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구 복원가 조인성 작가

사극 드라마 열풍과 함께 K-pop 드라마 속 전통 기물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에 외국인은 물론 젊은 세대도 요즈음 고가구로 자신의 공간을 운치 있게 꾸미길 선호한다. 조인성 작가는 이런 유행이 오기 훨씬 전부터 고가구를 연구하고 현대적 스타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온 인물이다. 어느덧 35년째, 폐기 직전의 고가구들을 특유의 감각으로 새롭게 살려내는 그를 만나본다.

인사동에서만 느꼈던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곳이 또 있었다니! 지난달에 기자가 찾은 장안평 고미술상가 거리는 마치 오랜만에 박물관을 구경하는 느낌이 들었다. 조인성 작가는 갖가지 석상과 석물, 가구, 고미술품이 즐비한 상가에 작은 작업실을 두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려고 온 기자에게 약간 쑥스러운 듯하면서도 활짝 반겨주는 모습에서 소박한 품성이 와 닿았다. 그의 옷차림도 예술가 그 자체였다. 세월을 겪은 연륜이 전해지는 복장은 오히려 환갑이 넘은 연배에 더 세련되고 센스가 있어 보였다.

인터뷰 전 잠시 담소를 나눈 그의 작업실에서도 그의 이런 성격이 그대로 풍기고 있었다. 손때 묻은 연장들이 이리저리, 하지만 작가만 알 수 있는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있는 모양새는 자못 아름답기까지했다. 유심히 들여다볼수록 그의 생활 동선이 역력히 느껴졌다. 조 작가는 세월감 있는 목재들 속에 자신도 하나의 그림처럼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가 재탄생시킨 고가구들은 ‘전통으로 깊이 들어가면서도 중후한 멋을 현대적으로 끌어낼 줄 안다’는 한 줄 논평을 받았다. 그는 별다른 욕심 없이 그저 ‘선조들이 썼던 물건이 다시 자리를 잡고 사람과 같이 간다.’라는 즐거움으로 일하고 있다. 사진 조인성 제공
그가 재탄생시킨 고가구들은 ‘전통으로 깊이 들어가면서도 중후한 멋을 현대적으로 끌어낼 줄 안다’는 한 줄 논평을 받았다. 그는 별다른 욕심 없이 그저 ‘선조들이 썼던 물건이 다시 자리를 잡고 사람과 같이 간다.’라는 즐거움으로 일하고 있다. 사진 조인성 제공

오래된 것을 누리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이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옆에 있었어요. 매일같이 박물관을 들락거리며 자랐지요. 박물관 야외 뜰을 놀이터 삼았으니까요. 그곳에서 항상 보는 유물들이 저에게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친숙했어요. 한없이 익숙한 느낌들이 막연하게 편안했다고나 할까요?”

자라온 환경이 한 사람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조 작가의 부친은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그도 아버지를 빼닮아서인지 어려서부터 오래된 물건 보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는 당시에 조용하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다. 박물관이나 고미술상가에서 이런저런 골동품을 접할 때마다 ‘이 물건은 백 년이 지났을까? 2백년이 지났을까?’, ‘어느 시대에 어떤 사람이 사용했을 거야!’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사람은 오래 살아도 백 년 남짓이며, 죽으면 앙상한 모습으로 뼈대만 남게 된다. 하지만 나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행여 중간에 파손될지라도 그 모습이 오래오래 유지된다. 이렇게 몇 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물건이 자신의 눈 앞까지 와서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때로 벅차올랐다. 80년대 학생 시절에는 당시 유행했던《월간 공예》잡지를 통독하며 전통 공예의 맥락을 익혀갔다. 이런저런 골동품을 많이 접하다보니 그에게는 먼지가 쌓이고 공기에 마모된 흔적들조차도 고졸한 아름다움이었다.

지금은 수량의 한계로 골동품이 소수의 감상물이 되었고, 골동품 시장도 예전만큼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고속의 경제성장을 하던 1970~80년대만 해도 골동품 열기는 서울의 이태원, 충무로, 아현동, 황학동 일대에 즐비했다. 괜찮은 물건은 나오기가 무섭게 한국의 전통 기물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과 국내 수집가들에게 팔려나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대가 된 조 작가는 골동품에 대한 매력을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자연스레 업으로 삼게 되었다. 그는 지금도 골동상이면서 고가구 복원가로 일을 병행하고 있다. 단순한 매매상이 아닌 일본의 가이다시(賣出, 골동품을 사서 시장에 납품하거나 직거래하는 골동상)처럼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는 물건을 찾아서 적절한 물건을 고르고, 국내외 고객에게 추천하며 직거래도 한다. 이는 골동품에 대한 상당한 안목과 구매 네트워크를 갖춰야 하는 전문 분야이다.

