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준비하는 교사의 마인드셋

새 학기를 준비하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학생을 바라보는 교사의 마음가짐이다. 이번에는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부모, 직장에서의 상사 등 가르치고 이끄는 입장에 서는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는 대상자들을 향해 꼭 가져야 할 필수적인 마음의 자세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해 보려고 한다.

예전에는 초등학교에 ‘봄방학’이 있었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학사 일정이 달라졌다. 대부분의 초등학교들은 12월 말이나 1월 초에 학기를 모두 마친 뒤, 봄방학 없이 긴 겨울방학을 보내고 곧바로 3월부터 새 학기를 시작하는 운영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2월 한 달 동안 교사가 충실하게 새 교육과정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 기간에 교사들은 함께 모여서 토론도 하고 자료를 찾아본다. 그러면서 새롭게 만날 학생들을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다양한 학습자료를 준비한다. 이때 계획을 얼마나 치밀하게 짜고 준비를 하느냐가 그해 1년 교육살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계획보다 더 중요하게 챙겨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을 바라보는 교사의 ‘마음가짐’이다. 요리를 할 때 필요한 재료와 도구가 잘 갖춰져야 정해진 시간에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것처럼, 교육자에게도 미리 준비된 ‘마음의 지도’가 있어야 한다. 마음속에서 먼저 학생들을 향한 상像이 만들어지면, 뒤따라오는 구체적인 계획을 효율적으로 준비할 수 있고, 불시에 생기는 사건 앞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사진 제공 안현지
사진 제공 안현지

어느 드라마에서 배운, 타인을 위한 사명감

한때 전 국민을 떠들썩하게 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 내용 중, 필자에게 유난히 큰 감동을 준 장면이 있다. 극 중 상황은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사고를 당한 상태였다. 이때 한 젊은 의사가 맥박이 멈춘 사람을 붙들고 심폐소생술을 하며 “살릴 수 있습니다!”라고 울며 절규한다. 하지만 선배 의사는 그의 뺨을 때리며, 더 이상 어리광 부리지 말고 빨리 다른 곳에 가서 살릴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살려내라고 단호하게 소리친다.

그 뒤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살리는 모습을 배경으로 ‘의사 윤리강령’이 낭독되는 장면이 이어졌다.

‘이제 의료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첫째,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개인의 이익과 즐거움보다는 타인을 위한 사명감으로 가득찬 문구와, 그것을 따르고자 하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너무 멋졌고,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먼 나라 이야기처럼, 교사들도 관심 없는 사도헌장

교사에게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 1958년에 제정된 ‘교원윤리강령’, 1982년 스승의 날에 교사들이 직접 만들어 공포한 ‘사도헌장과 사도강령’,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2005년 교총에서 발표한 ‘교직윤리헌장’ 등이 있다. 의사가 육체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처럼, 교사는 정신적 건강과 지혜를 키우는 일을 담당한다고 볼 때, 교사가 가져야 할 마인드는 어쩌면 의사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교사들에게는 사도헌장이 별로 알려져 있지도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교육의 결과가 금방 눈앞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특히 최근에는 교사와 학생 외에 다른 상황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사도헌장의 항목들은 더욱더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었다. 아무도 지킬 수 없는 이상향의 도덕적 의무가 된 것이다.

사진 프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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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마음을 살릴 수 있는 교사의 마인드 세팅

얼마 전에 어느 온라인 교사 커뮤니티에서 조회수가 폭발하며 화제가 된 글이 있다.

“난 애들한테 싫은 소리 안한다. 어떤 아이가 다른 아이를 괴롭히고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도 그냥 웃는 얼굴로 ‘하지 말자~’ 한마디만 하고 끝낸다. 여기서 훈육한답시고 목소리 높이거나 반성문 쓰게 한들 그것으로 변할 아이도 아니고, 역으로 항의 받고 경찰서에 왔다 갔다 하면 내 삶만 피폐해질 뿐이다. 그러니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고 조용히 산다. 다만 그 아이 때문에 피해 입는 우리 반 아이들이 불쌍할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할 생각이나 용기는 없으니….”

이 글을 쓴 교사에게 사도헌장의 기준을 갖다 대면, 교사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교사로서의 도덕적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보다는 심리적인 원인을 살펴보고 싶다. 요즘 아이들의 생활태도와 사회적 분위기로 볼 때, 글 내용의 앞부분은 충분히 공감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왜 희생할 생각이나 용기를 낼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는 걸까?

앞서 말했던 드라마 속에서 의사는 이미 죽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계속 하면서 살릴 수 있다고 절규했는데, 교육에서는 왜 쉽게 포기해 버릴까? 결과가 어떻든, 과정 속에서 끝까지 사명감을 갖고 계속해 볼 오기마저 생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구닥다리 교사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 학생들

지난해에 필자는 특별한 졸업식을 치르게 되었는데, 그 일화를 통해 이런 의문을 풀어 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당시 필자는 학교에서 교무부장을 담당하면서 담임을 맡지 않고 3~6학년의 과학 교과만 전담하게 되었다. 전담교사의 경우, 학생들을 수업 시간에만 만나니까 아무래도 마음속 깊이 대화를 할 시간은 부족하다. 수업 시간에 반드시 수행해야 할 교과 진도가 있기 때문에, 학습에 방해되는 행동을 할 때만 생활지도를 하는 수준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작년 6학년 학생들에게는 과학 교과교육보다 인성교육을 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전에 이 학급을 맡았던 담임 교사마다 학생들의 장난 수준이 모두 역대급으로 심하다며 혀를 내둘렀었다. 교직 경력이 제법 되는 필자조차도 이 학급에 수업하러 가면 더 이상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구닥다리 교사가 된 것 같은 자괴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사진 제공 안현지
사진 제공 안현지

