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바다를 향해 힘겹게 달려가다 하늘로 떠오르더니 어느새 가볍게 날아간다. 공기의 저항을 이용하기 위해 가속하다가 이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길을 찾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신기해서 심심할 틈이 없다. 제주도에 와서 재판을 하고 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본 정경이다. 팬데믹이 끝난 후부터는 공항에서 빈 의자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공항의 반을 거의 차지하고 있고, 또 이들은 친구들과 삼삼오오 공항을 휘젓고 다니고, 목소리는 승객을 찾는 항공사 방송보다 더 크기가 일쑤이다. 이들 속에 있으면 내가 정신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창밖을 쳐다보니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마치 군중에서 벗어나 혼자 한적한 곳에 와 있는 듯하다.

사진 박법우 기자
사진 박법우 기자

그러나, 지금 내 마음속을 차지하고 있는 학생들은 공항에서 본 학생들과 다르다. 나는 불과 한 시간 전에 법원 3층에서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엄마와 함께 무리지어 법정 경위의 호명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 소년부 사건을 하루에 모아 심리를 하는 것 같은데, 이런 광경은 나도 처음이었다. 이들은 각각 개별 사건이었고 아이 혼자 법정에 보낼 수 없어 엄마가 같이 따라온 것인데, 언뜻 보면 마치 단체로 법원에 온 것 같았다. 그중 막 심리를 마치고 나온 한 학생과 어머니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다가 그 자리에 멈췄다. 어머니의 눈시울은 벌겋고 앞에 서 있는 아들은 죄송한 표정으로 얼굴이 달아 있었다. 어머니는 혼도 내지 않고, 그렇다고 아들을 토닥이지도 않는다. 아들도 힘들어하는 어머니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른다. 법정에 왔다면 그 전에 많이 반성하고 숱하게 잘못을 빌었을 테니 오늘 또 그것을 반복한들 별 의미가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서류를 들척이는 척하면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저 아이는 괜찮을까?’, ‘저 어머니는 또 괜찮을까?’ 생전 처음 법원에 왔을 텐데, 그것도 다른 문제가 아니라 앞날이 창창하리라 기대했던 아들 일로 법정에 왔으니 어머니의 마음이 괜찮을 리 없다.

아이들이 잘 커 주는 것은 인생에서 아주 큰 복이다. 그러나, 그런 복은 그냥 오지 않는다.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세상이 아이들의 욕구를 그냥 두지 않는다.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간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그랬다. 우리 아이들은 나에 비하면 정말 반듯하지만 어쩌다 잘못하거나 뭔가 실수하면 아내는 반사적으로 나를 쳐다본다. 음… 말하지 않아도 무슨 말이 곧 터져 나올지 나는 안다. 결국 아내가 입을 연다. “당신은 더 했지?” 이 말이 하고 싶은 거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답한다. “난 더 했어.” 그리고, 한마디를 보탠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어.”라고. 세상엔 정말 나보다 나은 아이들이 너무 많다.

법정이라는 경계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이 다 같지는 않다. 마주 서 있는 어머니들 역시 다 같지 않다. 아이들은 변해 본 적이 없거나 변하더라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의 과정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어른들이 변화를 어렴풋이 알기는 해도 결과를 보고 알 뿐 변화 자체를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존하는 변화를 믿지 못하면 지금의 모습에 화를 내거나 다 그치거나 포기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나는 아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머니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아이 변할 수 있습니다.”라고. 그 한 마디면 족하다. 그리고 만일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그런 어머니 앞에 있는 아이라면, 그 아이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야, 너 변할 거야.”

변화를 믿어야 한다. 그 마음에서 서로 이끌어주고 따라가야 한다. 뼛속까지 변하지 않아도 된다. 조그마한 변화만 있어도 삶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이 앞에 아직 어머니가 서 있다는 것, 또 어머니 앞에 아직 아이가 있다는 것은 아직 최후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금 늦더라도 같이 손을 잡고 돌아오면 경계에 섰던 일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숱한 경계에 서게 된다. 그럴 때 해야 할 것 역시 변할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글 박문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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