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권혁천에게 듣는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물은 중심을 이룬다. 예로부터 강에 놓인 다리는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공공 건축물이었다. 떨어져 있는 두 공간을 연결하기 위해 강물 위에 길을 낸 다리. 그 위로 사람과 물건들이 오가며 경제와 문화가 꽃피고, 만남과 사랑도 계속되어 왔다. 우리 삶에 놀라운 혁신을 가져온 다리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재미나고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권혁천 건축가를 만나 ‘세계의 다리’에 관하여 묻고 들었다.

건축물에서 ‘다리’는 어떤 의미와 역사를 갖나요.

다리는 장애물로 단절된 공간, 건물, 지역을 연결해 소통을 가능케 한 구조물이에요. 내가 살면서 잘 알고 있는 이곳과 잘 모르는 미지의 저곳을 이어줍니다. 건너편에 있는 세계를 아는 것은 두려움이 따를 수 있고, 또 다리가 놓임으로 외부의 침입과 삶의 혼란을 겪게 되는 부분이 있지요. 하지만 하나의 세계만 고집하면 인간은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리로 공간이 이어지면 관계는 확장되고 흥미로운 일들이 펼쳐집니다.

다리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연히 쓰러진 나무, 어딘가에서 흘러온 돌이 자연스럽게 놓이면서 개울을 건널 수 있게 된 인간은 의도적으로 돌, 통나무를 놓습니다. 밧줄, 덩굴로도 다리를 만들고요. 시간이 흐른 뒤 고대 로마인들은 돌을 다듬어 정교한 아치교를 만듭니다. 수도교가 유명해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고대 로마의 경제를 지탱했던 수도교.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고대 로마의 경제를 지탱했던 수도교. 

로마 수도교는 역사 교과서에 꼭 등장하더군요.

로마 제국의 도시 운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물’이 필요했어요. 튼튼한 아치교를 지어 낙차를 이용해 다리 맨 위로 물이 지나가게 해서 농업이 발전하고 문화가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들보교, 도개교 등 다양한 형태의 교량(다리)이 건설되었고 문예부흥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는 교량 디자인이 예술적으로 더 발전했고요. 산업 혁명기의 19세기가 다리 건설의 변곡점입니다. 획기적인 건축 재료인 ‘철’의 사용 때문이에요. 이 시기인 1883년에 뉴욕 브루클린 다리가 세워집니다.

브루클린 다리. 철 케이블을 최초로 사용해 토목공학의 혁신 사례로 불렸다.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스
브루클린 다리. 철 케이블을 최초로 사용해 토목공학의 혁신 사례로 불렸다.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의 포스터에 나오는 다리가 ‘브루클린’ 맞나요?

맞습니다. 미국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죠. 완공 당시 뉴욕시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기다란 철 케이블을 사용해 만든 최초의 현수교,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라는 기록이 붙습니다. 현수교는 강 사이가 멀거나 수심이 깊거나 하부 구조물을 설치하기 힘든 지형에, 철 케이블들을 수직으로 늘어 뜨려 세우는 다리인데요. 1937년 샌프란시스코에 지어진 금문교가 대표적입니다. 현대에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해 철의 부식을 막고 더욱 견고한 교량이 건설되고 있어요. 철 케이블을 비스듬히 설치하여 현수교의 처짐을 보완하고 설치방법도 더 간단한 사장교도 세워집니다. 더 크고, 더 길고, 더 튼튼해져 가는 게 다리의 역사입니다.

다리가 놓여 생기는 흥미로운 사례들이 있다면요?

뉴욕의 맨해튼은 섬이었지만 브루클린과 같은 여러 다리가 놓이면서 사람과 물자의 이송이 활발해졌습니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중심 맨해튼, 월 스트리트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죠. 개인적으로는 아프리카의 카중굴라 다리를 혁신 사례로 꼽고 싶어요. 제가 아프리카에서 8년을 살며 건축 일을 했을 때 자주 빅토리아 폭포에 갔었습니다. 그곳을 흐르는 잠베지강은 나미비아, 잠비아, 짐바브웨, 보츠와나 4개국의 국경을 흐르더군요.