학생들의 협조가 쉽지 않았던 졸업식 이벤트

이런 학생들의 졸업식을 기획하면서, 필자는 마지막으로 뭔가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부모님과 함께하는 졸업식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장, 교감선생님께 졸업식 프로그램에 대해 허락을 받은 후 교무회의를 통해 실제 협의에 들어갔다. 후배들과 교직원들의 졸업 축하 영상을 찍고, 포토존 및 공연, 선물 등을 마련해 감동을 주기로 했다. 거기까지는 준비하는 데에 별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서인 부모님과 함께하는 특별 이벤트 준비에 문제가 생겼다. 졸업 식장에서 학생들은 부모님과 나란히 자리에 앉고, 옆에 계신 부모님께 직접 쓴 감사편지를 읽어드리는 순서를 넣겠다고 말하자 학생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전에 하지 않은 것을 왜 시키냐며, 우리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했다. 2학년 때 이후로 부모님께 편지를 써본 적이 없다는 학생들은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같은 표현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오글거려서 싫다고 했다. 그러니 선생님이 프로그램에 넣어도 자기들은 편지를 안 쓰고 안 읽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거부했다.

하기 싫은 마음을 바꾸고 따라준 고마운 학생들

‘이렇게 싫어하는데, 그냥 포기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니야, 한번 해보자.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일단 시도라도 해보자.’라는 쪽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돌려볼 궁리를 했다. 유튜브에서 가족과 관련된 감동 영상을 찾아서 함께 보고, 부모님의 사랑을 오해했던 내 경험도 이야기하면서 떨리는 심정으로 학생들에게 편지지를 나누어 주었다.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아이들이 연필을 잡고, 한숨을 푹푹 쉬면서 억지로 한 글자 두 글자 쓰기 시작했다. 시험을 보는 시간보다 훨씬 더 집중하고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끝까지 안 쓰겠다고 떼를 쓰면 어떡하지?’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모두가 편지쓰기를 완료했다. 결과에 대한 기대보다는 그저 마음을 바꾸고 지도에 따라 준 학생들이 고마울 뿐이었다.

학생들의 마음을 알게 된 감동의 졸업식

그리고 며칠 후, 드디어 졸업식 날이 되었다. 순서대로 잘 진행되던 중 마지막에 이어지는 광경을 보고 너무 놀랐다. 부모님께 편지를 읽어드리던 학생들이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아내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몇 글자 읽지도 못했는데 눈물보가 터져 힘들게 한 글자 한 글자를 간신히 읽고 있었다.

듣고 계시던 부모님들도 눈시울을 붉히고, 서로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는 모습에 필자도 코끝이 찡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교육 관계자분들도 요즘 졸업식에 우는 학생들을 찾아보기 힘든데, 참 따뜻한 졸업식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졸업식을 기획했다는 칭찬에 뿌듯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아이들의 태도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저 아이들의 마음에 저렇게 예쁜 마음이 있었다고? 무슨 말을 해도 잘 받지 않고, 자극적인 말이 습관처럼 입에 달려 있고, 마치 선생님의 지도에 거꾸로 행동하기로 작정한 청개구리처럼 보였는데…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는데… 속 깊은 곳에는 예쁜 마음이 살아 있었어. 가리워져서 내 눈에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야.’

조금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포기하지 않고 해보았을 다른 활동들도 떠올라 아쉬운 마음도 겹쳤다. 그리고 올해 새 교육과정을 계획하는 기간에 그 졸업식 사례를 주변 교사들과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교사 마인드를 다시 리셋reset하고, 지혜를 모아 더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기획해 보았다.

진흙 속 진주를 찾아내는 기쁨

누가 봐도 아름답고 훌륭한 값비싼 진주가 흙 속에 묻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진주가 거기에 없다고 생각하면 그냥 지나치겠지만,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흙을 걷어낼 것이다. 어떤 진주는 흙에 가볍게 덮여 있어서 입으로 ‘후~’ 하고 불기만 해도 영롱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어떤 진주는 두터운 흙 속에 돌처럼 굳어버려서 망치로 두들겨 깨야 그 모습이 드러날 수도 있다. 어떤 진주는 세제로 씻어야 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흙 속에 진주가 있다는 것만 알면, 그냥 넘어 가거나 포기하지 않고 진주를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교사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 이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에겐 아름다운 마음이 숨어 있다는 것, 환경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고 추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어도, 진주처럼 아름다운 형상이 보이지 않은 곳에 이미 만들어져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흙을 걷어낼 방법들을 찾는 과정이 재미있고 신날 것이다. 그리고 어렵게 얻은 진주일수록 더욱 사랑스러울 것이다.

새학기를 시작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마음속 진주를 찾는 기쁨을 누려 보자. 그리고 내 마음속 진주를 찾아주는 사람들을 향하여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자. 아마도 이전보다 훨씬 더 행복한 3월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안현지

교육학 박사과정에 있는 그는 올해 28년 차 초등학교 교사이다. 2021~2023 교육부 인성교육 우수선진교사로 선정되었고, 지역사회 교육문화단체 ‘하트톡’ 대표로 활동 중이다. 춘천교도소 초청으로 2015년부터 재소자들에게 매달 인성교육 강연을 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국 온오프라인 학부모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교사이자 엄마로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 학부모들과의 상담에도 많은 시간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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