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가족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슬퍼하면, 나도 같이 슬퍼지고 그 사람이 기뻐하면, 내 마음도 기쁨으로 출렁이는 그런 신기한 사이, 그게 친구가 아닐까요? 이번 호에는 여러분의 ‘소중한 친구’를 소개합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였다. 어느 날 커다란 흰색 리본이 달린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다. 그땐 알지 못했다. 그 아이가 앞으로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함께하는 벗이 될 것이란 걸. 우리는 까닭 없이 친해졌고, 학년이 올라가며 멀어진 적도 있었다.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며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닮은 듯 너무나도 달랐다.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나와는 달리 멋 부리기 좋아했던 친구는 번화가로 놀러 나가는 날이면 높은 구두를 신고 나왔다. 얼마 걷지 않아 “나 발 아파. 잠시만 신발 바꿔주면 안 돼?”라고 묻는 친구에게 툴툴거리면서 내 신발을 밀어주곤 했다. 그러게 왜 그런 구두를 신고 오냐고 핀잔을 주면서도 서로의 어설픈 걸음걸이에 같이 웃다 보면 발의 불편함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어떤 작은 일이라도 생기면 부리나케 연락해서 미주알고주알 얘기했고 만나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헤어진 후에도, 다시 휴대전화를 붙들고 밤마다 몇 시간씩 통화했다.

어느덧 사회 초년생이 된 우리는 냉정한 사회를 경험하며 고단해하다가도, 심각해졌다가 위로했다가 조언을 건네는 그런 우리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깔깔대며 웃었다. 회사에서는 이리저리 치이는 신세였지만 같이 대화할 때만큼은 어떤 상사도 두렵지 않았다.

어떤 사람과 가깝다는 건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게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성숙하고 서툴렀던 우리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잘 몰랐다. 그래서 정말 많이도 싸웠다. ‘나랑 이만큼이나 친한 너니까 너는 나를 이해해야지.’라는 기대가 컸다. 그래서 우리 둘은 서로에게 하는 말과 행동에 더 예민했다. 팬이 안티로 돌아섰을 때 가장 무섭다고 했던가. 함께한 세월만큼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때론 다투다가 상대의 가장 약한 곳을 깊숙이 찌르기도 했다. 가끔 그 상처 때문에 서운해서 몇 달씩, 몇 년씩 연락을 안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붙어 지냈다. 누군가와 그토록 가까워졌다가 강렬히 멀어지는 경험을 수없이 겪으며 나는 사람에 대해, 관계에 대해 조금씩 배워갔다.

8살 때 만났는데 이제 서른이 되었으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만큼 우리의 모습도, 취향도, 성격도 변했다.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순대 중 하나를 고를 필요 없이 모두 시킬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갖고 있는 고민은 더 무거워졌다. 그러나 둘이 있을 땐 여지없이 가장 유치했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 사람에게는 나의 약한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고 나의 솔직함을 허물이라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을 갖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함께 부족했고, 아파했고, 성장했기에 쌓을 수 있는 믿음이었다. 내가, 네가 얼마나 별로인 사람인지 이미 많이 들켰기 때문에 없는 걸 있는 척할 필요도 없다.

어느새 그 친구와 당연하고 일상적인 관계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훗날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친구란 그저 서로 온기를 나눠주며 함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겪은 친구란 내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든 나를 인정해주고 곁에 있어 준 까닭이다.

글|이소영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먹는 것을 즐거워하며 식품업계에서 마케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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