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술의 두 거장

가까이에서 마음과 정을 나눈 사이, ‘친구’.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던 거장들에게도 특별한 친구가 있었다.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옆에는 친구이자 경쟁자인 미켈란젤로가 있었고, 해바라기의 화가 고흐의 곁에는 그를 지지해 주는 동생 테오가 있었으며, 현대미술의 아버지 세잔에게는 소설가 에밀 졸라가 있었다. 마네와 모네가 만나 미술사의 혁명 중 하나인 인상주의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들의 만남은 세계적인 명화의 탄생에 큰 영향을 끼쳤고, 미술사의 중요한 한 장면을 만들어 냈다. 서로의 길을 응원하고 지지해 준 화가의 친구들. 이번 호에서는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와 파울 클레(1879~1940)의 우정을 소개한다.

뛰어난 인텔리전트, 칸딘스키를 뒤흔든 두 사건

칸딘스키와 클레는 추상화 분야의 선구자이자 대가들이다. 대개 추상화하면 ‘이것도 그림이야? 무슨 뜻이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 쉬운 난해한 장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구상화와는 반대로, 눈에 보이는 사물의 구체적인 모습은 걷어내고 대신 점, 선, 면, 색채 등 순수 조형 요소로 대상을 포착해 내기 때문이다.

칸딘스키와 클레에게 추상화는, 다 이유 있고 의미 깊고 중요한 작업들이었다. 두 사람은 이웃사촌으로 지내며 서로의 작품세계와 예술가로서의 길을 응원하는 ‘절친’이기도 했다. 같은 분야에 있다 보면 경쟁도, 갈등도 할 법하지만 오히려 많은 것을 공유하며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은 동반자였다. 13살의 나이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바실리 칸딘스키. 1866년 러시아 모스크바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바이올린과 첼로 등을 배우며 음악가를 꿈꾸기도 했던 그는 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했고 어린 나이에 법학 교수가 될 정도로 우수한 인재였다.

하지만 그의 나이 29살에 생애를 뒤집는 두 가지 체험을 한다. 하나는 프랑스 인상주의 전시회에서 모네의 연작 ‘건초더미’를 본 것이다. 처음에 그는 그림 속 사물이 건초더미인 줄도 몰랐고 나중에 작품 제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모네의 ‘건초더미’는 건초에 대한 사실 묘사가 생략되고 오로지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 빛, 그 빛에 비친 인상만 있었다. 칸딘스키는 대상을 형태가 아닌 색채만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때 그의 마음에 처음으로 추상미술의 싹이 텄다고 볼 수 있으리라.

또 다른 체험은 모스크바 왕립 극장에서 관람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페라의 관현악곡을 들으며 나는 머릿속에서 내가 아는 모든 색을 보았다.” 음악과 그림의 상관관계가 큰 흥미를 끌었고 그림에 대한 표현 욕구를 자극했다. 음악이 듣는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술도 색채와 형태의 리드미컬한 에너지를 통해 관람자에게 감동을 일으킬 수 있었다.

바실리 칸딘스키, ‘무제’, 1910년, 종이에 수채화·잉크, 49.6x64.8cm, 파리 퐁피두센터 소장. 사진 위키아트
바실리 칸딘스키, ‘무제’, 1910년, 종이에 수채화·잉크, 49.6x64.8cm, 파리 퐁피두센터 소장. 사진 위키아트

두 번의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그는 법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곧 실행에 옮겨 이듬해인 30살에 독일 뮌헨으로 건너가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36살 늦은 나이부터 화가로 활동했다. 사물의 구체적인 외형과는 상관없이 형태, 색채, 선에 집중했다. 마침내 1911년, 청기사파를 결성해 순수한 형태와 색의 실험을 벌였다. (*청기사파: 1911년부터 1914년까지 활동한 독일 표현주의 화풍 중 하나. 대표적인 화가로 바실리 칸딘스키, 프란츠 마르크, 파울 클레 등이 있다. 구성원 모두 파란색을 좋아하고 칸딘스키는 기사, 마르크는 말을 좋아해 이름을 청기사 파로 지었다.)

