을 쌓고 2000년 9월 픽사 스튜디오에 입사했다. 사진 디즈니 코리아 페이스북

“엘리멘탈을 만들 때 코로나 시기여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작업하려니 7년이나 걸렸어요. 어머니가 당시에 췌장암 치료를 받고 계셨는데 부모님 두 분 모두 제가 영화 작업 중일 때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부모님께 보내는 러브레터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무일푼으로 와서 미국 땅에서 자리 잡고 사신 아버지를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영화를 통해서 사람은 모두 다르지만,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내용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사람은 사랑 속에서 잉태되어서 일생 동안 사랑을 나누며 살아 간다. 부족한 면은 그의 결함을 채워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함께 하고, 주변 형편과 조화가 된다면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독특함을 장기 삼아서 사회에 도움을 준다면 한 차원 더 높은 긍정적인 인생을 누린다.

손 감독은 ‘엘리멘탈’로 이 단순한 인생의 진실을 말했고, 이 작품으로 픽사에서 단편 하나와 장편 두 작품을 연출한 대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이는 픽사 내에서도 겨우 다섯 명 밖에 되지 않는 극소수이다.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던 그가 성공한 감독이 되어 꿈꾸던 모든 것을 이룬 것이다. 손 감독은 “이런 성과에 감사하다.”라며 “앞으로는 제 개인의 작품보다는 동료들과 함께 더 많은 아이디어를 모아서 새로운 관점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라고 전했다. 마치 ‘엘리멘탈’의 주인공 엠버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새로운 땅에 발을 내딛는 심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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