그러면서 훼손이 심해 폐기해야 하는 물건들은 재료값 정도를 주고 사들인다. 그는 그 재료들을 몇 년씩 두고 적당한 때를 기다린다. 특유의 섬세함과 세련된 감각으로 복원, 재탄생시킬 때까지 말이다.

사진 조인성 제공
사진 조인성 제공

사랑은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고

조 작가의 작업실 한쪽 벽에는 아담한 크기의 서예 족자가 하나 걸려 있다. 그가 몇 달 전 지인의 고 미술품 작업실에 방문했다가 물건들 속에서 널브러져 있는 종이 하나를 얻어왔다. 그는 작업실로 돌아와 이 종이를 족자로 만들어 벽에 걸었다. “1백50년에서 2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글씨 같았지요. 필체가 힘이 있어 보이면서도 단아하고 예쁘더라고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족자 안에 담긴 한자는 다름 아닌 ‘보배로울 보寶’ 한 글자였다. 그는 작업을 하다가 숨 고르기 차, 중간에 차를 마시며 쉬곤 한다. 그때마다 이 족자의 글자를 지그시 바라보곤 한다.

“보배로울 보 자는 아무데나 쉽게 쓰는 한자가 아니지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을 이르는 글씨로, 한자 하나를 놓고 자주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나태주 시인이 그런 말을 했잖아요. 자세히 봐야 예쁘다고요. 물건이라는 것도 못 생기고, 잘 생기고의 차원으로 보면 안됩니다. 화초를 정성껏 가꾸며 향기와 색깔, 체취를 느끼는 것과 똑같이, 사랑을 주며 잘 관리해 주다 보면 자연스레 가려져 있던 아름다움이 서서히 표면으로 드러납니다.”

이 부분에서 지금껏 이 작업을 지속해온 조 작가의 철학이 드러난다. 그는 낡고 부서져서 본래의 기능을 잃은 옛 가구를 폐기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수명을 다해 죽은 듯이 보이지만, 저마다의 가치와 매력이 여전히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애정 어린 시선에서 나오는 관찰력은 곧 안목으로 승화되어 능력으로 발휘된다. 실제로 목가구의 비례미, 장석의 종류, 땟물과 진품과 가품을 가리는 능력 등 그가 골동 가구를 보는 안목은 명실공히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든다고 인정 받는다.

20대 초반부터 골동품을 수집하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서부터 남쪽 마을까지 유랑하고 돌며 사 모았다. 그의 작업실에는 이런 장신구, 도자기, 생활품, 목가구가 수없이 모여 있다. 사진 이나경 기자    
20대 초반부터 골동품을 수집하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서부터 남쪽 마을까지 유랑하고 돌며 사 모았다. 그의 작업실에는 이런 장신구, 도자기, 생활품, 목가구가 수없이 모여 있다. 사진 이나경 기자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에 있는 갤러리 우물에서 열린 조인성 작가의 개인전 포스터. 사진 갤러리 우물 페이스북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에 있는 갤러리 우물에서 열린 조인성 작가의 개인전 포스터. 사진 갤러리 우물 페이스북

작업하려고 재료들을 챙길 때 그는 두께감 있는 튼튼한 재질의 목재로 선호한다. 응용성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된 목재를 잘못 관리하면 훼손될 수 있어서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경우든 조급해선 안된다. 제작에 들어가기 전, 나무가 가진 고유의 옛 느낌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며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과거 행적을 찾고, 물건의 용도와 재질에 따른 세부 사실들을 탐구한다. 소반도 충주반, 나주반, 통영반 등 지방의 특색을 담은 가구들을 그는 꾸준히 연구한다.

실제로 그가 작업하는 도구 중에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옛 연장이 많다. 손 쉽고 쓰기 편리한 도구 기기가 요즘 많이 나오고 있지만, 행여 세월로 쌓인 나무의 질감이 다칠까봐 그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골동품을 대할 때 조심스러움이 몸에 밴 그는 자신이 조금 더 고생스럽더라도 60~70년대에나 있었을 법한 연장을 구해 작업하는 게 마음은 편하다.