칸딘스키가 청기사파에서 활동하면서 그린 작품 ‘무제’는 그림을 자연의 재현물로 본 서양의 오랜 전통을 무너뜨린 주요 작품이다. 미술사적으로 완전 추상에 도달한 최초의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작품은 어떤 사물을 재현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구체적인 형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제목도 ‘무제’이기 때문에 형상을 유추할 수도 없다. 아무런 단서 없이 추상적인 형태와 색을 마주할 뿐이다. ‘완전 추상’의 그림인 것이다. 이로써 칸딘스키는 추상미술과 현대미술의 아버지, 선구자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음악과 문학을 잘하는 화가, 파울 클레

또 다른 추상미술의 거장, 파울 클레는 1879년 스위스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베른 국립음악학교 교사였고 어머니는 성악가였다. 클레는 7세에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 11세에 정기적인 연주회를 열 정도로 음악 신동이었다. 화가가 될 것인가 음악인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다 뒤떨어진 미술을 음악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결심으로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1898년 독일 뮌헨으로 가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1911년 청기사파 화가들과 교류, 1912년 과감히 색채를 사용하는 화가 로베르 들로네와의 만남, 1914년 아프리카 튀니지 여행에서 발견한 자연의 밝은 순색들에서 영감을 받고, 색을 표현하는 데 감각과 자신감을 얻었다. 그는 다채로운 색을 배열한 독특한 화풍을 시도했다. 음악가이면서 글도 잘 쓰는 시인이었던 클레는 음악과 시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작품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의 상단에는 시가 적혀 있다. 그 아래로 문자가 적힌 색색의 정사각형들이 배열되어 있고 가운데 회색 직사각형이 기다랗게 그려져 있다. 출처는 정확하지 않지만 클레 자신의 시로 추정된다.

파울 클레,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1918년, 수채화, 22.6x15.8cm, 베른 국립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파울 클레, ‘밤의 회색으로부터 나오자마자’, 1918년, 수채화, 22.6x15.8cm, 베른 국립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그림은 기하학적이다. 맨 위의 시의 단어들을 회화적 요소로 삼아 아래에 놓인 작은 정사각형들의 색 면에 삽입했다. 그림 중앙에 끼워진 회색 직사각형은 시의 연을 구분하는 장치이다. 전체적으로 회색의 밤에 무수히도 많은 별의 모습을 표현한 것 마냥 빼곡하다. 발상이 특이하고 재밌는 작품이다.

클레는 완전 추상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추상미술을 그렸으나 실존하는 대상의 형태를 어느 정도는 남겨 두었다. 때로는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때로는 과감한 생략과 선, 면, 색을 통해 추상의 세계를 넘나들었다.

세 번의 만남

칸딘스키와 클레의 첫 만남은 1900년 독일 뮌헨에서 이루어졌다. 독일의 데생 화가 프란스 폰 슈투가 이끄는 회화반에서 잠시 스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칸딘스키가 13살이나 많았고, 클레의 잦은 결석으로 둘의 인연은 스치듯 지나갔다.

1911년, 칸딘스키가 프란츠 마르크와 함께 결성한 청기사파 모임에서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클레는 청기사파의 멤버가 되었고 칸딘스키를 ‘대단히 훌륭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했다. 칸딘스키 역시 ‘클레의 영혼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며 서로에게 받은 인상을 적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청기사파가 해체되고 둘의 만남도 끝난 듯 보였으나 독일의 디자인 전문학교 바우하우스에서 세 번째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1921년 클레가 먼저 바우하우스의 교사가 되었고 1922년 칸딘스키가 교사로 초빙되어왔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인생의 가장 좋은 시기를 함께했다. 이웃해 살면서 깊은 우정을 나눴다. 학교 동료 교사이자 예술가로서 서로를 존경하며 배우며 같이 성장했다.

“클레는 바우하우스에서 대 예술가로 그리고 맑고 순수한 인간으로 건강하고 결실이 풍부한 분위기를 전파시켰다.” -바실리 칸딘스키

“칸딘스키의 발전 속도는 나보다 훨씬 앞선다. 난 그의 제자가 될 수 있고 어떤 면에서 이미 그의 제자였다. 그의 말이 나로 하여금 탐구를 부추기고 내게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파울 클레

파울 클레, ‘세네치오’, 1922년, 캔버스에 유채, 40.5x38cm, 바젤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파울 클레, ‘세네치오’, 1922년, 캔버스에 유채, 40.5x38cm, 바젤시립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바실리 칸딘스키, ‘위로 향하다’, 1929년, 카드에 유채, 70x49cm, 뉴욕 구겐 하임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바실리 칸딘스키, ‘위로 향하다’, 1929년, 카드에 유채, 70x49cm, 뉴욕 구겐 하임미술관 소장. 사진 위키아트