아프리카의 잠비아와 보츠와나를 잇는 카중굴라 다리. 무려  2주를 2시간으로 만든 ‘기적’이 남부 아프리카를 놀라게 했다. 사진 보츠와나 언론사 Sunday Standard
아프리카의 잠비아와 보츠와나를 잇는 카중굴라 다리. 무려  2주를 2시간으로 만든 ‘기적’이 남부 아프리카를 놀라게 했다. 사진 보츠와나 언론사 Sunday Standard

그런데 잠비아, 보츠와나 국경의 선착장에 강을 건너려는 트럭이 끝도 없이 대기하고 있더라고요. 폭이 1㎞에 달하는 강에 다리가 없어 바지선이라는 배에 의존해 건너야 했습니다. 화물을 실은 트럭의 경우엔 통관 절차를 거쳐 강을 건너는 데 2주나 걸려요. 바지선도 낡고 허술해서 트럭이 물에 빠지는 사고도 있었고요. 2020년, 드디어 우리나라 대우건설이 아프리카의 40년 숙원사업이던 카중굴라 다리를 건설했고, 2주간의 대기 시간이 2시간이 됩니다. ‘카중굴라의 기적’이라는 말이 탄생했어요. 남부 아프리카의 경제 지형이 놀랍게 변모했고 국가 간 상호교류가 확대되었습니다.

2주를 2시간으로, 다리가 일으킨 변화가 놀랍습니다.

비어 있는 광장에 큰 거울을 하나 갖다 놔봐요. 광장에 수많은 이야기와 액티비티가 생겨납니다. 죽어가는 탄광 도시였던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립해서 스페인의 대표 도시가 됐어요. 광산에 무슨 미술관이냐며 거센 반대에 부딪쳤지만 결과적으로 매년 백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었죠. 일명 빌바오 효과(한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이 그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긍정적인 영향이나 현상)예요. ‘건물 하나가 어떻게 도시를 바꾸는가’.

요즘의 다리 건설은 두 공간을 잇는 기능적인 역할에 더해 디자인, 사회문화적인 면을 갈수록 고려해 지역과 국가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만들어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또 하나의 소통 장이 되고 있어요. 구조물은 반드시 그 사회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어요. 거대 구조물인 다리는 더욱 그러합니다.

프랑스 남부 아베롱 주 미요를 지나는 고속도로에 만들어진 미요대교.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프랑스 남부 아베롱 주 미요를 지나는 고속도로에 만들어진 미요대교.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소개하고 싶은 랜드마크 다리가 있을까요?

호주 하면 하버 브리지, 미국 하면 금문교, 영국 하면 타워 브리지. 사람들 머리에 각인된, 한 국가를 상징하는 다리입니다. 최근에 지어져 유명세를 얻은 다리로, 프랑스의 미요대교와 튀르키예의 차나 칼레대교를 소개하고 싶어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343m)인 미오대교는 다리 아래로 안개가 뒤덮일 때면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것 같아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차나칼레대교는 기둥과 기둥 사이가 가장 멀어(2,023m) ‘세계 최장 현수교’로 튀르키예의 명물이 됐습니다.

운하다리의 일종인 마그데부르크 다리. 동서독의 소통을 위해 엘베강 위에 건설 되었다. 사진 위키미 디어 커먼스
운하다리의 일종인 마그데부르크 다리. 동서독의 소통을 위해 엘베강 위에 건설 되었다. 사진 위키미 디어 커먼스

발상이 특이하고 디자인이 독특한 다리는요?

독일의 마르데부르크에 가면 널따란 들판에 두 줄기의 강이 직각으로 교차한 지점이 있어요. 아래에 흐르는 엘베강이 진짜 강이고, 위쪽의 것은 강이 아니에요. 마그데부르크 다리예요. 다리에 물이 흐르고 대형선박이 왔다 갔다 합니다. 다리가 강이고 강이 다리일 수 있는 아주 초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져요. 스페인의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구조 기술자인 산티아고 카라트라바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만든 ‘여인의 다리’. 디자인적으로 감탄이 나오는 작품이죠. 악기 하프와도 같은 이 다리는 아르헨티나 대표 춤인 탱고를 추는 커플을 상징한다고 해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폰테베키오’는 그 위에 상점 건물들이 강 쪽으로 들쑥날쑥 튀어나와 있어요. 중세 유럽에 종종 이런 다리가 보이지만, 다리 위에 건물을 세운다는 발상은 한국인에게는 낯설죠. 대신 우리에게는 ‘오작교’가 있네요.(웃음)