“이 연장들이 없다면 내가 고가구를 만들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장신구로 쓸 금속은 어떻게 해서라도 구하지만, 나무의 세월이 주는 자연스러움은 인위적으로 앞당겨 만들 수 없으니까요. 저는 목재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옻칠도 잘 하지 않는 편이에요.(웃음)”

사진 조인성 제공
사진 조인성 제공

골동품은 사용되어야 비로소 살아난다

현대인의 생활에 따른 용도와 편리성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모든 고가구는 전통미를 살리면서도 현대 생활에 쓰임새가 맞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가구로서의 본연의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 특유의 고풍스러움으로 오랫동안 공간을 지킬 수 있다. 더욱이 요즘 가구들은 좌식생활을 하던 한옥과는 달리, 아파트 같은 입식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규격이 정해진다. 트렌드 또한 단순하면서도 어디에 두더라도 실용성이 다방면으로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가구의 높이도 옛날 것보다 훨씬 높게 맞추고, 폭은 좁게 디자인하는 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소나무와 느티나무, 오동나무, 괴목 등의 자재들은 각각의 나무 무늬에 따라 책함, 책장, 서랍장 등으로 나뉘어 다시 제작에 들어간다.

“단순한 모양이 가장 세련되다고 느껴요. 수학 문제도 쉽고 단순하게 풀어내는 사람이 가장 명쾌하잖아요.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운 물건일수록 지독할 만큼 아주 단순하지요.”

작업을 많이 하다 보면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이 가구가 이렇게 예쁜 물건이었네!’, ‘이렇게 예쁜데 폐기물처럼 방치되어 있었구나!’ 하고 놀랄 때도 많다. 조금만 손질을 하면 우아해지는 가구들을 볼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로는 옛 물건들이 가치를 모른 채 그저 버려지고 있다는 현실에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이렇게 느끼는 점이 쌓이다 보면 습관이 경지에 오르듯 영감으로 발휘된다. ‘이 물건을 갖고 있던 주인은 이런 성향이었을 거다!’ 가구에서 당시 사용하던 주인의 체취를 느낀다. 또 눈 앞에 선연하게 펼쳐지는 옛날에 비추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물건을 통해 서로 다른 시대를 공유하며 세월을 초월해 교감을 나눈다. 마지막 단계로 가구에 장석*을 붙여 외관을 마무리한다.

‘조조의 조선 목가구 이야기’를 주제로 한 개인전시회에 서랍장, 소반 등 목가구 30여 점을 내놓았다.  이는  ‘오래된 시간을 어루만지는 기쁨’과 ‘흐름’에 이은 세 번째 개인전시회였다. 사진 이나경 기자
‘조조의 조선 목가구 이야기’를 주제로 한 개인전시회에 서랍장, 소반 등 목가구 30여 점을 내놓았다.  이는  ‘오래된 시간을 어루만지는 기쁨’과 ‘흐름’에 이은 세 번째 개인전시회였다. 사진 이나경 기자

오랜 시간을 어루만지는 기쁨

“좋은 고가구나 골동품을 고를 때 기준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와 같이 설명했다. 조 작가에 의하면 진정한 명품은 주인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고가구나 골동품도 그렇다. 좋은 기물은 평생 같이 살아도 좋아야 하기에,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영원히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 이를 즐기기 위해서는 경제적 여유와 특별한 식견은 필요치 않다. 시중에 나온 상품 중에서 싸게는 1~2만 원짜리 저렴한 물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주 접하고 만져보면서 시대와 사용자를 이해하다 보면 안목도 저절로 길러진다. 이러한 연유로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본주의 안에서 값비싼 물건만 최고인 것처럼 취급하는 세태에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어 한다.

더욱이 가구나 도자기, 공예품에는 한국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정체성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몇 백 년 전 조선의 오래된 목가구에서 나오는 오래된 빛깔은 보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더불어 아득한 편안함마저 밀려온다. 그는 국내 곳곳에서 전시를 할 때마다 매번 관객들에게 이 점을 꼭 설명해 준다. 전시회를 열면 그의 작품은 늘 완판이다. 지난 3월엔 자하문로의 갤러리 우물에서 ‘조선 목가구 이야기_낡은 빛깔 古色’이라는 주제로 세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작품을 구매하는 이들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어져 얼마 전엔 소반과 사이드 테이블 중 다섯 점을 런던으로 보냈다고 한다.

사진 조인성 제공
사진 조인성 제공

“제주도 호월에 아담한 전통찻집이 하나 있어요. 젊은 부부가 땅을 사서 조그만 건물을 지었더라고요. 깔끔한 공간 안에 내가 만든 서랍장 하나만 두었는데, 달리 꾸미지 않아도 고즈넉해 보였어요. 그 부부는 전통 기물에 관심이 있어서 이런 스타일이 좋대요. 요즘 사람들이 전통적인 것에 애정을 갖는 모습이 참 예뻐 보이더라고요.”

그는 보다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 전통 기물에 깃든 기품과 아름다움을 알고, 누리고, 찾게 되길 바란다. 그 안에는 새 것이 줄 수 없는 되살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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