클레를 만나기 전 칸딘스키의 작품은 표현주의적이며 낭만주의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 있었으나 클레의 영향으로 위트적인 성격을 종종 드러내어 자신의 추상주의 화풍을 확장시켰다. 클레의 작품 ‘세네치오’는 라틴어로 ‘나이 든 사람’이라는 뜻으로, 클레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자화상으로 알려져 있다. 유난히 밝은 색채와 선, 면 등의 기하학적인 형태가 눈에 띈다. 동그란 얼굴에 눈썹의 한쪽은 삼각형이고, 코와 목 등은 네모 모양으로 구성되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스타일은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동심을 갖고 있는 화가 자신에 대한 해석이다. 칸딘스키의 작품 ‘위로 향하다’는 클레의 ‘세네치오’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다. 클레 작품의 위트와 유희적인 면모가 칸딘스키의 그림에 배어 있다. 닮은 듯 다른, 자신만의 추상미술 화풍을 고수하면 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두 사람을 이야기할 때 ‘음악’이라는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칸딘스키와 클레는 다방면에 뛰어난 조예와 지식을 가진 지식인들이었고 특히 음악적 세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소리와 리듬을 화폭에 담아내어 추상미술로 발전시킨 공통점이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 ‘인상 3(콘서트)’, 1911년, 캔버스에 유채, 75.5x100cm, 뮌헨 렌바흐하우스 소장. 사진 위키아트
바실리 칸딘스키, ‘인상 3(콘서트)’, 1911년, 캔버스에 유채, 75.5x100cm, 뮌헨 렌바흐하우스 소장. 사진 위키아트

칸딘스키의 작품 ‘인상3’은 오스트리아 태생의 작곡자 아놀드 쇤베르크의 무조(장조나 단조의 규칙이 없는) 음악에 감명을 받아 그린 그림이다. 음악은 듣는 것뿐만 아니라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형태와 색채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와 소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검은색은 무대 위 그랜드 피아노이며, 여러 개의 검은 곡선은 청중이며 노란색은 감동의 클라이맥스를 표현한 것이다.

음악과 함께 성장해 온 클레는 피아니스트와 결혼해 친구들의 모임에서 종종 연주를 즐겼다.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은 회화 속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작품 ‘붉은색의 푸가’에서는 푸가의 구조와 조성 변화를 물결처럼 묘사하였다. 그림의 제목과 화폭에 담긴 표현에서 음악의 리듬과 소리를 색, 형태로 전환하고자 하는 클레의 시도가 엿보인다.

파울 클레, ‘붉은색의 푸가’, 1921년, 수채화, 24.4x31.5cm, 베른 파울클레센터 소장. 사진 위키아트
파울 클레, ‘붉은색의 푸가’, 1921년, 수채화, 24.4x31.5cm, 베른 파울클레센터 소장. 사진 위키아트

칸딘스키와 클레는 색채와 음악의 관련성에 대해 고민해 온 화가였다. 음악이 그림이 될 수 있고 또 그림이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믿음 속에서 두 사람의 공감대는 커져 갈 수밖에 없었고 서로에 대한 이해는 깊어져 갔다. 예술적인 공통분모 속에서 둘의 우정은 더욱 성장해간 것이다.

친구, 곁을 지키다

클레의 ‘보호받는 식물’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작품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마치 7개의 반짝이는 별이 밤하늘에서 빛나는 것 같다. 멀리서 보면 가운데 형상은 나무이다. 그리고 양쪽에 두 사람이 서 있다. 조금 다른 둘은 같은 땅을 딛고서 사이에 있는 나무를 지킨다. 온화한 표정과 함께.

파울 클레, ‘보호받는 식물’, 1937년.
파울 클레, ‘보호받는 식물’, 1937년.

그림 속 두 사람은 클레와 칸딘스키 같다. 비슷한 듯 다른 둘이 만나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다. 반짝이는 별 같은 예술(추상미술)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도록 함께 곁을 지키고 있다. 서로가 빛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안식처가 되어 준 존재. 이 작품은 칸딘스키와 클레의 변함없고 잔잔하며 감동 어린 우정을 상징하는 것 같아 더 눈길을 끈다.

화가들에게 친구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예술이란 고독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을 거라는 게 나의 답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곁을 지키며, 응원하고 격려하는 친구가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힘을 낼 수 있다. 어려움이 와도 툭 털고 일어나 즐겁게 인생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친구 덕분이다. 친구의 소중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글쓴이 정유진

충북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여러 단체전을 통해 꾸준히 작품 발표를 해왔으며, 갤러리스트로도 활동했다. 행복한미술심리센터에서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했고, 현재 파랑새 인성교육원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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