현대적인 감각으로 세워진 아르헨티나의 ‘여인의 다 리(Puente de la Mujer)’. 170m의 보행자 전용 다리로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세워진 아르헨티나의 ‘여인의 다 리(Puente de la Mujer)’. 170m의 보행자 전용 다리로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폰테베키오 다리.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아르노 강에 위에 놓인 중세시대 다리이다. 층층의 상점 건물들이 이색적인데 강 쪽으로 건물들이 들쑥날쑥 튀어나온 것은 수세기에 걸친 개축과 증축에 의한 것이다. 우피치 미술관과 피티 궁전을 잇는다.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폰테베키오 다리.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아르노 강에 위에 놓인 중세시대 다리이다. 층층의 상점 건물들이 이색적인데 강 쪽으로 건물들이 들쑥날쑥 튀어나온 것은 수세기에 걸친 개축과 증축에 의한 것이다. 우피치 미술관과 피티 궁전을 잇는다. 사진 위키미디어 커먼스

오작교야말로 훌륭한 연결 매개체예요.

만남과 소통의 욕구가 오작교를 만들어 냈어요. 세계 각지의 설화에서는 종종 다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흥미로운 건 ‘무지개’를 다리와 동일시하는 설화가 많다고 해요. 땅과 하늘을 잇는 일곱 빛깔의 아치교.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다리죠. 다리에 관한 공통 이미지는 ‘두 세계의 연결’임은 확실해 보여요. 하지만 판문점에 있는 ‘자유의 다리’처럼 소통이 안되는 비극적인 다리도 있어요. 다리가 소통을 이루는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며 결국 그걸 운용하는 사람의 몫이 가장 큽니다.

그러네요. 한국의 ‘다리’에 대해 더 이야기해 주세요.

우리나라는 36,500개가 넘는 많은 다리를 보유한 나라입니다. 500㎞가 넘는 한강에는 32개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중 22개가 서울 시내에 있어요. 한국의 경제발전과 삶의 성장에 다리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죠. 최근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의 연륙교(섬과 육지 연결), 연도교(섬과 섬 연결)가 이슈가 됐어요. 신안군의 1,025개의 섬 중, 14개 중요 섬에 22개 다리를 놓는 대규모 공사예요. 현재 13개가 완공됐고요. 교통 효율성 증가, 지역 간 상호작용 증가,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을 기대해 봅니다. 환경 문제, 섬 문화 파괴라는 역기능을 무시할 수 없지만 발생할 수 있는 효과와 문제를 균형 있게 조절하는 지혜를 가지고 연결의 흐름을 관리해야겠습니다.

이외에 ‘연결’, ‘소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조물은요?

‘운하’와 ‘해저터널’이 대표적이에요. 대양과 대양을 연결하는 운하는 그 존재 자체가 글로벌경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요. 최근에 페르시아만에서의 국제적 분쟁은 인접한 수에즈 운하를 이용할 수 없게 해 멀리 남아공으로 우회하여야 하는, 큰 경제적 위기를 만들기도 했어요. 또 해저터널의 경우 인류가 만들어 낸 메가 건축 중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구조물이에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 밑으로 난 유로터널이 대표적입니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원활히 하여 경제, 사회, 문화 성장에 혁혁한 공을 세웠어요. 한일 간의 해저터널 협의도 그러한 맥락에서 의미가 있어요.

다리를 포함하여 ‘건축’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건축은 ‘살아있는 피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피부는 호흡해야 하며 소통해야 합니다. 소통과 연결은 창조의 질서라고 볼 수 있어요. 건축가는 틀, 규격을 내려놓고 이러한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돕는 존재이며 건물과 구조물의 주인공인 사용자와도 접속되어야 합니다. 다각도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공간, 계속 대화하며 연결되어야 하는, 살아 있는 존재가 건축입니다.

인터뷰 도움말 권혁천

㈜세븐디그리건축사사무소 소장.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와 건축설계사무소에서 다년간 경험을 쌓았으며 국내 및 해외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한국 및 케냐 건축사협회 정회원이다. 케냐에서는 동양인 건축사 1호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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